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검은 백조와 회색 코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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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03   |  발행일 2018-11-03 제23면   |  수정 2018-11-03
[토요단상] 검은 백조와 회색 코뿔소
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한 농부가 칠면조를 키운다. 칠면조는 이 농부가 고맙기 그지없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이 농부의 돌봄은 멈추지 않는다. 999일이 될 때까지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로 칠면조는 이 농부가 역시 다음날도 똑같이 자신을 돌볼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1천일이 되자 갑자기 이 농부는 돌변해서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칠면조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토록 자신에게 잘해주던 사람이 왜 갑자기 돌변했는지 말이다. 칠면조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농부는 그저 추수감사절 전에 칠면조를 잡아 고기를 팔기위해 1천일 동안 먹이를 주고 돌봤을 뿐이다.

이 이야기는 뉴욕대 폴리테크닉연구소 교수인 나심 탈레브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을 때, 즉 ‘블랙스완’ 현상에 대한 설명을 돕기 위해 자신의 저서에 실었던 이야기다. 과거 영국인들은 백조는 모두 희다는 명제를 의심치 않았지만 호주 땅을 밟으면서 검은 백조(실제로는 흑고니)를 발견하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명제가 무너졌다. 그런 충격의 순간을 빗대 블랙스완 현상이라고 불렀다. 칠면조에게는 검은 백조가 들이닥친 셈이다. 그러나 세계정책연구소 대표이사인 미셸 부커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청천벽력 같은 일이란 알고 보면 ‘회색 코뿔소’ 현상이라고 말한다. 큰 덩치는 물론 달려올 때 진동으로도 위기가 닥쳐올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음에도 욕망과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시한다는 뜻이다. 칠면조가 자신이 있는 곳이 농장이라는 것만 인식했더라도 자신의 운명을 직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에서 대중들의 집단적 사고와 행동은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보면 오락가락한다. 그런데 몇몇 선지자들에 의해 자발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급기야 임계점을 넘으면서 대중의 행동이 한 방향으로 분출되어 나온 경우에는 대부분 옳은 방향을 추구할 때가 많았다. 과거 독립운동이나 미투운동 그리고 촛불운동 같은 경우다. 반대로 돈이 직접 매개체가 되거나 경제불황처럼 간접적인 매개체가 될 경우에는 대부분 나쁜 방향을 향했다. 광풍이 불 때 사람들은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의 믿음에 반대되는 이야기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는다. 타조는 적이 나타나면 머리를 모래 속으로 처박고 적이 사라졌다고 믿는다고 말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타조는 땅 속으로 전해지는 소리와 진동으로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타조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우리 인간들은 그대로 재현한다. 아무리 비싼 값이라도 내가 사면 오를 것이라고 믿고 조심하라는 말에는 상당히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저기서 코뿔소가 맹렬히 뛰어오는 것이 보이는 데도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지금 여기저기서 부동산으로 누가 얼마를 벌었네 하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광풍이 불 만큼 불었는 데도 부동산 불패의 신화는 계속 된다고 믿고 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달려오는 코뿔소를 외면한 대가는 대부분 선량한 소시민이나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이 받는다는 것이 문제다. 붕괴와 몰락의 후유증은 꽤 오래가기 때문에 그들은 그 시간을 버틸 재간이 없어 결국 사회 밑바닥으로 추락하기 십상이다. 운 좋은 몇몇 투자자들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의도를 가지고 여론을 움직이면서 사람들의 행동을 조정하는 자들이 분명히 있다. 과거 민족적 대학살이 있을 때는 이렇게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한 방향으로 조정하는 구심점이 꼭 있었다. 히틀러나 밀로셰비치 같은 사람들 말이다.

우리들은 자신의 재산이 불어나기를 바라면서 집값이 떨어지는 것은 아주 싫어한다. 어제보다 오늘이 1억원이 더 올랐다고 듣는 순간, 1억원을 번 것이 아니라 1억원 오른 값이 이제부터 내 집의 가격이 된다. 그래서 다음에 1억원이 내렸다고 하면 본전이 아니라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낀다. 부동산 신봉자들에게 우리 자식들은 도대체 얼마를 줘야 집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 얼버무리고 만다. 인지부조화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욕망의 그늘에서 우리 자식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꿈은 사그라지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어쨌든 코뿔소는 달려오고 있다.최환석 맑은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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