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따라 청도 여행 .6] <끝> 고인돌의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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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훈기자 박관영기자
  • 2018-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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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천·동창천 본류 등 290여 기 산재…당제 지내며 마을 안녕 기원하기도

청도의 대표적 고인돌 유적인 화양읍 범곡리 고인돌군. 고인돌군의 규모가 커 인근에 청동기인의 대규모 취락지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도군 금천면 임당리 고인돌군. 임당리 입구의 언덕에 자리한 고인돌군 주변으로 느티나무가 서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의 고인돌에서 출토된 석검 모형.
청도는 고인돌(지석묘, 支石墓)의 고장이다. 청도에서 확인된 고인돌의 수만 290여 기로, 이는 수량이나 규모에 있어 영남의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한 수준이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으로 당시 지배계층의 주검과 부장품을 묻은 곳이다. 오래전 높은 생산력을 바탕으로 청도에 뿌리를 내린 특정세력이 고인돌의 주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농경이 시작되고 잉여생산물이 발생하면서 계급사회가 등장한 흔적이 고인돌로 남은 것이다. 시리즈 6편은 청도의 청동기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는 고인돌에 대한 이야기다.

탁자식·개석식 주류…60여 곳서 발견
화양읍엔 경북기념물 범곡리 고인돌 밀집
청도천변 살던 청동기인이 조성한 무덤
지배세력 위세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
임당리 고인돌은 주민 휴식처로도 사용

#1. 청동기 지배계층의 상징

청도군 일원에는 수많은 고인돌군(群)이 산재해 있다. 무려 60여 곳에서 고인돌이 발견됐다. 청도의 고인돌은 탁자식과 개석식이 주류를 이룬다. 탁자식 고인돌은 3~4매의 돌널(석관)을 땅 위에 만든 후 거대한 돌판을 올려둔 모양이다. 개석식은 땅속에 무덤방을 만든 후 큰 돌을 올려둔 방식의 고인돌을 일컫는다.

청도의 고인돌군은 우리나라의 여느 고인돌군과 마찬가지로 하천 주변에 자리하고 있다. 하천 인근의 퇴적지는 농사를 짓기에 좋고 수렵과 채집에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청도의 고인돌은 주로 청도군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청도천과 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는 동창천의 본류와 지류 주변에 자리해 있다.

청도천 유역의 고인돌들은 청도읍과 화양읍을 비롯해 각남·풍각·각북·이서면 일원에 골고루 분포돼 있다. 특히 화양읍에는 청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고인돌 유적인 경북도 기념물 제99호 범곡리 고인돌군이 자리해 있다. 범곡리 고인돌군은 청도천 유역에서도 가장 큰 규모로 무려 34기의 고인돌이 밀집해 있다. 원래 더 많은 고인돌이 존재했지만 개간 등으로 인해 파괴됐다고 전해진다.

범곡리 고인돌군 역시 청도천변에 기대어 살았던 청동기인들이 조성한 무덤이다. 고인돌군의 규모가 꽤 크기에 인근에는 청동기인들이 살았던 대규모 취락지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범곡리 고인돌군은 청도읍내의 북쪽을 통과하는 도로변에 위치해 있어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볼 수 있다. 도로가 통과하는 탓에 범곡리 고인돌군은 남·북으로 나눠져 있는데, 북쪽 고인돌군의 규모가 더 크다. 특히 북쪽 고인돌군은 청도천 남쪽의 높은 구릉지에 자리해 있어 사방이 탁 틔어 있다. 고인돌군 북서쪽으로 삼성산과 비슬산이 자리해 있어 청동기인들을 매서운 겨울바람으로부터 지켜주었을 것이다. 승용차 크기에서부터 탁자 크기의 고인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한 고인돌들이 북서쪽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나란히 두 줄을 이루며 서 있다.

