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완벽한 타인’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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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5   |  발행일 2018-11-15 제43면   |  수정 2018-11-15
‘사이즈’가 아닌 ‘스토리’의 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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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완벽한 타인’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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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타인’의 원작 영화 포스터(왼쪽)와 ‘완벽한 타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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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텐트폴 영화’라는 게 있다. 텐트를 세울 때 지지대 역할을 하는 기둥을 뜻하는 텐트폴(tentpole)에서 나온 말로, 영화사의 한 해 현금 흐름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핵심적인 상업 영화를 뜻한다. 유명 감독이나 배우를 기용하고 큰 자본을 투입해 흥행 공식에 맞춰 제작하는 이 영화들을 통해 영화사는 예측 불가능성이 갈수록 커지는 영화산업의 위험요소를 상당 부분 개선한 사업계획을 세울 수 있다. 해당 영화사의 다른 개봉작에서 성적이 부진하더라도 텐트폴 영화를 통해 손실을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설 연휴, 여름방학, 추석 연휴, 겨울방학 시즌에 이런 영화들이 집중적으로 개봉한다.

지난 추석 연휴를 전후로 개봉한 한국영화 4편은 이른바 ‘Big 4’라고 불리며 영화사들의 기대를 한껏 모았으나 모두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김광식 감독의 ‘안시성’은 543만 명, 박희곤 감독의 ‘명당’은 208만 명, 이종석 감독의 ‘협상’은 196만 명, 허종호 감독의 ‘물괴’는 72만 명의 관객들을 각각 동원했으나 거의 100억대를 훌쩍 넘는 제작비를 쏟아 부은 작품들이라 참담한 성적표였다. 특히 ‘안시성’은 순제작비와 배급 마케팅비를 포함한 총제작비가 무려 215억 원가량 들었는데,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600만 명 이상을 동원했어야 했다고. 한정된 시장에서 서로 파이를 나눠 먹으려 애쓰다 누구도 왕관을 써보지 못하고 씁쓸하게 퇴장한 꼴이다.


추석 전후 안시성·명당·협상·물괴
수백억 투입불구 손익분기점 못넘겨
핵심적 상업영화 텐트폴 ‘빅4’부진

비수기 10월말 개봉한 ‘완벽한 타인’
올 코미디영화 최단 기간 흥행 돌파
꾸준한 입소문…30·40대 관객 확대

다모 등 드라마PD 출신 이재규 감독
원작 伊 영화 한국상황 걸맞게 각색


반면 ‘완벽한 타인’은 영화계 비수기라 불리는 10월 말에 개봉해 지금까지 337만 명(이 글을 쓰고 있는 게 12일이니 지면에 실릴 때쯤엔 더 늘어나 있을 것이다)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또한 2018년 한국 코미디영화 최단기간 흥행 돌파 기록을 세우기도 했는데 기존 한국 코미디 흥행 1위였던 최성현 감독의 ‘그것만이 내 세상’ 최종 관객수인 341만 명을 개봉 12일 만에 뛰어넘었다. 꾸준한 입소문으로 20대에서 시작한 관객이 30대와 40대로 확대되고 있어 기록을 계속 경신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사실 개봉 전 악재도 있었다. 주연 가운데 한 명인 배우 김지수가 지난달 17일 영화 홍보차 진행된 인터뷰 장소에 숙취가 채 해소되지 않은 모습으로 40분이나 늦게 나타나 음주 인터뷰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이후 김지수는 공식 사과하고 자숙의 의미로 ‘완벽한 타인’의 모든 홍보 프로모션 활동에서 빠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개봉 전 블라인드 시사에서 배급을 맡은 롯데엔터테인먼트 작품 가운데 가장 높은 평점(5점 만점 기준 4.45점)을 기록하며 한껏 높아진 관객들의 기대를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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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규 감독

연출을 맡은 이재규 감독은 드라마 PD 출신이다. MBC에서 ‘다모’(2003)를 시작으로 ‘패션 70s’(2005) ‘베토벤 바이러스’(2008) ‘더킹 투하츠’(2012)를 만들었다. 이 가운데 ‘다모’와 ‘베토벤 바이러스’는 신드롬에 가까운 팬덤을 일으키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드라마 PD를 접고 이 감독이 영화계로 넘어와 처음 만든 ‘역린’(2014)은 당시 막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배우 현빈의 복귀작이었다. 원래 영화를 꿈꿨으나 결혼 뒤 현실과 타협하기 위해 드라마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는 드라마를 영화만큼 좋아하게 된 뒤에도 ‘배우·스태프와 대화하며 함께 만들어나가는 영화’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고.

이 감독 스스로도 “벽이 있었다”고 실감했을 만큼 제작부터 개봉까지 녹록지 않았던 데뷔작 이후 4년 만에 선택한 ‘완벽한 타인’은 ‘퍼펙트 스트레인저스(Perfetti sconosciuti)’라는 이탈리아 영화가 원작으로 배세영 작가가 각본을 쓰고 이 감독이 각색했다. 배 작가는 2007년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각본으로 데뷔해 그간 ‘킹콩을 들다’ ‘적과의 동침’ ‘바람 바람 바람’ 같은 드라마와 코미디 영화를 주로 썼다. tvN ‘SNL 코리아’ 전성기를 이끌었던 정치 풍자극 ‘여의도 텔레토비’ 역시 그의 솜씨다. 부부 동반 모임에서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를 실시간 공개하기로 하며 각자의 비밀이 터져 나오는 이야기로 배우 유해진·염정아, 조진웅·김지수, 이서진·송하윤 등이 극 중 부부로 등장해 펼치는 앙상블 연기에 흥미로운 원작을 한국식으로 잘 조율한 블랙코미디다. 이 감독은 드라마에 이어 이 영화로도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완벽한 타인’은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아닌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다. 리메이크는 독창적이고 새로운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가지고 있는 흥행 위험성을 어느 정도 상쇄해주는 강점을 가진다. 이미 검증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리메이크에 성공한 최근 한국영화들은 대개 원작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두 한국 상황에 맞게 잘 각색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근 리메이크 붐이 이는 것은 갈수록 높아지는 제작 수준이나 관객들의 눈높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디어나 기획 탓이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리메이크만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를 품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제작한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한국영화가 제대로 된 성장을 할 수 있다.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낮은 처우도 개선해야 할 것이고.

언제부턴가 한국영화는 완성도보다 ‘업계의 산업 논리’에 포섭된 듯하다. 영화를 선택하고 소비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인 완성도의 높고 낮음과 별개로 어느 수준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되고 특정 시기에 개봉되는 한국영화일수록 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가급적 봐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관객들은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흥행 보장을 이유로 개봉 초부터 1천개가 넘는 상영관을 편성 받는 텐트폴 영화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가 나오는 것을 막아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관객에게 돌아간다.

추석 시즌 나란히 ‘폭망’한 Big 4와 요란법석하지 않은 실내극 ‘완벽한 타인’이 증명하는 것처럼 ‘사이즈’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이야기’가 문제다.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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