[고전쏙쏙 인성쑥쑥] 오리무중(五里霧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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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2-03 07:52  |  수정 2018-12-03 07:52  |  발행일 2018-12-03 제18면
[고전쏙쏙 인성쑥쑥] 오리무중(五里霧中)

필자가 사는 마을은 금호강변의 대실(죽곡)입니다. 이곳에선 요즘 장해(張楷)와 배우(裵優)의 ‘도술겨루기’가 한창입니다. 장해는 사방으로 5리 이내에 안개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배우는 사방 3리까지만 안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둘은 금호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강창교 부근에서 이른 새벽마다 안개 만들기 시합을 합니다.

안개는 아침마다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짙게 끼어 사람들의 생활에 여간 불편함을 주지 않습니다. 그곳에 살아보지 않고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저 ‘부채빛살에 보랏빛 옅은 안개, 살포시 얹어 놓고, 새벽은 그렇게 왔고 그날 아침은 유독 맑고…’같은 생각만을 떠올리는 사람은 너무나 낭만적입니다.

장해(張楷)는 중국 한 나라 사람입니다. 학문이 뛰어나고 훌륭한 선비였습니다. 당시 황제인 순제가 여러 번 장해를 불러서 등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장해는 병을 핑계대고 끝내 황제의 청을 거절하곤 하였습니다. 당시의 조정은 권력싸움만 하고 정신 나간 사람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장해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춘추’와 ‘고문상서’에 통달한 장해는 제자들만 해도 100명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전국의 학식이 많고 명망이 높은 유학자들과 고관대작들이 앞 다퉈 그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장해는 그들의 방문도 싫어서 고향 산속으로 피신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서 귀찮게 하니 능숙한 도술로 ‘오리무(五里霧)’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오리나 되는 안개 속에서 장해를 찾지 못했습니다. ‘삼리무(三里霧)’만 할 줄 알던 배우도 장해를 스승으로 삼고 ‘오리무(五里霧)’를 배우고자 하였으나 장해는 영원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를 오리무중이라 말합니다. 5리에 안개가 덮여 있는 속과 같이 사태의 추이를 알 길이 없을 때 그렇게 말합니다.

심리학자 폴 와츠라위크는 대화이론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서 힘의 차이가 극대화되는 경우를 상보관계’라고 했습니다. 힘의 우위에 있는 사람이 규정하는 관계를 하위에 있는 사람이 무조건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풍여초(風與草)’가 바로 그런 관계입니다. ‘바람이 불면 풀은 눕는다’는 뜻입니다. 옛날 임금과 백성의 관계를 비유한 말입니다. 주나라 성왕도 ‘지극한 정치의 향기는 신도 감동시킨다. 찰기장과 메기장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밝은 덕이 향기로운 것이다’라면서 바람(임금)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공자도 “임금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은 바람에 따라 쓰러진다”고 했습니다. 또 ‘군주인수(君舟人水)’라고 말했습니다.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다’라는 의미입니다.

훗날 당태종 이세민이 말한 ‘재주복주(載舟覆舟)’가 그렇습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다. 그러나 역시 엎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폴 와츠라위크는 한 사람의 일방적인 힘에 의한 고정보다는 서로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고 절충하는 방식을 대칭관계라 했습니다. 대칭관계의 대화가 중요합니다. 대칭관계가 사라지면 오리무중이 됩니다.박동규(전 대구 중리초등 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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