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뷰티풀 데이즈’ 이나영

  • 윤용섭
  • |
  • 입력 2018-11-23   |  발행일 2018-11-23 제43면   |  수정 2018-11-23
탈북여성 모성애 그린 독립영화…6년만에 제대로 꽂혔다
20181123

배우로서 이나영이 꾸는 꿈은 소박하다. 규모의 미학을 앞세운 여타 상업영화보다 감독의 진심이 느껴지고 주제의식과 목표가 뚜렷한 저예산 독립영화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이유를 “더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많기 때문”이라고 밝힌 이나영은 “그간 마음에 꽂히는 작품을 발견하지 못해 다소 공백이 길어졌다”며 ‘뷰티풀 데이즈’를 만난 걸 그 점에서 소중하게 생각한다. “덕분에 모든 걸 다 던져야만 했지만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연기적 희열이 새삼 반갑고 즐거웠다”는 이나영. 그가 6년의 공백을 깨고 선택한 ‘뷰티풀 데이즈’는 아픈 과거를 숨긴 채 한국에서 살아가는 엄마와 14년 만에 그녀를 찾아 중국에서 온 아들 젠첸(장동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나영은 탈북 여성인 엄마 역을 맡아 10대부터 30대까지 캐릭터의 긴 역사를 소화하고 중국어와 연변 사투리를 구사했다. 저예산 영화인 만큼 환경과 조건은 녹록지 않았다. 영화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선뜻 다가가기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나영은 노개런티로 자신의 진심을 더했다.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담백하고 시크했다. 별다른 설명없이 느껴지는 ‘여백의 미’가 마음에 와닿아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정형화된 이미지에 갇히길 거부하며 늘 과감한 선택을 해온 이나영에게 ‘뷰티풀 데이즈’는 그렇게 또 다른 실험무대가 됐다.

20181123

▶신인 감독의 저예산 영화인 데다 소재와 캐릭터 역시 녹록지 않다. 어떤 점에 끌렸나.

“‘뷰티풀 데이즈’는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영화였다. 다소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이고 대사나 지문도 적어 친절하진 않았지만 친숙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했다. 탈북 여성의 모성애를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접근했는데 왜 이 작품을 썼는지, 또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생각이 듣고 싶었다. 그전에 감독님의 전작 다큐멘터리들을 찾아봤다. 지속적으로 분단과 경계의 삶에 관심을 가져왔던 분이었다. 중국에서 5년 정도 지내면서 만들어낸 ‘마담B’가 이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인데, 2016년 모스크바국제영화제와 취리히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다. 분명하고 정확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는 분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생겼다.”

▶화려한 컴백을 바라는 주위의 만류나 우려도 있었을 것 같은데.

“굉장히 많았다. ‘너 또 왜 그러니’ 소리를 제일 많이 들은 것 같다. 나도 알고 있다. 그들이 무엇을 걱정하고 내가 무엇을 하면 어울릴지를 말이다. 문제는 해야 되는 건 알고 있지만 선뜻 안 움직여진다는 거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 연기로 과연 대중에게 진실된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떤 작품과 캐릭터에 끌리는지 나 스스로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공백이 좀 길어진 것도 있는데,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꽂히는 작품에 제대로 꽂혀서 하고 싶었다.”

▶10대부터 30대까지 한 여인의 굴곡진 삶과 감정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했나.

“10대의 그녀가 자기 삶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탈북 소녀였다면, 20대의 그녀는 술과 마약에 빠져 굉장히 동물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현재를 보여주는 30대의 그녀는 오히려 어떤 희망과 절망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살아가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의 삶에 전환점으로 작용한 건 장성한 아들이 찾아오면서부터다. 아들에게 그동안의 삶이 적힌 일기장을 건네며 일종의 화해를 시도한다. 아무튼 그 모든 과정에서 엄마의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기보다 내면에 응축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눈빛 하나, 표정 하나에 그 감정이 묻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10대 탈북 소녀, 20대 술과 마약 삶, 30대 엄마 모습
중국어·연변 사투리 구사…다가가기 쉽지않은 작품
생소하고 낯선 이야기 불구 ‘여백의 미’마음 와닿아
항상 정형화된 이미지 갇히기 거부, 노 개런티 출연
감독님 제작한 다큐 본후 주제의식·믿음·확신 생겨

30대 캐릭터는 빨간 재킷·붉은 헤어로 과거와 차별
가족 해체후 재구성, 밥 함께 먹는 모습 상징적 담아
남편역 오광록 선배 호흡 잘맞아, 아들역 장동윤 듬직
담배피우는 신 디테일 어려워 유일하게 재촬영 요구
이번 작품 경험, 배우로서 운신의 폭 넓어지는 계기



▶붉은 색의 의상과 헤어 등 엄마 캐릭터가 보여주는 룩이 강렬했다.

“극중 10대와 20대의 과거보다 30대의 현재를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 술집을 운영하는 30대 여성의 모습을 어떻게 하면 전형적이지 않게 잘 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전까지 붉은색을 소품으로만 생각했다면 아예 머리를 빨갛게 염색해서 시각적으로 과거와 차별을 뒀고, 빨간 가죽 재킷도 일부러 계속 입었다.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술집 종사자의 그런 룩이 아니라 그냥 일상의 느낌을 주고 싶었다. 공간과 상황에 맞는 옷을 입는 게 중요했고, 옷을 입었을 때의 느낌도 연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탈북 여성, 시골 여성처럼 보이게 애썼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동대문시장에서 원단을 구입해 옷을 만들거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들을 직접 구했다. 영화에서 옷을 많이 갈아입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의상을 고를 때도 신중하게 고른 편이다.”

