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불공정한 ‘후보자 게재순위’ 개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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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5   |  발행일 2018-11-05 제30면   |  수정 2018-11-05
국회, 연내 소선거구제 개선
기성정치 기득권 타파위해
투표용지의 후보자 순서를
큰 정당 우선으로 하지말고
추첨으로 배정하는 게 중요
[아침을 열며] 불공정한 ‘후보자 게재순위’ 개혁해야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정치학박사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올해 안에 현행 소선거구제를 개혁하겠다고 논의 중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대체로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향이 대안으로 제시돼왔다. 자유한국당은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한다. 선거제도와 맞물린 국회의원 정수 확대 여부도 쟁점이다. 기성 정당의 기득권을 넘어서는 타협을 이뤄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우리 국회에서 정치적 타협 과제는 늘 여야 사이의 이견이었다. 이번 선거법 개정 논의에서는 여야 관계만이 아니라 큰 정당과 소수 정당의 입장차가 겹쳐 있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같은 소수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소수 정당들은 현행 선거제도를 유지한 채로 제3세력이나 소수 정당의 성장이 어렵다는 점에서 개혁이 더 절실하다. 반면에 제1, 2당인 민주당과 한국당도 동참은 하고 있지만, 현행 선거제도에서 특혜를 누리고 있어 소극적이다.

기득권 구조에서 은폐되고 유지되어온 대표적인 선거제도가 사실은 큰 정당 우선의 후보자 게재순서다. 큰 정당 우선으로 기호를 주고 투표용지에 게재한다.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호까지 부여받는다. 공직선거법 150조에서 ‘정당 후보자의 투표용지 게재순위’를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기성 정당, 특히 큰 정당에 대단한 특권이고, 소수 정당이나 신진 세력에 차별적인 제도다. 정당 민주주의 방해 요인이다. 고정적으로 앞 번호를 받은 정당 후보자는 많은 이득을 본다. 뒤쪽은 그만큼 불리하다. 여러 실증 조사를 통해 입증된 바다. 대통령선거처럼 후보가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경우는 그래도 괜찮지만, 지방의원 선거로 가면 정말 후보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번호만 보고 투표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알다시피 지방선거에서는 같은 번호만 보고 내리 투표하는 줄투표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정당을 보고 투표했기 때문에 정당 책임정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당 프리미엄이 과도하게 압도한다. 공정경쟁을 방해하는 차별적 제도다.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이런 불평등 제도가 위헌으로 판정나 시정되기도 했다. 추첨을 통해 순서를 정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 그랬다. 추첨제가 적용됐던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던 박정희 후보는 기호 6번이었다. 추첨제뿐 아니라 순서에 따른 프리미엄을 없애기 위해 투표구마다 순서를 돌려가면서 용지에 게재하는 교호제를 덧붙이기도 한다. 현재 우리의 교육감 선거 방식이다. 이 교육감 선거 방식을 다른 선거에도 적용하면 된다. 교육감 선거와 달리 정당이 참여하는 선거라는 점에서 정당책임정치를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투표용지와 벽보에 소속 정당은 후보자 이름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표식이 된다. 정당정치가 발전한 나라들에서도 이런 추첨제를 택하고 있다. 독과점에 안주하지 않았을 때 정당이 승리하기 위해 경쟁적인 정당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다. 오히려 정당정치 발전에 도움이 된다.

대기업 독과점을 비판하면서 막상 자신들은 거대정당 독과점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독과점의 특권을 개혁한다면 지역별 편향 현상도 줄어들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 줄투표 문제도 해결된다. 기성 정당이 문제가 있다면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정당도 등장하기에 용이하다.

현재의 정치인들도 대체로 이런 지적에 공감한다. 그러나 실제 개혁에는 입을 다문다. 현행 제도가 계속되면 1, 2당 후보들은 공천만 받으면 재당선될 가능성이 크지만, 추첨제로 바뀌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기득권이다. 공직선거법 제150조 ‘큰 정당 우선의 기호순번제’의 개혁은 기성 정치세력의 기득권 구조를 타파하고, 한국 선거와 정당정치를 혁명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정치개혁 과제임을 역설하고 싶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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