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대구공항의 소확행?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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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27   |  발행일 2018-11-27 제30면   |  수정 2018-11-27
대구공항 교통·시설 열악
이전 추진 탓 개선 외면
지역민을 위한다는 사업
되레 불편겪는 역설 불러
소확행 보장도 단체장 몫
[화요진단] 대구공항의 소확행?
윤철희 편집국 부국장

소확행(小確幸·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시대다. 채워지기 어려운 미래 희망보다 당장 찾을 수 있는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세태다. 저성장과 불평등이 구조화되는 난세를 꿰뚫는 서민들의 또다른 생존 방식의 발현(發現)이다.

여행이 일상화되는 추세도, 10여 년 전만 해도 황량했던 대구공항이 최근 북새통을 이룰 수 있는 현실도 이 트렌드와 직간접으로 맞닿아 있다. 최근 지역사회에서 다시 핫이슈로 등장한 대구공항 통합 이전 추진도 지역민의 소확행 추세에 힘입은 바 크다. 공항 수요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엄두를 못내는 사업이다.

대구공항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대구시와 한국공항공사는 만면에 희색이다. 올 연말쯤 대구공항 이용객은 400만명을 돌파하고, 취항 국제노선 역시 22개 노선에 주 364편에 이른다. 한마디로 대박난 셈이다. 2000년대 초반 대구시가 국적항공사에 중국이나 일본노선 취항을 읍소했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사실을 반추하면 상전벽해다.

공항은 소확행의 최상위 단계다. 여행의 설렘은 공항에서 극대화된다.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을 펴낸 영국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은 “공항을 생각하면 비행기 연착을 갈망한 적이 많다. 그래야 공항에서 더 뭉그적거릴 수 있으니까”라며 공항의 매력을 설파한다.

하지만 소확행을 즐기려 대구공항을 찾는 지역민들은 되레 부메랑을 맞는다. 대구공항을 이용하기에 너무 불편한 탓이다. 대중교통 접근성은 최악이다. 택시 이외에는 접근할 방법이 없다. 동대구역 등을 오가는 공항셔틀버스는 차치하고, 공항 내에 시내버스조차 진입하지 않는다. 택시업계의 반발을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한 대구시의 무능한 행정력 탓이다. 그렇다고 택시 이용도 맘 편한 상황은 아니다. 택시기사의 불친절은 전국에서 유명하다. 목적지가 공항에서 가까운 동구나 수성구면 기사의 노골적인 불친절을 감내해야 한다. 돈 내고 좌불안석해야 하는 처지다.

주차장은 더 열악하다. 만성적인 주차난에 시달리다보니 여행객이 공항구역의 도로에 불법 주차를 해놓고 출국하는 경우도 꽤 많다. 공항 편의시설도 수준 이하다. 공항 라운지는 물론 편하게 앉아 커피 한 잔 마실 공간마저 변변찮다. 공항 면세구역 대합실은 좁디좁다. 출국시간이 임박하면 여행객들로 인해 도떼기 시장으로 변한다. 소확행하려다 되레 스트레스만 키우는 꼴이다.

대구공항 통합 이전은 대구시의 계획대로 진행된다 해도 10여 년의 세월이 걸린다. 정부의 지원이나 지자체 간의 이해관계를 원만하게 풀지 못한다면 이전은 하세월이다.

대구의 여행업계 등에선 큰돈을 들이지 않고 현 공항의 각종 편의시스템을 개선할 방법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구시장은 관심이 별로 없다. 오로지 공항 통합 이전에 올인한다. 그렇다고 공항관리 주체인 한국공항공사가 자청해서 이전을 추진 중인 대구공항에 시설투자를 한다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지역민을 위해 공항 이전을 추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정작 지역민이 불편을 겪어야 하는 기묘한 역설이다.

대구의 발전 원동력 창출 차원에서 공항 통합 이전도 필요할 수 있다. 리더가 비전을 갖고 중장기 목표를 제시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다. 그렇지만 신념이 과하면 선의가 악을 낳는다. 여행이라는 소확행을 즐기려는 지역민의 바람을 오랜 기간 외면하는 것 또한 희망 고문이다.

김해공항의 경우 신청사 건립에 앞서 기존 청사를 확장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중복투자로 매몰비용만 늘린다는 입장을 견지하던 국토교통부가 부산시의 적극적인 공세에 한발 물러섰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합 이전을 빌미로 비좁고 불편한 대구공항 시설과 시스템을 방치한다는 것은 단체장의 직무태만일 것이다. 지역민이 소망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부터 챙기는 게 제대로 된 위정자다.
윤철희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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