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발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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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12 08:02  |  수정 2018-11-12 08:02  |  발행일 2018-11-12 제24면
[문화산책] 발견의 의미
이진명 <대구미술관 학예실장>

우리말로 ‘발견’은 모르던 사실이나 대상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 순간을 지칭한다. 그러나 유럽에서 발견은 진리 자체를 뜻한다. 그리스어로 ‘아레테이아(aletheia)’라고 하여 레테강을 건넌 순간을 의미한다. 유럽 문명권에서 발견의 반대말은 습관이다. 습관은 고향처럼 포근하고 편안한 현재 상황을 뜻한다. 솜이불로 덮여있는 상태이며, 레테강을 건너지 않았을 때다.

그러나 솜이불이 들춰져 추위와 낯선 상황에 맞닥뜨린 순간에서야말로 발견이 기다린다. 그래서 발견을 영어로 ‘디스커버(dis-cover)’라고 한다. 솜이불이 들춰져서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면 완전히 낯선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정보로 수정하는 작업을 거듭해야 한다. 이 작업을 가리켜 창조(creation)라고 한다. 정착민에게 새로운 정보는 필요하지 않다. 습관은 아주 편안하고 포근한 솜이불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주해온 어떤 사람에게 정착민의 문화는 발견의 계기가 된다.

19~20세기는 서구의 세기였다. 글로벌 역사의 패러다임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귀결되었다. 문화의 측면에서는 모더니즘이 국제적 기준이 되었다. 우리에게 서구 모더니즘은 발견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시서화 일률의 전통은 서구 모더니즘과 대결하면서 파국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파국의 국면에서 점차 유용한 정보로 타협되면서 우리 전통은 서구에서 찾기 어려운, 매우 특별한 모더니즘 양식으로 승격되었다. 시서화 일률의 전통은 유가의 전통이다. 유가의 지식은 견문지와 덕성지로 나뉜다. 우리는 유구한 시기를 통해 견문지보다 덕성지를 발전시켜 왔다. 인격과 품성을 드높이고자 했고 사람의 깊이를 예술에 반영하고자 했다.

이우환·최병소·이강소의 작품은 우리에게 내재된 자아와 품성이 극한까지 발전되어 극화된 예술 양식이다. 우리에게 서구 모더니즘은 시서화라는 습관의 솜이불을 들춰낸 발견이었다. 이 서구 모더니즘은 이제 우리만의 유용한 데이터로 훌륭하게 변신했다.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제 서구 미술계에서 한국 작가들을 주목하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서구의 중심적인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서구 미술의 발견이라는 첫 고통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서 이룩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김우조, 백태호, 그리고 격동기의 예술가전’이 열리고 있다. 이들은 솜이불을 빼앗겨 고통이 지대했어도 불굴의 정신으로 묵묵하게 자기 양식을 창조했던 우리의 스승들이다. 그들의 고통이 유용화된 정보로 승격되었기에 오늘날의 우리도 있다. 나는 그분들의 예술 역정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이진명 <대구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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