#2. 이서국 성립의 기반

범곡리 고인돌군 등 청도의 청동기 유적은 삼한시대 청도지역의 읍락국가(邑落國家) 이서국(伊西國)을 성립시켰던 지배세력의 위세를 보여주는 유적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대규모의 고인돌 유적을 읍락국가 형성의 고고학적 바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노미경 청도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서국의 무덤이라 할 만한 왕릉급 무덤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청동기시대의 유력집단이 이서국 성립의 기반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많은 고인돌군들이 산재한 청도천 중상류 인근 화양읍 토평리에는 이서국의 중심성지로 추정되는 백곡토성이 자리해 있다. 현재의 백곡토성은 성곽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쇠락한 모습이다. 이서국의 성터임을 알리는 비석이 서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서국과 연결할 만한 유물이 발굴되지는 않았다. 백곡토성은 성벽 아래에 2~3단의 석축을 쌓은 후 토벽을 쌓은 방식으로 축조됐는데, 이는 신라에서 보기 드문 축성방식으로 확인됐다.

동창천 유역에도 수많은 고인돌군이 산재해 있다. 동창천을 따라 이어지는 운문·금천·매전면 일원 곳곳에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금천면 임당리 고인돌군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임당리 고인돌군 역시 범곡리와 마찬가지로 언덕 위에 자리해 있다. 언덕에서는 동창천 앞의 너른 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으며 운문면 소재지를 바라볼 수도 있다. 임당리 고인돌군 주변으로는 10여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이 자라고 있어 신비로운 느낌마저 감돈다. 임당리 주민들도 고인돌을 신성시했다. 주민들은 1970년대까지 매년 정월대보름 때마다 고인돌군에서 당제(堂祭)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임당리 고인돌군 입구의 안내판에는 ‘천년의 수명을 자랑하는 느티나무가 3번이나 자라고 사라져간 유구한 역사’라는 문구가 쓰여 있어 주민들의 자부심을 짐작게 한다. 지금의 임당리 고인돌군은 주민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다. 고인돌군 한가운데에 정자와 벤치가 자리하고 있고, 입구에는 간단한 몸풀기가 가능한 운동기구가 위치해 있다.

#3. 이어지는 청동기 유적 발굴

청도에서는 최근 고속도로 건설 등 대규모 개발사업이 이뤄지면서 청동기 유적이 대거 발굴됐다. 국도 25호선 및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건설 중에 화양읍 진라리에서 청동기 유적을 발굴한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진라리 유적은 고인돌과 주거지가 함께 분포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청동기 시대 청도지역 마을의 형성과 관련한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출토 유물로는 붉은간토기와 민무늬토기, 돌화살촉을 비롯해 석검, 돌도끼 등이 출토됐다. 특히 진라리 고인돌 아래 돌널무덤에서 출토된 국내 최대 길이의 석검은 청도의 대표적 청동기 유물로 손꼽히고 있다.

2008년 각남면 화리의 풍각~화양 간 국도 4차로 확장공사 과정에서 고인돌과 석관묘 등의 청동기 유적이 확인됐다. 특히 화리 유적은 무덤층 아래에서 주거지가 확인돼 눈길을 끌었다. 청도천 주변에서 나타나는 청동기 시대 무덤과 주거지 간의 상관관계를 살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각남면 신당리에도 고인돌군이 자리하고 있다. 신당리에서는 2008년 밭을 갈던 주민이 석관 내부에 있던 석검과 돌화살촉을 발견하면서 정식 발굴조사가 이뤄질 수 있었다. 당시 출토된 석관은 청도박물관 고고전시실에 이전 복원돼 있다. 이밖에도 청도의 수많은 고인돌이 선사 연구가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노미경 청도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청도지역의 선사유물 상당수는 최근의 개발사업이 이뤄지면서 세상에 드러난 경우가 많다. 청도에는 아직도 미개발 지역이 많기 때문에 고인돌의 추가 발견은 물론 이서국 관련 무덤이 발견될 가능성도 남아있다”고 말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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