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프랑스 몽생미셸 (Mont Saint Michelle)

  •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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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5   |  발행일 2018-11-15 제37면   |  수정 2018-11-15
바위섬 위 경이로운 성, 성스러운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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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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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솟은 수도원 건물. 첨탑에 미카엘 대천사의 동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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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생미셸 마을 안의 중세시대 가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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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회랑의 돌기둥.

황순원의 ‘소나기’가 실린 교과서로 공부했던 사람들은 다 안다. ‘소년’이었던 우리는 그 ‘잔망스러운 소녀’의 죽음으로 가슴 아팠다. 중고교 시절 달성극장, 부민극장, 오스카극장 같은 동시상영관에서 내가 찾았던 소녀들도 그랬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올리비아 핫세를 떠나보내고, ‘러브 스토리’의 제니를 알게 되었고, 제니가 떠난 후 다시 ‘선샤인’의 케이트가 찾아왔다. 그리고 소년과 청년의 어느 경계쯤에서 ‘라스트 콘서트’의 스텔라를 만났고, 나는 마침내 청년이 되어있었다. 내 소년의 종지부였던 그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한 장면에 비쳤던 비현실적인 성의 모습, 그곳이 바로 프랑스 몽생미셸이었다는 것은 유럽여행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40대 중년의 무능한 피아니스트 리차드와 20대 초반의 생기발랄한 스텔라가 함께 버스를 기다리며 섰던 거리 뒤의 해안과 성채가 바로 몽생미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곳으로 향해 가는 드라이빙 내내 영화 속 테마곡들이 입속에서 맴돌았다. ‘라스트 콘서트’의 경쾌한 ‘St. Michelle’을 시작으로 ‘선샤인’의 화면을 흐르던 ‘Sunshine on my shoulder’, ‘러브 스토리’의 ‘Snow Frolic’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A time for us’까지 이 나이가 아니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런 음악들이 절로 흥얼거려졌다. 노르망디 해안의 한적한 풍광과 거기에 입혀진 그 노래의 허밍들로 인해 나는 소풍 나온 소년 같은 기분이 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몽생미셸까지 가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작은 마을을 지나 물 빠진 해안으로 접어들자 금방 영화 속의 그 ‘성’이 나타났다.

섬 전체 바다 둘러싸인 세계문화유산
제방 건립 이후 만조에도 육지와 연결

주교 꿈 속 나타난 대천사, 수도원 계시
18세기 무렵까지 1천여 년에 걸쳐 건립
로마네스크 등 시대별 건축양식 반영
요새·나폴레옹 시대 정치범 감옥 사용

꼭대기 수도원 아래쪽 마을 통해 올라
길 양쪽 레스토랑·호텔·가게 줄지어
성벽길 틈새 따라 끝없이 펼쳐진 바다

수도사 명상 공간, 조각 돌기둥 볼거리
첨탑 꼭대기 2.7m 미카엘 대천사 동상


노르망디 끝자락, 대서양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는 이곳은 애니메이션 ‘라푼젤’ 속 코로나 왕국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그 말을 실증하듯 마치 섬 전체가 중세의 성처럼 보였다. 유럽에서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크다는 이 곳 바위섬에 건설된 몽생미셸은 수도원이다. 몽(mont)이 산을 뜻하고 생미셸(Saint Michelle)이 성 미카엘의 불어식 발음이니, 몽생미셸은 ‘성 미카엘의 산’이라는 뜻이다. 거주 인구 41명, 면적은 0.97㎢에 불과한 이 작은 섬은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인기 있는 관광지다. 1979년 섬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수도원의 거대한 벽 아래쪽으로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탓에 옛날에는 만조가 되면 섬 전체가 완전히 바다에 둘러싸였지만, 지금은 900m 길이의 제방이 건설되어 만조가 되어도 육지와 연결된다. 빅토르 위고는 간조 때 6시간 동안 15㎞ 넘게 빠져나가는 조수를 ‘도약하는 경주마’로 비유하기도 했다.

몽생미셸 수도원은 종교의 힘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서기 708년 아브랑슈의 주교였던 오베르(Aubert)의 꿈에 미카엘 대천사가 나타나 이곳 바위섬에 수도원을 지으라고 계시했다고 한다. 바위섬에 수도원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주교는 그 계시를 무시했다. 세 번째 꿈에 나타난 미카엘 천사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주교에게 화가 나서 손가락으로 강한 빛을 쏘아 머리에 구멍을 냈다고 한다. 잠에서 깬 오베르가 실제 자기 머리에 구멍이 난 것을 보고는 비로소 수도원 건설에 착수했다고 한다.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아브랑슈 박물관에는 구멍 난 오베르 대주교의 해골이 전시되어 있다.

이 수도원은 18세기 무렵까지 무려 1천여 년에 걸쳐 지어졌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건축양식이 혼재된 독특한 풍격을 갖게 되었다. 11세기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과 수도원이 더해졌으며, 13세기에는 고딕 양식의 회랑이 덧대어졌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증·개축을 거듭하며 그 시대의 건축 양식이 다양하게 반영되었다. 수도원이었지만 백년전쟁 중에는 요새로, 나폴레옹 시대에는 정치범들의 감옥으로 사용되다가 1863년에 와서야 다시 수도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몽생미셸에는 이른바 ‘팔경’(두산백과)이 있다. 제1경은 입구에서 수도원으로 향하는 외길 그랑뤼이며, 가게들 틈으로 보이는 노르망디 해변의 모습이 제2경, 계단 길을 지나 다다른 정상에서의 조망이 제3경, 그리고 빅토르 위고가 ‘도약하는 경주마’로 비유했던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의 모습이 제4경, 성벽을 따라 난 길이 제5경이다. 제6경은 수도원 자체이며, 13세기에 증축된 건물 라메르베유가 제7경이고, 마지막 제8경은 멀리서 조망하는 섬 전체의 모습이다.

