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여권의 독선, 독주 길 닦아주는 한국당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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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5   |  발행일 2018-11-05 제30면   |  수정 2018-11-05
비대위-조강특위 노선투쟁
기존 지도부의 무기력 노출
기득권 세력은 저항 신호탄
보수정비 부정적 조짐 속출
집권세력 국정운영은 수월
[송국건정치칼럼] 여권의 독선, 독주 길 닦아주는 한국당

지금 자유한국당의 당 운영은 정상이 아니다. 홍준표 전 대표가 6·13 지방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후 5개월 가까이 당의 핵심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의가 구성되지 않았다. 김병준 위원장이 이끄는 비상대책위원회가 있기는 하다. 또 전원책 위원이 전권을 행사한다는 조직강화특위가 가동 중이기도 하다. 두 기구에서 당협위원장 교체 같은 인적청산, 그리고 범야권 인사 접촉을 통한 보수 재결집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도무지 진전이 없다. 이런저런 기준을 제시하는 말만 무성하다. 실제 결과로 이어지는 행동은 없다. 비대위와 조강특위는 “조급하게 재촉하지 말라”고 한다. 기다리면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거라고 큰소리친다. 그 말을 믿으려면 긍정적인 징후라도 감지돼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부정적인 조짐만 속속 포착된다.

당장 김병준 비대위와 전원책 조강특위가 노선투쟁,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태극기 세력’이 포용 대상이냐를 놓고 부딪치더니, 두 기구의 위상과 역할을 놓고 티격태격한다. 이 과정에서 “내가 임명권자다”(김병준), “비대위가 조강특위의 상급 기구처럼 군다”(전원책)는 등 서로에 대한 노골적 감정도 드러냈다. 여기에 기존의 당 지도부도 정치투쟁에만 집중하거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본회의 시정연설 때 한국당 함진규 정책위의장이 몰래 한자 연습을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는데, 이는 가십거리로 볼 문제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그날 야당이 실패한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소득주도성장 기조 유지를 여야 의원들이 모인 자리서 천명했다. 야당이 참사라고 주장하는 서민경제 분야에서도 장밋빛 청사진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제1 야당의 경제정책 책임자인 정책위의장은 딴짓을 했다.

외부에서 비상수혈된 지도부와 기존의 지도부가 중심을 잡지 못하자 당내 저항세력의 반발도 예상보다 빨리 분출되고 있다. 친박계 중진 홍문종 의원은 김성태 원내대표 등 복당파를 겨냥,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찬성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개선장군처럼 당에 와서 좌지우지하고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고 있다”고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심지어 선거구제 개편 논란과 관련해선 “당론을 좌지우지하는 ‘절대권력’은 누구냐. 혁신? 말 하나로 되는 일이냐”고도 했다. 겉으로 침묵하고 있는 각 계파의 대다수 중진 의원들은 비대위와 조강특위가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질 때를 기다리는 표정이다. 속으론 내년 초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을 궁리만 한다. 보수통합의 다른 축으로 꼽히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은 이런 모습의 한국당에 발 담그기를 꺼린다.

한국당의 이런 행태를 지적하는 일도 이제 지친다. 지금은 보수 바로서기에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는다. 대신 보수의 지리멸렬이 국민생활에 큰 지장을 주고 있는 점은 안타깝다. 야당의 무능력으로 집권세력의 독주를 실질적으로 막을 수 없어 사실상 수수방관하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없어 피눈물을 흘리는 청년들에게 큰 박탈감을 안긴 공기관의 고용세습 같은 악습을 국정감사에서 제대로 파헤치지 못하고 어물쩍 넘겨 버렸다. 대통령이 내년도 나라살림을 설명하는 동안 정책위의장은 한자 공부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북한의 리선권 조평통위원장의 ‘목구멍’ 발언에 감성적, 즉흥적 대응을 하느라 비대칭 남북경협의 위험성 같은, 큰 틀의 본질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집권세력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국정운영을 하면 독선과 독주에 빠지는 건 경험칙이다. 한국당은 여권을 향해 독선, 독주한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그 길을 닦아주고 있다.
송국건기자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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