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대구공항 존치, 버리긴 아까운 카드다

  •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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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29   |  발행일 2018-10-29 제31면   |  수정 2018-10-29
[월요칼럼] 대구공항 존치, 버리긴 아까운 카드다
박규완 논설위원

일전에 받은 한 독자의 전화는 유독 긴 여운을 남겼다. 대구공항 통합이전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자 하소연이었다. 요지는 ‘왜 대구시가 70% 이상의 시민이 반대하는데도 대구공항 통합이전을 밀어붙이는가’였다. 시민 다수의 여론을 대변하지 않는 언론에 대한 질책도 빼놓지 않았다. 통합공항 이전 후보지로 결정된 군위 현장에까지 가봤다는 그 독자는 “과연 김해공항에 가지 않고 대구통합공항을 이용할 사람이 있겠느냐”며 톤을 높였다.

기실 K2 군공항과 대구공항의 통합이전은 난관과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태생적 한계부터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6월 박근혜정부가 영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을 백지화하고 김해공항 확장으로 미봉하자 대구·경북이 들끓었다. 민심 이반을 우려한 정부는 서둘러 대구공항 통합이전 계획을 발표했고, 신공항 백지화에 결기를 보였던 권영진 대구시장은 통합이전안을 덜렁 받고 말았다. 통합이전은 대구·경북의 백년대계 공항 청사진이 아니라 임기응변의 민심 수습책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통합공항 건설 일정도 계속 꼬이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말까지 이전부지가 확정됐어야 하지만 현실은 금년말도 속절없이 넘겨야 할 처지다. 통합공항 이전을 주도하는 국방부는 로드맵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당초 예정됐던 2023년 개항은 이미 물 건너간 분위기다. 대구공항 부지를 매각해서 사업비를 조달하는 ‘기부 대 양여’ 방식으로 관문공항 규모의 번듯한 국제공항을 건설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가까스로 꽤 괜찮은 통합공항을 건설했다고 치자. 연결 철도·도로망 구축은 또 어찌 할 건가. 지금 미동도 하지 않는 정부가 5조원에 달하는 통합공항 연결 교통망 건설예산을 국비로 지원해주길 바란다면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교통망이 새로 구축되지 않으면 통합공항은 대구시민에게 ‘갈라파고스’일 뿐이다. 어차피 대구통합공항은 김해공항과 제로섬의 경쟁구도를 피할 수 없다. 김해공항 가는 길은 지금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김해공항 확장사업엔 주변 교통망 구축을 위한 1조5천억원의 국비가 책정돼 있다. 설사 통합공항의 연결 교통망이 깔린다 하더라도 김해공항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가질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딜레마를 풀어줄 쾌도난마식 해법은 없다. 그나마 대구공항 존치가 차선책이 아닐까 싶다. 민항은 남기고 군공항만 이전하자는 것이다. 민항 확장의 한계를 지적하는 견해도 있지만 방법이 없지 않다. 주변 도로나 들판을 활용하면 현재 2천700m의 활주로를 3천500m로 늘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러면 대형기와 중·장거리 노선 취항이 가능해진다. 공항의 절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군공항을 이전할 경우 남은 부지를 민항 터미널이나 계류장으로 쓸 수 있고, 또 일부 부지는 매각해 군공항 이전 예산으로 충당할 수도 있다.

도심공항은 도시의 훌륭한 인프라 자산이다. 대구공항에서 유럽·미국으로 직항할 수 있다면 대구시민에겐 축복이다. 아타튀르크공항은 이스탄불 중심가에서 15㎞밖에 되지 않아 관광객 유인에 효자 노릇을 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도심공항은 유럽기업 유치의 촉매가 됐다. 반면, 나리타공항은 도쿄에서 60㎞ 남짓 되는데도 시내까지 택시를 타면 30만원 가까이 나온다며 투덜대는 방문객이 적지 않다.

대구시민의 대구공항 존치 여론에도 불구하고 권영진 시장은 ‘오로지 통합공항’만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이미 추동력을 잃은 상황에서 ‘동네공항’ 전락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밀어붙일 사안은 아닌 듯하다. ‘위화도 회군’은 때로는 진격이 아닌 회군이 신의 한 수였음을 증명한다. 여론이 항상 옳은 건 아니지만 대체로 옳다. 공론화는 권 시장의 자연스러운 출구전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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