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열린 통화정책 방향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를 기존 연 1.50%에서 연 1.75%로 0.25%포인트 인상하기로 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은행이 30일 1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은 가계부채 확대 등 불안한 금융시장을 서둘러 안정시키는데 초점을 맞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엄밀히 말하면 과도한 시중 유동성(자금)을 회수, 집값 안정에 주안점을 뒀다는 얘기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풍선효과’가 우려된다. 금리 인상으로 소비와 투자는 크게 위축돼 경기는 더 얼어붙을 전망이다. 특히 기존 대출금에 대한 이자비용 부담이 크게 높아져 신용도가 낮은 서민층을 비롯해 자영업자·중소기업인의 고통은 가중될 수 있다.
불안한 금융시장 안정에 주안점
서민·자영업자·中企 고통 가중
내년 경기하강 우려 갈수록 커져
금리 더 올리기는 쉽지 않을 듯
![]() |
◆가계부채 증가속도 완화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경기둔화 국면 속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의견이 많다. 올해가 아니면 경기전망이 밝지 않은 내년에는 금리를 인상할 수 있는 타이밍조차 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미국의 선전포고로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과 이달 예정된 미국 금리인상, 숙지지 않은 신흥국의 경기 우려 등이 상존한 상황에서 이번에도 기회를 놓치면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잡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묻어 있다. 저금리가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면 지금보다 경기가 더 침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한몫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걱정이 앞선다. 무엇보다 대출금리가 문제다. 기존 대출자의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한은의 올 3분기 자료를 보면 국내 가계부채는 1천514조원에 이른다. 기준금리로는 0.25%포인트 오르는 것이지만 시중은행이 여기에 가산금리를 보태면 이자 부담은 더 커진다. 상대적으로 이자 부담이 낮은 주택담보대출금리조차 현재 5%대에 육박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투자처를 물색하기보다는 대출금과 대출이자 줄이기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구·경북 4천억원 더 부담
경기가 거의 바닥 수준인 대구·경북지역으로선 이번 금리 인상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한은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대구·경북지역 가계부채 규모는 78조6천291억원이다. 여기에 카드사·캐피털 등 여신전문기관 대출과 백화점 등의 카드할부금액을 포함한 판매신용금액(5조원 추산)을 더하면 전체 가계부채(가계신용) 규모는 총 84조원에 이른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43조475억원(연 이자부담 증가액 1천억원)에 달하고 있다. 이번에 기준금리 인상분을 적용하면 최소 2천억원가량의 이자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더욱이 약정 기간 전에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로 갈아타거나 중도 상환을 하면 수수료도 물어야 한다. 신용도가 낮아 상대적으로 비은행권의 고금리대출상품을 이용하는 서민들은 허리가 휠 지경이다.
대출시장의 또 다른 뇌관인 ‘자영업 대출’도 위기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이자 및 담보부담이 적은 법인대출보다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을 통한 ‘돌려막기’로 연명하는 상황이다.
지역 중소기업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역의 기업대출 규모는 86조4천383억원이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2천억원 상당의 이자를 더 물어야 한다. 당장은 부채를 줄이는 쪽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내수 소비와 기업 투자는 더 위축돼 지역 경기는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 국내 금리 더 오를까
한은이 내년에 추가로 금리를 인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경기 하강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경기가 꺾이는 상황에서 미국은 계속 금리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릴 수 있어 한은으로선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내년엔 동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고용상황 등 경기지표는 올해보다 부진할 것이고, 유가 하락 및 정부의 관리물가 영향 때문에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낮아질 것으로 시장은 판단하고 있다.
실제 한은은 지난 10월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8%에서 2.7%로 하향조정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면서 동시에 금리를 올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만큼 금리동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방증한다.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KDI·산업연구원은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6%로 내다봤다. 한은 전망치보다 더 낮다. 올해 경제성장률을 2.8%로 예상한 LG경제연구원도 내년엔 2.5%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한은의 금리 인상 배경 이면에는 추후 경제가 더 나빠질 때를 대비해 그나마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을 보일 때 금리를 올려놔야 한다는 의중이 강하게 반영돼 있다. 경기 사정이 악화되면 통상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가계부채 증가 등을 감안하면 쉽지는 않다.
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