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왜 지역신문을 봐야 하나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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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23   |  발행일 2018-11-23 제23면   |  수정 2018-11-23
20181123

우리의 말과 글 중 ‘지방’과 ‘지역’은 자주 혼용된다. 잘못 쓰이거나 오용임을 알면서도 정정되지 않는다. 정확하게 가려 써야 할 사명이 있는 신문과 방송 종사자, 언론인들도 마찬가지다. 중앙의 반대인 지방이 특히 더 그러하다. 지역의 자리까지 지방이 대변한다. 우리의 의식은 물론 무의식까지 지배하고 있는 중앙집권적 사고의 유산이다. 이를테면 신문에도 그 머리에 ‘지방’을 붙인 지방신문은 서울 이외 지역에서 발행되는 모든 신문을 통칭한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중앙지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잘못 쓰인 용례다. 배포지역을 기준으로 한 전국지와 지역지로 구분하는 게 정확하고 옳다. 발행지역을 중심으로 지칭할 경우 전국지는 서울지역신문이라고 해야 한다. 서울도 지역이니까.

반대로 지방이 꼭 들어가야 마땅할 자리에는 곧잘 실종된다. 대구시·경북도 등 광역 시·도를 자치단체 대신 지방정부라고 쓰자고 한 지 오래인데 여전히 지자체 혹은 줄여서 단체가 애용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강조하는 마당에도 지방은 독립할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아니면 중앙 예속이 편하다는 건지 종잡기 어렵다. 우리가 상용하는 지방이란 말의 근저에는 변두리, 변방, 저열함 등 비수도권의 자기비하가 묻어 있다. 청동 거울에 낀 때와 같은 이러한 지방의 열등의식을 걷어내야 지방의 독립은 비로소 성취된다. 언어마저 식민지 상태여서는 지방의 설자리는 없다.

지방의 자존감 살리기가 시급하고, 그중에 지역신문 보기는 지역 제대로 알기, 지역학 입문의 첫걸음이라 할 만하다. 지역신문 읽기는 그것을 만드는 구성원으로서 마케팅 차원이 아니라 인문학적 독서의 유력한 한 방안이자 필수 양식이다. ‘자이니치’(재일교포) 2세로 저널리스트이자 교수를 역임하고 일본을 움직이는 작가로 맹활약하고 있는 강상중은 이렇게 신문읽기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의 저서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 따르면 전국지와 지역지를 병독해야 복안(複眼)의 시점을 체득할 수 있다. 서로 비교해서 읽는 습관을 들이면 뉴스 가치를 식별하는 안목이 길러지고 지역의 이슈 파악도 일목요연하게 그려진다.

신문의 장점은 지면의 일관성이다. 신문은 책과 잡지와는 달리 새로운 화제를 망라하여 게재하며, 기사의 크고 작음에 따라 뉴스의 우선순위를 알 수 있게 해주므로 이 시대를 종합적으로 읽게 한다. 신문읽기는 매일매일의 ‘피부호흡’과 같다는 게 강상중의 체험이다. 매일의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는 것이 신문의 매력이다. SNS와 포털 등에서 보는 기사는 뉴스 가치 파악과 정보의 수용이 수동적이고 정적이어서 권장하기 어렵다. 종이신문은 지역의 이슈와 정보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포착·평가하는 동적인 읽기의 효용을 체감하게 한다.

신문읽기와 독서의 상관관계 비유도 놀랍다. 신문일기가 피부호흡이라면, 신서(新書)읽기는 폐호흡에 가깝고, 고전읽기는 심호흡이나 의식적으로 폐를 전부 사용하여 하는 복식호흡에 가깝다. 복식호흡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매일의 피부호흡이 없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몸 전체의 감각이 둔해져 심호흡을 해도 산소를 제대로 흡수할 수 없다. 고전을 아무리 읽어도 신문을 읽지 않는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이 지역을 독해하는 과정에서 고전을 적용하기란 불가능하다. 고전과 역사를 읽고 배우는 목적은 현대를 해석하고 튜닝하기 위해서다. 전국지와 지역지를 읽고 복안의 시점을 갖는 건 도깨비에게 도깨비방망이를 쥐여 주는 일에 비견될 만하다.

강상중은 재일교포 2세로서 정체성의 위기와 사회적 차별 등의 역경을 넘는 방편으로 취업 대신 학문의 길에 들어서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를 역임했고, 저널리즘과 아카데미즘 사이를 넘나들면서 밀리언셀러 ‘고민하는 힘’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를 통해 작가로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그가 ‘사회와 미션’이란 마지막 장에서 내린 결론을 패러디 하자면 복안의 시점은 많은 경우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이뤄지고 책이나 역사상의 인물은 물론 지역신문 역시 당연히 타자의 범주에 들어간다. 지역신문과 관계맺기는 미처 몰랐던 자신의 복수성을 자각하는 ‘나와의 만남’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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