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완벽한 타인’ 이서진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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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9   |  발행일 2018-11-09 제43면   |  수정 2018-11-09
“예능서 좋아해준 내 모습 스크린 옮겨…뭐가 진짜고 연기인지 헷갈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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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모는 이제 막 나이 어린 아내(송하윤)와 결혼해 행복한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는 꽃중년 사장이다. 외식업계의 스타가 되길 꿈꾸며 최근 레스토랑을 개업했지만 앞서 망한 사업만 여러 개라 친구들은 그의 새로운 사업에 우려를 표한다. 준모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40년지기 친구 태수(유해진), 석호(조진웅), 영배(윤경호)와 커플 동반으로 저녁 식사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석호의 아내 예진(김지수)이 휴대폰을 공유해 보자며 뜻밖의 게임을 제안한다. 각자의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한정된 시간 동안 오는 모든 전화, 문자, 카톡을 강제로 공개하자는 것이다. 모두가 찬성하는 분위기에서 혼자만 빠질 수도 없는 상황. ‘휴대폰 잠금해제 게임’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한 영화 ‘완벽한 타인’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다.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을 지닌 7명의 배우들이 모인 이 흥미로운 조합에서 유독 눈길을 끈 건 준모 역의 이서진이다. “난 옛날 여자친구랑 절대 연락 안 해”라며 누구보다 당당한 척 하지만, 주변에 이성이 늘 끊이질 않는 바람둥이 같은 인물이 바로 준모다. 예능 ‘꽃보다 할배’ ‘윤식당’ 시리즈에서 보여준 이서진의 깔끔하고 친근한 이미지와는 왠지 다른 듯하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다.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서진의 휴대폰만큼은 궁금하다”고 말했던 것도 준모 캐릭터와의 싱크로율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실 이재규 감독이 시나리오를 줄 당시에는 내 역할이 뭔지 말도 해주지 않았다. 읽으면서 아마 나한테 준모 역할을 주겠다 싶은 생각만 어렴풋이 들었는데 그게 맞았다”는 이서진. “생각 없이 말을 툭툭 던지는 게 나랑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한 그는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흘러가는 이 이야기에서 ‘핵망’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그런 그의 모습이 반갑다.

“멀티캐스팅 영화로 복귀
좋은배우와 촬영 부담 덜어
바람둥이 늦깎이 신랑 역할
준모같은 바람둥이는 아냐
7명의 배우들 식탁 만담
떠들고 놀며 즐겁게 작업”

“독신주의 고집하지는 않아
나영석 PD와는 윈윈관계
서로에게 믿음 커 예능 호흡
차기작은 드라마 ‘트랩’
임팩트 강한 악역 맡아 신선
이제 멜로는 하고 싶지 않아”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며 기분좋게 출발했다. 흥행을 예상했나.

“영화가 잘 된 게 없어서 이번엔 잘 됐으면 했는데 다행이다. 그간 공백이 길었던 건 섣불리 영화에 도전을 했다가 안되면 영영 못하게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중하게 오래 기다려왔는데 이번엔 내가 인정하는 사람(이재규 감독)이 만든 영화이고, 배우들도 다 좋아서 내심 기대했다. 촬영할 때보다 결과물이 훨씬 더 잘 나온 것 같다.”

▶3년 만의 복귀작이 멀티캐스팅 영화다. 좀 더 자신을 부각시킬 수 있는 영화로 멋지게 컴백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내가 부각된다고 해도 끌렸던 작품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멀티캐스팅 영화들이 더 탄탄하고 꽉 차 보이는 것 같아서 좋다. 좋은 배우들과 같이 나오니 부담감도 줄일 수 있고. 사실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그간 예능을 하면서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편하게 할 수 있는 쪽에 관심이 생겼는데 바로 ‘완벽한 타인’ 같은 영화였다. 다들 연기로는 처음 만나지만 여럿이 같이 호흡을 맞춰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이재규 감독과 ‘다모’(2003) 이후 오랜만에 일을 하는 것도 좋았다.”

▶준모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늦깎이 신랑이지만 무지막지한 바람둥이다. 예능에서 보여준 모습과 닮은 듯 안 닮은 듯 자연스럽게 겹쳐보였다.

