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다시 韜光養晦를 말하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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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2   |  발행일 2018-11-12 제30면   |  수정 2018-11-12
곤두박질 치는 중국의 경제
무역전쟁과 허영의 부작용
싼 소주와 라면 등 먹기 시작
덩샤오핑 아들인 덩푸팡은
발전속도 조절하라고 제안
[아침을 열며] 다시 韜光養晦를 말하는 중국
이정태 경북대 교수

중국인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모양이다. 식사 때마다 모태주, 수정방, 오량액 같은 최고급 백주를 즐기던 중국인들이 값싼 서민소주인 얼꿔토우를 찾기 시작했다. 소비감소추세에 있던 라면과 값싼 절임반찬을 찾는 이도 늘어났다. 이런 중국의 사정을 두고 전문가들은 미중무역전쟁 등 경기불안에 따른 소비심리위축이 소비감소로 이어진 것이라고 진단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좀 더 엄격히 말하면 미국 탓이 아니라 중국이 자초한 일이다. 분에 넘치는 허영을 부린 탓이다. 2008년 올림픽이 가져다준 풍요가 과거와 현실을 잠시 망각하게 한 것이다. 마치 88올림픽 장사에서 돈 맛을 본 한국이 딱 10년이 지난 1997년에 IMF 환란사태를 맞은 것과 흡사하다.

중국 지도부도 경제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최근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인 전원이 참석한 중앙정치국 회의는 “현재 경제하방 압력이 확대되고 있으며, 경영상 곤란을 겪는 기업이 비교적 많고, 장기적으로 누적된 리스크가 드러나는 상황”이라고 실토했다. 실제 2018년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09년 1분기 이후 최저치인 6.5%로 낮아졌고, 10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27개월 만에 가장 낮은 50.2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의 경제둔화세를 나타내는 지표이며 민심동요를 초래할 위험한 징표이다. 국가부채 또한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2017년 말 기준으로 부채가 32조4천억달러에 이르렀는데 이는 국내총생산 12조2천억달러보다 2.65배나 높다. 실물경기가 후퇴하여 나라살림이 어려워지면 기업뿐만 아니라 가계파산자가 속출하게 마련이다. 중국 지도부가 긴장하는 이유이다. 생활고로 민심이 흉흉해지면 정부는 파산된 기업과 개인구제에 막대한 재정투입을 해야만 하고, 상대적으로 사회복지부문 예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또 다른 계층의 불만을 촉발시킬 것이고 시진핑 정부의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는 공염불이 될 수 있다.

그래도 중국은 여전히 중국이다. 넓은 땅, 깊은 역사, 풍부한 경험, 다양한 사람과 지혜는 기본 밑천이다. 그것이 수천 년 중국을 중국으로 있게 한 힘이다. 깊은 역사의 구석구석에는 지혜를 가진 고수와 기인들이 숨어있다. 중국개혁개방의 설계자 덩샤오핑의 아들인 덩푸팡도 그중의 한 명이다. “우리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진실을 추구해야 하고, 냉철한 마음을 지니고 주제를 알아야 한다.” “국제적인 불확실성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평화와 발전의 방향을 고수하면서 협력적이고 윈-윈을 추구하는 국제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거만하게 굴어서도 안 되고 자신을 비하해서도 안 된다.” 최근 덩푸팡이 시진핑 정부에 국가경영의 원칙준수와 반성을 촉구하고, 문제해결의 계책을 제안한 내용이다. 얼핏 들으면 ‘중국제조 2025’의 기치를 내걸고 미국에 정면 도전한 시진핑 정부의 무모함에 대한 힐난처럼 보이지만 무역전쟁으로 궁지에 몰린 시진핑 정부에 가장 절실한 계책이다. 재주를 감추고 때를 기다리라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견지했던 아버지 덩샤오핑과 적을 공격하려면 적보다 최소 3배의 전력을 가져야 한다는 손자병법의 계책을 상기시키고 있으며 발전속도를 조절하라는 주문이다.

남은 것은 시진핑 주석의 선택이다. 위대한 중화의 부흥이라는 중국 꿈을 잠시 내려놓고 일대일로와 중국제조 2025의 실천에 매진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외교는 내정의 연장일 뿐이다. 실속을 챙기면서 자국민이 행복한 최적의 중국을 만들면 그만이다. 일대일로 인력양성에 분주한 중국을 보면 중국의 실제가 보인다. 철길공사가 진행되면서 구간마다 수천 명의 인력이 배치되고 있다. 철로와 차량관리뿐만 아니라 역이 생기면서 새로운 기업과 업체가 생기고 승무원, 열차관리인, 수리공, 배선공, 화장실관리, 식당청소부 등의 일자리가 부지기수로 만들어지고 있다. 겉으로 주춤하는 중국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중국을 동시에 보면 우리의 할 일과 미래도 볼 수 있다. 이정태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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