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의 패션디자이너 스토리] 올리비에 루스테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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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23   |  발행일 2018-11-23 제40면   |  수정 2018-11-23
흑인혼혈 입양아, 백인중심 유럽사회에 ‘세련미’ 과시
올리비에 루스테잉.
가상모델을 캐스팅한 발망의 광고 캠페인.
[류현의 패션디자이너 스토리] 올리비에 루스테잉
발망의 2019년 SS 컬렉션.
[류현의 패션디자이너 스토리] 올리비에 루스테잉
[류현의 패션디자이너 스토리] 올리비에 루스테잉

나이와 실력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 2011년 럭셔리 패션브랜드 발망(Balmain)에서는 스물다섯 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선정하여 연일 화제에 올랐다. 패션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비평가와 글로벌 바이어들을 단숨에 매료시키며 지금까지도 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올리비에 루스테잉이다.

자신과 다른 양부모…정체성에 혼란
피렌체 인턴생활 하며 실력 인정받아
‘발망’새 정상 올린 디자이너에 발탁
3년만에 수장…첫 컬렉션부터 존재감

정교·섬세한 재봉·재단, 고급스러움
볼레로 재킷·비즈 자수·실크팬츠 호평

세계적 SPA 브랜드 H&M과 협업발매
고품질·합리적 가격, 전세계 품절대란
디지털 광고모델 첫 캐스팅…미래 준비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1985년생의 프랑스 출신으로 보르도 지역의 고아원에서 1세 때 입양되었다. 그 당시 보르도는 가톨릭 신자가 많은 보수적인 지역으로 백인부부에게 흑인 아기는 매우 드문 경우였으나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가진 양부모는 고아원에 있는 수많은 아기들 중에서 흑인 혼혈인 올리비에를 입양하였다. 그는 부유한 유년시절을 보내지만 흑인 혼혈인 자신과 백인 양부모와의 피부색 차이로 인해 자라면서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옷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어릴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던 올리비에는 패션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부모의 뜻에 따라 로스쿨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적성에 맞지 않아 학업을 그만두고 파리의 패션스쿨인 에스모드에 입학하지만 틀에 박힌 교육에 염증을 느낀 그는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2003년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는 밀라노에 있는 베르사체의 인턴으로 면접을 봤으나 수개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곧장 피렌체에 있는 로베르토 카발리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한다. 올리비에는 5년간 로베르토 카발리에서 일하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자리에 올라 실력을 인정받지만 날이 갈수록 파리에 대한 향수는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그는 충동적으로 파리에 있는 발망의 수장인 크리스토퍼 데카르닌에게 이력서를 보내게 되고 로베르토 카발리에서 가죽과 자수작업을 했던 경험은 그에게 큰 자산이 되어 결국 2009년 발망에 합류하게 된다. 사실 올리비에가 이력서를 보냈던 크리스토퍼 데카르닌은 쇠락해가던 발망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브랜드를 정상의 자리에 다시금 우뚝 서게 한 실력있는 디자이너였다.

발망은 1945년 설립된 유서 깊은 브랜드였지만 창업자이자 디자이너인 피에르 발망이 1982년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브랜드의 정체성을 상실하며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더불어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SPA(자체 제조·직매형 의류) 브랜드의 급성장으로 사람들이 실용적인 패션을 선호하게 되면서 정체성이 모호한 고가의 브랜드들은 더욱 더 설 자리를 잃어갔다. 그러나 2005년 크리스토퍼 데카르닌이 발망의 수장을 맡은 후 브랜드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펑키한 로큰롤의 록 시크룩은 걸 크러시의 매력을 제대로 발산하며 파워 숄더와 바이커 진은 트렌드를 주도하는 히트 아이템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만 크리스토퍼는 2011년 건강상의 이유로 발망을 떠나게 된다.

겨우 정상의 궤도에 오른 직후 발생한 수장의 공백은 다시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우려와 새로운 수장에 대한 기대감이 뒤섞인 가운데 발망은 스물다섯 살인 올리비에를 발망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택한다. 발망 입성 후 3년 만에 수장이 된 그에 대한 걱정의 시선은 컬렉션이 발표될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흑인 혼혈이라는 점까지 언급되면서 그는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올리비에의 첫 컬렉션이 발표됨과 동시에 사라졌다. 크리스토퍼 데카르닌의 미적 감각이 부활의 신호탄이었다면 올리비에의 정교하고도 섬세한 재단과 재봉으로 탄생한 제품들은 발망의 기존 라인들을 보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컬렉션으로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켰으며 언론에서도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1960년대 투우사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볼레로 재킷,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정교한 비즈장식의 자수들, 파스텔 톤의 꽃무늬 모티브로 이루어진 실크자수 팬츠 등을 선보이며 발망의 로큰롤 무드는 이어가되 하우스 아카이브의 전통과 헤리티지를 반영한 포멀한 클래식 룩의 전개로 올리비에의 실력과 가능성을 동시에 입증하였다. 또한 그는 새로운 시장 개척에 관심을 가지며 아시아를 겨낭한 제품라인을 선보이고 이는 매출 증대로 연결되었다.

올리비에의 컬렉션이 매번 성공적으로 치러질 때마다 협업제품의 인기 또한 올라갔다. 세계적인 SPA 브랜드인 H&M에서는 2015년 11월 발망과의 협업제품을 발매했다. 구슬로 된 재킷, 스팽글 드레스, 금사가 수놓아진 드레스 등 초고가인 발망의 제품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H&M에서 판매된다는 소식에 온라인과 오프라인 할 것 없이 전 세계적으로 품절대란이 일어났다. 이처럼 그는 시장이 원하는 것과 비즈니스를 연계시킬 줄 알고 디지털 세대가 원하는 것을 제시하며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SNS가 활성화되기 전부터 그는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사진을 올려 소식을 전하고 미국의 유명 팝가수인 리한나를 발망의 뮤즈로 선택하였으며 최근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최초의 디지털 모델로 유명한 가상모델을 발망의 광고 캠페인에 캐스팅하여 시대적인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며 현재는 물론이고 다가오는 미래까지 준비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우려 속에서도 보란듯이 자신의 실력과 가치를 입증한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잠재되어 있는 더 많은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여전히 분투하고 있다. 파리 국립오페라단의 발레복을 디자인하고 패션뿐만 아니라 로레알 화장품과 협업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백인중심의 유럽사회에서 흑인 혼혈의 입양아 출신으로 성공하기까지에는 다양성이 중요했다고 이야기한다. 소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에서는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2019년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번에도 올리비에의 메시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의 메시지를 통해 앞으로 더 많은 올리비에를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rh0405@krif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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