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기도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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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5 08:07  |  수정 2018-11-05 08:07  |  발행일 2018-11-05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기도하는 마음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오늘 친한 엄마 네 명이 영천에 유명한 할머니가 있다고 해서 물어보러 갔습니다. 그 할머니가 우리 아이는 올해도 떨어지겠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삼수생 엄마가 시험을 열흘 정도 앞두고 와서 한 말이다. 나는 그 어머니에게 차를 한 잔 내놓으면서 아직 아이에게 이야기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올해 반드시 합격할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줄테니 밤에 아이가 오면 이렇게 말해주라고 했다. 또 지금부터 저녁에 아이 올 때까지 웃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오늘 엄마 친구들이 같이 점쟁이한테 가보자고 했다. 나는 성당에 다니기 때문에 그런 곳에 안 간다고 하니, 안 물어도 좋으니 운전이라도 좀 해달라고 해서 엄마가 운전해서 영천 할머니 집에 갔단다. 다른 엄마들이 묻는다고 들어가 있는 동안 엄마는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에 다른 엄마들이 나올 때 그 할머니도 따라 나왔는데, 그 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뜬금없이 ‘이 엄마도 시험 치는 아이 있네’라고 하더니, ‘이 집 아이는 올해 이름만 적고 나와도 합격하겠네’라고 말하더라. 난 믿지 않지만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수험생 엄마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네가 합격한다고 말하니 어쨌든 기분은 좋더라. 믿지는 않지만 네가 이름만 적으면 된다는 말에 아주 기분이 좋았다” 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라고 했다.

그 어머니가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자 예상 밖으로 너무 좋아했다고 전해 주었다. 이 학생은 엄마의 거짓말로 마지막까지 책을 놓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잘 유지하여 그해 원하는 대학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플라시보(placebo)는 원래 라틴어에서 ‘기쁘게 하다. 마음에 들도록 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플라시보 효과란 생리식염수 같은 ‘속임약’을 특효가 있는 유효성분이 있는 것처럼 말하며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환자가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복용하고는 실제로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플라시보 효과는 일종의 ‘착한 거짓말’인 셈이다.

누굴 위해 기도를 한다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바위 밑에 촛불을 켜놓고 천지신명께 비는 민간 신앙 역시 종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마음과 정성을 모아 기도할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 어떤 어머니는 너무 절을 많이 해서 허리를 다치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기도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 자녀가 짜증을 내기도 한다. 엄마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수험생은 오히려 부담감을 가질 수 있다.

가장 좋은 기도는 기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모르게 조용히 성원해 주는 것이다. 대박을 기도해서도 안 된다. ‘실수 하지 않고 공부한 만큼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해야 한다. 수험생과 학부모가 뿌린 만큼만 거두겠다는 겸허한 자세를 가질 때 오히려 마음의 평화가 유지되고 성적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윤일현 (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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