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희생양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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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9 07:57  |  수정 2018-11-19 07:57  |  발행일 2018-11-19 제22면
[문화산책] 희생양과 예술
이진명 <대구미술관 학예실장>

사람은 누구나 욕구(needs)가 있다. 욕구는 무엇을 얻고자 하거나 어떤 일에 대한 바람이기도 하지만 생물학적 충동이나 인간의 본능적인 충동을 포함한다. 요구(demand)는 욕구를 언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유아기 때 없는 요구는 자라면서 서서히 형성된다. 살면서 이 욕구와 요구 사이에 불일치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욕구와 요구 사이의 불일치를 욕망(desire)이라고 한다. 욕망은 욕구와 요구 사이의 불일치다. 욕망은 그래서 끝까지 채워지지 않는다.

어렸을 때 보았던 위인전이나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게 주입되며 “너는 의사가 되라”던 아버지의 바람이 내 의식에 형성된다. 내가 멋진 사람들처럼 되지 못하거나 의사와 다른 일을 하게 되면 나는 좌절하게 된다. 설령 의사가 되었더라도 성공한 선배 의사나 전설적인 모델 의사에게 자신을 비교하게 된다. 이는 특정 한 사람의 일이 아니다. 공동체 전체로 확산된다.

예전에 비해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성공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다고 느낀다. 욕구는 어느 정도 채워졌는데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체 전체로 확산되면 공동체의 위기가 발생한다. 인간에게 이 위태로운 공동체의 위기를 해소시키는 방법이 있다. 바로 희생양을 찾는 것이다. 희생양이 희생당하면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욕망을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집단이 희생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한 사람이 희생되었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희생될 동물을 찾았다. 그리고 제사나 제식이 생겼다. 제사와 제식은 종교로 승화되었다. 한편으로 희생될 동물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동물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만들면서 동물의 희생을 줄여갔다. 그것이 예술의 기원이다. 그래서 우리는 숭고한 감정을 종교나 예술에서 얻곤 한다. 종교와 예술의 기원은 희생 제도에 있다.

우리는 경제가 어려우면 가장 먼저 문화나 예술적인 지출부터 줄인다. 지방정부의 세수가 줄면 문화예술의 예산부터 삭감한다. 문화예술은 희생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주위에 힘들게 작업하며 살아가는 예술가가 있으면 술이라도 한 잔 사주려고 한다. 그들의 고된 삶을 보고 나의 욕망이 조금은 누그러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예술가가 정치나 선동적 술수로 성공했다면 그를 예술가로 여기지 않는다. ‘속물 예술가’라며 비난한다. 나의 욕망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기 때문이다. 예술은 단순히 아름다운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미술관에 다니는 것도 예쁜 그림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욕망을 성숙시켜서 좋은 방면으로 옮겨보고자 다니는 것이다. 욕망을 누그러뜨리고 안도하기 위해서 다니는 것이다. 이진명 <대구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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