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폐수무방류시스템을 입에 올리려면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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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9   |  발행일 2018-10-19 제23면   |  수정 2018-10-19
[조정래 칼럼] 폐수무방류시스템을 입에 올리려면

대구취수원 이전 사업이 정치적 사안으로 비화됐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최근 대구취수원의 구미 이전과 ‘폐수 무방류시스템’에 대한 타당성 용역을 추진하고 그 결과를 수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이전과 반대를 둘러싸고 10년 가까이 공방만 주고받았던 취수원 문제가 해결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진일보하긴 했지만 여전히 구미시의 반대 등 넘어야 할 난관은 만만치 않다. 환경부 등 중앙정부 또한 물 안전이 위협받는 지역의 화급한 상황을 ‘남의 나라 일’쯤으로 치부하듯 한가하게 수질개선 타령이나 읊조리며 지방정부 간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이간질을 하는 결과를 초래해 지탄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낙동강 수계의 안전한 물 확보라는 중차대한 정책이 산으로 가고 정치적으로 희화화하고 있는 시점이다.

취수원 문제가 용역으로 간 건 일종의 출구전략으로 바람직하다. 대립과 수수방관 등으로 인한 교착상태보다는 팽팽한 대치에 균열을 내며 일말의 돌파구라도 내보겠다는 시도이자 안간힘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여기에도 전제와 함정이 있다. 취수원 이전과 무방류시스템, 이 두 방안은 양자택일해야 할 사안이 결코 아니다. 폐수 무방류시스템은 기술적 가능성을 논외로 한다면 얼마든지 어디에든 적용해 볼 만하다. 어디 구미산단뿐이겠는가. 수질 개선을 위해서라면 전국 산단에 도입을 서둘러야 할 시스템 아니겠는가. 폐수 무방류 등을 통한 수질관리는 일상이어야 하고, 이는 환경부의 고유 업무이기도 한다. 반면 취수원 이전은 단순히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취수원 개발과 물 나눔 등을 포함한 광의의 수량관리에 속한다.

물 관리 일원화로 국토부의 수량관리 업무까지 이양받은 거대 환경부라면 과거 ‘실험실형’의 수질정책은 물론 ‘야전형’ 수량정책 또한 담대하게 펼쳐 나가야 커진 몸값을 한다는 소리도 들을 테다. 대구취수원의 구미 이전이 낙동강 수계 전체를 생각하면 ‘합리적이지 않다’는 김은경 환경부 장관의 지적은 백 번 옳다. 대구·경북도 모르는 바 아니다. 낙동강의 최하류에 위치한 부산은 진주 남강댐 물을 취수원으로 삼을 수 있다. 진주의 반대가 관건이긴 하다. 지방정부 간 타협이 어렵다면 환경부가 중재자로 나서면 된다. 취수원 확보와 수질개선은 장단기에 걸쳐 보완적으로 병행 추진돼야 할 과제라는 사실을 환경부만 모르는가.

물 안전은 국가 안보와 국토 안녕 못지 않게 중요하다. 생존과 생명이 걸린 지역 현안이자 국가적 의제가 분명한데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거나 경제 제일주의의 희생양이 되곤 한다. 환경부는 최소한 구미산단 폐수 무방류를 입에 올리기 전에 낙동강을 중금속으로 오염시키는 영풍제련소 대책부터 내놓아야 한다. 경북도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사상 처음으로 폐수 무단 배출 등 불법행위에 대해 조업정지처분을 내렸다. 그럼에도 영풍제련소 측은 지역주민 등을 등에 업고 ‘과잉처분’이라며 행정심판을 제기했고, 이 문제는 급기야 오는 25일 국정감사에서 집중 추궁될 예정이다.

환경부는 구미산단보다 영풍제련소 폐수 무방류시스템 도입을 관철시키는 게 올바른 수순이다. 1970년대에 들어선 영풍제련소는 이후 낙동강 상류 오염의 주범으로 꼽혀왔다. 제련소 주변은 황폐해지고 안동댐 상류에선 새와 물고기가 의문의 떼죽음을 당해 왔다. 지역민들과 환경단체는 ‘낙동강시민조사단’을 꾸려 오염실태를 조사하고 조만간 영풍제련소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형사고발도 추진할 태세다. 이 같은 환경파괴의 현장이 수도권이었다면 환경부가 과연 그대로 두었을까.

대구시의 취수원 이전 병행은 취수원의 다양화를 통한 물 안전 확보 전략으로 너무나 합리적인 선택이다. 폐수 무방류시스템 운운하며 사실상 수수방관하는 모습의 환경부나 여기에 편승하는 지방정부나 무책임하기는 오십 보 백 보다. 4대강 사업이 본말이 전도되긴 했지만 선행되지 않았으면 후속사업으로라도 추진돼야 마땅할 낙동강 지류·지천 정화사업은 방치한 채 전임 정권 주저앉히듯 이미 만들어진 보만 허물려는 게 과연 낙동강 살리기인지 수질 개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도처의 폐수 방류원을 둔 채 누가 구미산단 폐수 무방류시스템만 입에 올리는가.

조정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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