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느티나무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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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9   |  발행일 2018-10-19 제23면   |  수정 2018-10-19

느티나무는 이름에 ‘늙어서 티가 나는 나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별 특징이 없어 어릴 때는 눈에 띄지 않다가 100여 년이 지나면 늠름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그만큼 오래 살기도 한다. 경북도내 노거수의 절반 이상이 느티나무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단풍이 드는 나무는 대개 붉은 색이나 노란 색 중 한 가지로 단풍이 들지만 느티나무는 같은 종이면서도 붉은 색으로 드는 나무가 있고 노란 색을 띠는 나무가 따로 있다. 특정의 병에 걸리거나 해충, 가뭄, 고온 등으로 생육에 지장이 생길 때는 한 나무에서 노랑, 빨강, 갈색 등 여러 색이 발현되기도 한다. 물론 정상적 단풍보다 예쁘지 않은 색이다.

상주시의회 청사 마당 중앙에 50여년생 느티나무가 있었다. 1986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상주군 방문 기념으로 심은 나무였다. 한 여름인 7월까지 멀쩡하던 이 나무가 불과 두어 달 사이에 말라 죽었다. 느티나무가 오래 살 수 있는 것은 생명을 위협할 만한 결정적인 병이나 해충이 없기 때문이다. 느티나무가 아니더라도 멀쩡한 수령 50년의 나무를 몇 달내에 고사시킬 수 있는 병해충은 드물다.

이 때문에 그 느티나무의 갑작스러운 고사는 많은 의문점을 낳고 있다. 더욱이 그 시점이 고(故)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전 대통령이 알츠하이머 투병을 이유로 출석을 거부하고, 광주지방법원은 알츠하이머 환자가 어떻게 회고록을 출판했냐며 인정하지 않아 세간의 관심을 모은 때와 일치해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홍준표가 여론의 수난을 겪는 동안 죽어서 뽑혀 나간 홍준표 나무를 연상케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의 알츠하이머병 핑계는 ‘내 전재산 29만원’만큼이나 기만적이다. 회고록으로 국민을 분노케 한 데다 억장이 무너지는 맛까지 보여줬다. 최근에는 광주가 아닌 서울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치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며칠전 상주시는 죽은 전두환 나무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15년생 느티나무를 심었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순시 기념식수’ 표지석에는 나무를 다시 심은 날짜를 새겨넣을 방침이다. 누가 기념식수를 했든 나무 자체는 아무런 죄가 없다. 나무는 자연에서 에너지를 얻어 자라면서 인간들에게 이로움을 줄 뿐이다. 다시 심은 느티나무가 늙어서 티가 날 때까지 잘 자라길 바란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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