“그래서 내가 제일 편하게 촬영을 했던 것 같다. 이재규 감독이 왜 나를 캐스팅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내가 예능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까, 그 모습 그대로 영화에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 역시 변호사나 의사 같은 (전문직)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아예 다른 느낌의 역할을 연기해 보니 더 색다르고 재밌었다. 아마 관객들도 뭐가 진짜고 뭐가 연기인지 헷갈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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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의 이서진은 어떤 사람인가.

“준모처럼 바람둥이는 아니다.(웃음) 그래서 그건 나와 닮지 않았다고 계속 얘기했다. 어쨌든 그런 모습만 보여주는 건 아니니까. 이 영화에서 내가 할 일은 무거운 분위기를 가볍게 풀어주는 역할이었다. 그건 귀찮고 심각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평소 내 모습과 닮았다.”

▶러닝타임 대부분을 식탁 위에 둘러 앉은 7명 배우들의 만담 같은 대화에 할애한다. 감독이 본인은 별로 한 게 없다고 말했을 만큼 배우들이 다 알아서 척척해냈다고 들었다.

“그래서 감독이 엄청 좋아했다. 사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모두가 서먹서먹했다. 리딩을 할 때도 대본에 나와 있는 각자의 대사들을 보면서 별다른 움직임 없이 대사만 치는 이 영화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라는 걱정과 의구심도 있었다. 무언가를 그 안에 채워넣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으로, 또 어떻게 채워넣어야 할지 다들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정말 다들 미친 듯이 했다. 풀샷과 롱테이크가 많은 편이었는데 중간에 NG가 나더라도 끊지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이 다른 대사를 하거나 애드리브로 막으면서 촬영을 계속 이어갔다. 그 과정이 정말 재밌었다.”

▶한 달간의 촬영이지만 배우 모두가 늘 한자리에 모여서 촬영한 건 특별한 경험일 것 같다.

“광주의 세트에서 한 달 동안 합숙하다시피 했다. 각자 숙소에서 잠만 따로 자는 거지, 눈 떠서 자기 전까지 항상 같이 생활했다. 남자들은 사우나에서부터 만나서 촬영장도 같이 가고 저녁도 같이 먹고 다시 같은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촬영을 할 때나 안 할 때나 배우들은 계속 식탁에 앉아서 떠들었다. 나중에는 이게 촬영인지 노는 건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이런 작업을 언제 다시 해볼 수 있을까 싶다.”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대사 수위가 좀 높은 편이다.

“내가 일부러 대사 수위를 좀 높였다. 준모는 생각이 없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다. 그리고 신혼이기 때문에 아내와는 야한 이야기와 행동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친구들과 만났을 때도 40년지기라면 정말 스스럼없이 쌍욕도 많이 한다. 내가 극 중에서 욕은 제일 많이 하는데, 그래도 의사(조진웅)와 변호사(유해진) 친구에겐 안 한다. 백수라서 만만한 영배(윤경호)에게만 욕을 한다. 원래 그런 게 좀 있지 않나.”(웃음)

▶배우들끼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심도 있었을 것 같다. 당시의 현장 분위기를 전한다면.

“당연히 보이지 않는 경쟁이 있었다. 대본상에는 음식이 나오면 서로에게 덜어 준다 정도로 지문이 적혀 있는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음식이 나오면 모두가 달려들면서 ‘맛있다’ ‘더 줘’라는 식으로 미친 듯이 애드리브를 했다. 서로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말이다. 특히 해진씨는 워낙 준비를 철저히 해오는 것으로 유명한데 정말 그랬다. 연기에 대한 고민도 많고 연구도 깊이 하는 편이다. 나는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쪽은 감독과 이렇게 하면 어떤가, 저렇게 하면 어떤가하며 디테일적인 면을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다 똑같아 보였지만.”(웃음)

▶만약 영화에서처럼 휴대폰 내용을 공유하는 게임을 친구들과 할 기회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 같나.

“글쎄. 아마 나보다는 친구들이 먼저 하지 말자고 할 것 같다. 나 역시 사적인 영역은 분명하게 선을 긋는 편이라서 남의 사생활은 굳이 알고 싶지 않다. 설령 안다고 해도 모르는 척 할 것 같다.”

▶독신주의를 고집하고 있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나.

“독신주의를 고집하는 건 아니다. 나도 결혼이 필요하고 가정을 이루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단지 시기를 놓쳐 혼자 생활하다보니 이 생활이 익숙해졌을 뿐이다. 가끔 친구들 가족과 밥을 먹을 때가 있는데 자식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그들의 얼굴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막상 집에 들어오면 바로 생각이 바뀐다. ‘내가 미쳤지, 혼자 있는 게 이렇게 편한데’라고 말이다.”