▶누구보다 도시적이고 패셔너블한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의상들이 의외로 잘 어울렸다.

“평소에도 그런 옷을 즐겨 입는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신있게 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감독님에게 말씀을 드렸다.(웃음) 집에서도 늘 트레이닝복 차림이고, 남자옷도 잘 입는 편인데 그런 옷들이 어떨 때는 더 예쁠 때가 있다. 스타일을 따지는 것보다 편하게 입는 옷들을 즐긴다.”

▶영화에서 밥을 먹는 행위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나.

“감독님이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한 때문인지 된장찌개에 대한 향수가 많은 것 같았다. 한국인의 정서는 국을 같이 떠먹는 것으로 가족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 수 있다. 영화가 일부러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거나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식사하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이 가족에게 밥을 먹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를 충분히 함축해 보여준다. 가족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모습이 상징적으로 표출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남편 오광록과 아들로 나오는 장동윤과의 호흡은 어땠나.

“오광록 선배가 남편으로 출연한다고 했을 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을 찍을 때 선배님께서 나중에 같이 멜로에서 보고 싶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이번에 부부로 만났으니 그 말이 현실이 된 셈이다. 극중 선배님과는 서로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고 삶의 처절함이 느껴지는 과정에서의 만남이기에 다른 사람과 마주할 때보다 감정의 진폭이 큰 편이다. 개인적으로 선배님과 만나서 얘기하는 장면에서의 호흡이 되게 좋았다. 동윤씨는 연기력은 물론 열정과 노력이 대단한 배우라고 느꼈다. 다른 드라마를 찍고 우리 영화에 합류했는데 중국어와 연변 사투리를 그 짧은 시간에 완벽히 구사했다. 그 모습이 정직하고 듬직해 보였다. 사실 현장에서 긴장할까봐 말이라도 시키고 싶었는데 혹시라도 그의 감정을 방해할 것 같아서 대화를 많이 나누진 못했다. 내가 감정을 많이 눌러야 했다면, 동윤씨는 감정의 높낮이가 있다 보니 그걸 감안했다.”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마주한 자신의 모습을 보니 어땠나.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되게 들어가 보고 싶었다.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근육을 쓰고 있는지, 또 어떤 눈빛을 갖고 있는지 등이 궁금했다. 결과물을 보기 전까지는 모르니 그때 보여질 내 얼굴을 상상하며 나를 던져보고 싶었다. 나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쉬운 점은 있었다. 저 장면에서 손의 힘을 풀 걸 그랬나, 시선 처리는 정확했나, 이 동작이 맞나, 그렇다면 ‘이렇게 해볼 걸 그랬나’ 등의 소소한 아쉬움이다. 특히 힘들었던 건 담배 피우는 장면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후 처음으로 도전을 하는 건데 담배를 쥐고 있는 손의 힘과 담배를 끌 때의 디테일을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 내가 유일하게 재촬영을 요구한 장면이기도 하다.”

▶남편(원빈)이 당신의 컴백으로 자극을 받았을 것 같다. 두 사람 모두 데뷔 연도에 비해 작품이 많지 않은데 너무 신중한 것 아닌가.

“원빈씨와 내 성향이 비슷하다. 공백이 있더라도 꽂히는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한다. 전작과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은데 아직 그런 작품을 찾지 못한 것 같다. 그에 비해 나는 운이 좋았다.”

▶당신은 뭔가 목표를 정해놓고 달리는 것 같진 않다.

“맞다. 계획을 세우는 스타일이 아니다. ‘뷰티풀 데이즈’도 시나리오를 읽고 너무 좋아서 출연을 결정했지만 뒤늦게 ‘왜 내가 이것을 하고 싶어했을까’라고 되물어본다. 항상 그렇다. 주위에서 ‘넌, 이런 애야’라는 말을 들으며 나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천성이다.”

▶그간 이나영이라서 못하는 역할도 많았을 것 같은데.

“그건 모든 배우들이 비슷할 것 같다. 사실 ‘뷰티풀 데이즈’도 나에게 올 작품은 아니었다. 어떻게 인연이 닿아서 하게 된 것처럼 인연과 운을 무시 못한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다음 행보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 ‘이나영도 이런 작품을 하는구나’라는 인식이 생겼을 것이고 그렇게 배우로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으니 좋다고 생각한다.”

▶저예산 영화나 독립영화 출연을 특별히 고집하고 있는 이유가 있나.

“그런 영화들이 더 이야깃거리가 많다. ‘뷰티풀 데이즈’ 같은 영화들이 자꾸 만들어져 관객들이 익숙해지면 영화를 만드는 분들도 힘을 얻어 창작의욕을 더 불태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다양성, 독립영화, 예술영화에서 주로 소비되던 이야기와 소재가 상업영화 안에서도 별다른 이질감없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차기작은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인데 어떤 점에서 끌렸나.

“이번에도 엄마 역할이다. 옛날부터 친한 동생과 티격태격하는 약간 밝은 캐릭터인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따뜻하고 밝고 아련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다만 밝은 역할은 좀 어렵게 생각하는 편이라 촬영하는 내내 부담감과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오랜만에 따뜻한 작품으로 시청자들을 찾아뵙게 돼 설렌다.”

▶당신의 ‘소확행’을 말한다면.

“별다른 취미가 없다.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그 영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굳이 소확행을 말한다면, 사람들과 그런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인 것 같다. 또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즐겁고 행복하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이든나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