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패거리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

  • 조진범
  • |
  • 입력 2018-11-01   |  발행일 2018-11-01 제31면   |  수정 2018-11-01
[영남타워] 패거리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
조진범 문화부장

얼마 전 지역 문화계 인사 몇몇과 자리를 가졌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한국 문화’가 거론됐다.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워낙 많이 벌어져서 나온 얘기였다. 막상 대화를 해보니 ‘한국 사회에 과연 가치관이나 철학이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었다. 우리 사회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데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강남 PC방 살인사건 같은 ‘분노형 범죄’는 사람들을 충격에 빠트렸고, ‘고용세습’ 논란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다.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수많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의 진단 또한 다양하다. 그래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단어는 있다. ‘내로남불’ ‘몰염치’가 그렇다.

‘내로남불’은 정치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준말이다. 몰염치는 염치가 없다는 의미다. 염치의 사전적 정의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내로남불’은 요즘 문재인정부의 인사에 대한 비판에 주로 쓰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이명박·박근혜정부의 인사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포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수첩인사’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명박·박근혜정부의 인사를 비도덕적 낙하산 인사라고 몰아붙였다. 실제 일부 후보들도 비도덕적이었다. 그랬던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비도덕적인 자기 식구’들을 철저히 감싸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인사 배제 5대 원칙으로 병역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행위를 내세웠다. 과연 이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가. 아니다. 문재인정부의 고위직에 앉은 인사들 상당수가 위장 전입을 했다. 최근 임명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위장 전입을 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 후보자도 위장 전입과 다운계약서 작성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는 박근혜정부의 2배에 이른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몰염치’는 ‘내로남불’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하면 로맨스’인데 무슨 체면이 있고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겠는가.

‘내로남불’이나 ‘몰염치’는 패거리 문화에서 비롯됐다. ‘끼리끼리 뭉치고 봐주는 문화’가 패거리 문화다. 패거리 문화는 흔히 소통과 적응, 개방과 협동의 논리를 거부하며 투명한 경쟁과 정당한 경쟁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내 편, 네 편’을 가르는데 무슨 협동이 가능하겠는가. 패거리 문화가 작동되면 정당한 비판도 ‘정치적 의도’가 있는 음모로 둔갑한다.

지역 문화판에도 패거리 문화가 팽배하다. 패거리 문화에선 공과 사의 구분이 없어진다. 규정 위반이 있더라도 ‘그 정도 갖고 뭘 그래’라는 말로 넘어가기 일쑤다. 물론 개인적으로 친소 관계는 있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문제는 공적인 영역이다. 공적인 영역에 ‘친소 관계’나 ‘사심’이 침범하면 곤란하다. 최근 대구문화재단의 ‘대구예술발전소 감사 사태’는 패거리 문화가 작용한 측면이 강하다. 끼리끼리 뭉치고 봐준 흔적이 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패거리 문화의 단골 메뉴인 ‘음모론’도 흘러나왔다. 일부 인사들이 근거없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어 퍼뜨렸다. 스스로를 주류라고 여겨왔던 패거리일수록 반발 강도가 훨씬 심한 법이다.

어디 대구예술발전소뿐일까. 지역 문화계의 상당수 단체들이 ‘패거리 논리’에 매몰돼 있다. 일부 문화단체의 장은 패거리를 등에 업고 ‘자기 얼굴 내세우기’에만 공을 들인다고 한다. 합리적인 일 처리 따위는 관심도 없다. ‘체면이 어쩌구 저쩌구’라며 막무가내라고 한다.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이라는 체면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정치인이나 문화인들이 의외로 많다.
조진범 문화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