▶예능 출연은 사실 의외였다. 하지만 이제 이서진하면 ‘꽃보다 할배’ ‘윤식당’ ‘삼시세끼’ 시리즈에서 보여준 예능 캐릭터가 또렷하게 각인돼 있다.

“잘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잘 되니 계속 하게 됐다. 사실 나영석 PD의 꾐에 안 넘어갔으면 시작도 안 했을 거다. 방송 전까지 나 PD와는 친분관계가 전혀 없었다. 1박2일에 한 번 출연한 것을 빼면 ‘꽃보다 할배’ 촬영 떠나기 딱 1주일 전에 만난 게 전부다. 회사에선 평소 친분관계가 있던 나 PD가 tvN으로 회사를 옮기면서 새 프로그램을 시작하니까 한 번 도와주자는 식으로 얘기했다. 그래도 최소한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얘기해줘야 하는데 출발 날짜가 다가와도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지금처럼 선생님들을 모시고 여행을 가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내가 안 한다고 할 줄 알았던 거지. 결국 촬영을 코앞에 두고 ‘형은 아무것도 준비할 것 없다’며 나 PD가 되게 친근한 척하면서 다가왔다. 나를 언제 봤다고.(웃음)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방송을 잘 만드니까 그에 대한 믿음이 생겼고, 계속 같이 일을 하게 됐다. 물론 내 이미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삼시세끼’는 고사 의사를 밝혔는데.

“사실 ‘삼시세끼’가 제일 부담이 없긴 한데 시골에서 사는 게 나와 안 맞았다. 시골에 가면 너무 무기력해진다. 일하기도 싫고. 원래 ‘삼시세끼’의 콘셉트는 나 같은 사람을 시골에서 살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시청자들이 음식도 잘 만들고 모든 걸 열정적으로 하는 (유)해진씨와 (차)승원씨의 모습을 좋아했다. 콘셉트가 바뀐 거다. 이럴 거면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윤식당’은 잠깐의 긴장감이 좋았다. ‘꽃할배’처럼 눈떠서부터 잘 때까지의 긴장감은 솔직히 힘들지만 여기선 장사할 동안만 잠시 긴장하면 되니 훨씬 부담감이 덜했다. 난 사람을 대하는 게 즐겁다. 어떻게 보면 그게 제일 힘든건데 매번 새로운 손님을 맞을 때의 긴장감이 재밌다. 돈도 쏠쏠하게 들어오니 좋고.”(웃음)

▶배우인 당신에게 예능으로 굳어진 이미지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해보진 않았나.

“나 PD와는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해서 같이 가고 있다. 이젠 친한 사이가 됐지만 언제까지 그와 일을 하게 될지는 나도 알 수 없다. 예능은 빨리 잊힌다. 그리고 그런 것에 부담감을 갖고 있지는 않다. 요즘은 나 PD가 ‘형이 빨리 연기를 해야 나도 형이랑 일을 좀 하지’라고 말한다. 내가 연기자로 돌아가기를 그도 원한다. 이재규 감독이 나를 잘 알기 때문에 이 영화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듯이, 나 PD도 자기가 만드는 예능이 나와 잘 맞을 것 같아서 제안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나와 잘 맞아 떨어졌지만 이러다가 뭐 하나라도 제대로 안되면 그 땐 과감하게 헤어지겠지.”(웃음)

▶차기작은 OCN 드라마 ‘트랩’이다. 연기적인 행보가 빨라지고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은 뭔가.

“공백이 있더라도 내가 맘에 드는 것을 하고 싶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강한 역할인데 ‘트랩’에선 반전과 임팩트가 있는 악역이라 나름 재미도 있고 신선했다. 그리고 이제 멜로는 하고 싶지 않다. 내 나이에 멜로를 하게 되면 상대 여배우는 분명 나보다 어릴 텐데 거기에 맞는 멜로를 하는 게 싫다. 만약 하게 된다면 연배가 비슷한 사람과의 중년멜로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또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부정을 느낀다거나 하는 그런 역할도 못 할 것 같다. 보는 분들도 별로 안 좋아할 것 같고. 나의 실제 삶이 있기 때문에 그런 역할들은 더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솔직히 지금은 연애도 못할 것 같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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