셔틀버스는 제방 끝에서 우리들을 내려주었다. 수도원은 바위섬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아래쪽 마을을 통과해 올라가야 했다. 성 입구의 도르래가 달린 문 라방세를 통과하니 수도원으로 가는 외길 그랑뤼가 시작되었다. 넓지 않은 길 양쪽으로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 호텔 등이 줄지어 있었다. 초입에는 오믈렛으로 유명한 ‘라 메르 풀라(La Mere Poulard)’라는 식당이 있었다. 1888년에 아네트 풀라라는 여인이 이 중세 도시에 여인숙을 차린 것이 식당의 시작이었다. 풀라는 당시 밀물과 썰물의 시간 때문에 방문객들이 서둘러 떠나는 것을 보고 그들이 묵을 여인숙 영업을 시작했다. 이 식당 안에는 이곳을 방문한 셀럽들의 사진이 도배되어 있으며, 늘 긴 줄이 늘어설 정도로 명성이 높다고 한다. 이른 시간이라 오믈렛의 맛을 볼 수는 없었지만 관광객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으로 보아 허명은 아닌가 보았다. 이 식당의 오믈렛 못지않게 유명한 것은 몽생미셸에서만 맛 볼 수 있다는 양고기 요리 ‘프레 살레(Pre-Sale)’다. 프레 살레는 소금기 많은 수도원 앞 갯벌의 풀을 먹고 자란 양을 재료로 하는 이곳의 대표 요리다.

그랑뤼의 가게 사이로 보이는 노르망디 해변의 모습은 고도와 빛에 따라 다른 모습과 색을 선사했고, 가게와 가게가 만드는 골목길의 운치가 오르막의 피곤함을 잊게 만들었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의 좁은 계단 골목길이었다. 서울 종로경찰서 옆의 인사동으로 가는 좁은 골목길이 생각났다. 그곳은 한 부분이 특히 좁은데 이곳은 제법 긴 길이었다. 차례를 기다려 기어이 그곳을 올라가보니 벽 양쪽으로 어깨가 닿을 정도로 좁았다. 그렇게 기웃거리다 보니 어느새 계단의 끝이 나타났다. 골목 틈새로 액자 속 그림처럼 찔끔찔끔 보였던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썰물이어서 ‘도약하는 경주마’는 볼 수 없었지만 굽이도는 성벽 길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경에 가슴 속이 후련해졌다.

13세기에 필리프 왕에 의해 증축된 수도원 건물은 특별히 ‘경이로움’이라는 뜻의 ‘라 메르베유(La merveille)’로 불린다. 3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는 건물은 각각 정신·지성·물욕을 상징하며, 가장 아래층에는 평민 순례자를 위한 방이, 가운데층에는 귀족과 기사, 그리고 맨 위층에는 성직자를 위한 식당과 회랑이 있다. 수도원 안에는 금욕과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시설만 있는 듯 보였다. 벽 정면에는 용을 제압하는 당당한 모습의 미카엘 대천사가 조각되어 있고, 고딕 양식의 예배당은 정갈하면서도 엄숙하다. 한편에는 속세와의 단절을 상징하듯 절벽 밑의 물자를 수송하는 커다란 도르래가 설치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식료품과 물자를 수도원 안으로 올렸다고 한다.

특히 ‘클로이스터’라고 불리는 회랑과 안뜰은 수도원의 가장 큰 볼거리다. 수도사들의 휴식과 명상의 공간인 이곳은 다양한 종교적 주제를 소재로 조각된 127개의 돌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다. 돌기둥이 만들어낸 안쪽의 사각 공간은 소담한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세속의 발길이 드나들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경건함이 서려 있다. 바다를 향한 아치형 출입구 너머로 바닷물이 빠져나간 진회색 갯벌만이 아스라했다.

80m 바위 위에 솟아있는 수도원 건물은 꼭대기까지 높이가 157m에 이른다. 첨탑 꼭대기에는 2.7m 크기의 미카엘 대천사의 동상이 서있다. 칼과 방패를 들고 발밑에 용을 깔고 있는 모습의 이 동상은 1895년 프랑스의 조각가 프레미에가 만든 작품이다. 유난히 반짝이는 현재의 첨탑 동상은 1987년에 다시 올린 것이다. 하늘을 향해 날개를 펼친 채 굽어보고 있는 미카엘 동상은 이 섬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아래 선 인간을 더욱 작아지게 만들었다.

섬이면서 육지이고, 성이면서 수도원인 몽생미셸은 이처럼 우뚝하면서도 우아하고, 강렬하면서도 성스럽다. “꿈결처럼 아련하면서도 현실처럼 뚜렷한 곳/ 기사처럼 위압적이면서도 숙녀처럼 우아한 곳/ 습지로 둘러싸여 있다 바닷물이 속세를 차단하는 곳/ 낮에는 은빛 물을, 으스름한 녘엔 금빛 물을 융단처럼 깔고 있는 곳/ 그러다 스스로 빛이 되는 곳” (박찬영, 엄정훈, ‘세계지리를 보다’, 리베르스쿨, 2012)이라는 묘사처럼 몽생미셸은 참으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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