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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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26   |  발행일 2018-10-26 제42면   |  수정 2018-10-26
재벌 2세·가난한 여주인공·시월드…美에서 통한 ‘막장 소재’
201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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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대 경제학 교수인 중국계 미국인 레이첼(콘스탄틴 우)은 남자친구 닉(헨리 골딩)의 절친 결혼식 참석을 위해 싱가포르에 왔다. 닉의 가족을 만나야 한다는 부담감은 있지만 처음 방문한 싱가포르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도 크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닉은 모두가 선망하는 싱가포르 최고 재벌가의 자제. 편모 슬하의 어려운 가정에서 자수성가한 이민자 가정의 2세인 레이첼과는 출발부터가 다르다. 역시나 두 사람의 앞날에 가장 큰 걸림돌은 닉의 어머니 엘레노어 영(양자경)이다. 엘레노어는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자유분방한 레이첼이 전통적인 동양적 가치에 반한다고 판단해 둘의 만남을 반대한다.


한국 관객에 익숙한 줄거리 유쾌하게 그려
제작비 7배 넘는 수익…속편 제작까지 확정



케빈 콴이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인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요즘 젊은이들의 경계 없는 사랑과 오랜 시간 축적된 부와 전통이 충돌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이야기를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시선으로 따라간다. 사실 한국 관객에겐 너무나 뻔하고 익숙한 줄거리다. 재벌 2세와 가난한 여성과의 만남, 출생의 비밀, 집안의 반대, 시월드 등은 국내 막장 드라마의 주된 소재가 돼 왔다. 하지만 서구인들의 눈에는 동양의 이런 문화가 사뭇 새롭고 신선하게 비쳐진 듯하다. 올해 프랜차이즈가 아닌 단독 영화로는 유일하게 북미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적으로 거둔 이익만 2억3천만 달러로, 제작비 3천만달러(약 340억원)의 7배가 넘는다. 지난 10년간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 중에서 최고 흥행기록으로 속편 제작까지 확정된 상태다.

영화를 연출한 존 추 감독은 “인종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이야기의 힘”을 흥행 비결로 꼽는다. 그의 말처럼 본질적인 사랑 이야기이면서 가족, 문화, 다툼 그리고 화합에 대한 진심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로 담아낸 게 주효했다. 다양한 문화들이 섞이고 충돌하는 이 시대에,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이들과 어울리려고 하는 근본적인 욕구에 대한 이야기는 차세대 미래상을 시의적절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라는 제목처럼 닉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펼쳐지는 ‘부의 향연’은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난생 처음 접해본 생경한 세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레이첼처럼 관객 역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게 된다. 웬만한 호텔룸보다 아늑하고 편안해 보이는 싱가포르행 일등석 비행기를 시작으로, 친구의 총각파티를 위해 바다 한가운데 마련된 초호화 대형 화물선,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 결혼식 장면 그리고 2천억원대로 설정된 닉 가문의 저택 등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게다가 레이첼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은 온갖 명품과 장신구로 몸을 휘감고 부를 뽐낸다. 그야말로 미친 갑부들이다.

이 영화의 미덕은 단순한 부의 전시나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레이첼의 용기와 신념에 있다. 자신을 시기·질투하는 상류층 여성들로부터 ‘꽃뱀’ 취급을 당하고, 늘 자신을 싸늘하게 대하는 닉의 어머니에게 “난 겁쟁이가 아니다”며 당당히 맞선다. 의기소침하지 않고 지혜롭게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레이첼을 보면 절로 응원하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닉 역시 비슷한 집안 여성과 만나 가업을 잇기를 바라는 가족의 희망을 뒤로 하고 사랑을 택한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제작한 영화임에도 출연진이 100% 동양인 캐스팅으로만 이루어졌다. 1993년 ‘조이 럭 클럽’ 이후 25년 만이다. 할리우드에서 입지를 다진 양자경을 비롯해 ‘오션스8’의 아콰피나, ‘행오버’ 시리즈의 켄 정 등 한국계 배우들도 등장한다. ‘서치’와 더불어 올해 아시안 파워를 입증한 의미있는 사례로 기록될 영화다. (장르:코미디 등급:12세 이상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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