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수능시험 출제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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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26 07:55  |  수정 2018-11-26 07:55  |  발행일 2018-11-26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수능시험 출제방향

어느 재수생 어머니의 하소연이다.

“선생님, 우리 딸아이 좀 일으켜 주십시오. 수능시험을 치고 보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방에서 틀어박혀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 합니다. 저러다가 폐인이 될까 봐 걱정됩니다. 재학 시절에 국어만 3등급이고 나머지는 다 1등급이었습니다. 의예과 수시는 면접을 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대부분 의예과 수시 최저학력기준이 4개 영역 합이 5이지 않습니까? 올해 재수하면서 국어 공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방송교재를 비롯해 유명하다는 사설 모의고사 문제는 다 구해서 풀어볼 정도로 국어에 기울인 정성이 정말 눈물겹도록 대단했습니다. 결과는 또 3등급입니다. 1교시 충격으로 늘 만점 받는 수학도 2등급이 되고 말았습니다.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 국어라는 과목이 괴물처럼 보입니다. 선생님, 대학을 가고 안 가고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저 아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가 걱정입니다. 제발 좀 도와주십시오.”

올해 수능 시험을 마치고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겨우 학생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선생님께서 예비소집 하루 전날 해 주신 말씀대로 했습니다. 국어 시험 시작 전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문장을 자신 있게 읽고 질문의 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시험이 시작되자 평소 자신 없는 독서(비문학) 문제를 먼저 풀었습니다. 첫 문장부터 빨리 이해가 되지 않아 다른 독서 지문으로 넘어갔는데, 첫 번째 지문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어려웠던 6월 평가원 모의고사보다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면서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옆에 아이들이 시험지 넘기는 소리를 들으니 더 미칠 것 같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잘 푸는데 나만 헤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차리니 시간이 25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때부터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문제를 풀었던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은 이제 망했습니다. 아무 일에도 자신이 없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학생이 많을 것이다. 수험생들은 두 차례 평가원 모의고사의 난이도와 출제 경향에 맞추어 공부하고 그 정도의 난이도를 예상하며 시험에 임한다. 예상을 훨씬 벗어날 때 여리고 섬세한 학생들은 심한 충격으로 사고력이 마비되어 뇌가 얼어붙는 브레인 프리즈(brain freeze)에 빠지게 된다.

선발을 목적으로 하는 시험은 응시자들을 전 과목 총점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어느 특정 과목이 그해 입시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수험생 당사자나 대학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다. 수학이 아닌 국어 점수가 물리학과나 수학과의 당락을 좌우한다면 바람직한 선발이라고 할 수가 없다. 올해 입시가 그렇게 되고 말았다. 현재와 같이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수능시험은 교과서와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출제해야 한다. 그래야만 학교 교육이 신뢰받을 수 있고, 학생들은 보다 안정된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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