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그 집은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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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9   |  발행일 2018-10-19 제22면   |  수정 2018-10-19
김병효 국제자산신탁 상임고문
추억어린 소중한 단골집
인건비·임차료 등 부담 커
하나둘 폐업하거나 이전
진입장벽 낮아 쉽게 창업
음식점 우후죽순 생겨나
버티지 못하는 경우 많아
[경제와 세상] 그 집은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

‘가족이란 세상에 있는 동안 세상이 나눠주는 음식을 함께 맛있게 나눠 먹는 사이’라는 어느 시인의 시 구절에 잊지 못할 한순간이 생각났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봄날이었다.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자 뜻밖에도 아버지가 날 기다리고 계셨다. 부모 품을 떠나 객지에서 공부하는 막내가 보고 싶어서 오셨나 싶어 내심 기뻤다. 편찮으신 아버지는 병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가까운 중국집으로 가더니 자리를 잡고 앉아 먹고 싶은 것을 시키라고 하셨다. 나는 자장면을 주문했지만, 아버지는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뭘 좀 드셔야죠”하고 권했지만 아버지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난 괜찮으니 너나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병환이 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는 권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자장면을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만 계셨다. 이태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와 아들, 단둘이 생전처음 바깥에서 음식을 앞에 놓고 소중한 시간을 함께했던 그 식당은 10여년 뒤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누구에게나 추억어린 음식점이 한두 군데쯤 있을 것이다. 입학이나 졸업식 날, 온 가족이 함께 찾아가 식사하던 음식점. 난생처음 밖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은 기억이 있는 그 식당.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었던 추억 속 그 집들은 아직 그 자리에 잘 있을까. 변치않는 그 맛으로 여전히 우리를 반겨줄까. 국세청의 2017년 사업자 현황 통계를 보면 음식업 총사업자는 72만1천979명이다. 신규 사업자는 18만1천304명, 폐업자는 16만6천751명이었다. 지난해 창업한 사업자의 14.1%가 음식점이었고, 사업을 접은 사람들 가운데 18.4%가 음식업 사업자였다. 음식업은 다른 업종과 달리 진입 장벽이 높지 않아 쉽게 창업하지만, 생존경쟁 틈바구니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접는 비율도 그만큼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8월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음식 및 숙박업체의 1년 생존율은 59.5%, 3년 생존율 30.2%, 5년 생존율은 17.9%로 나타났다. 개업한지 1년을 못 넘겨서 절반 남짓 문을 닫고, 5년 이상 버티는 음식점은 열 군데 중 두 곳 정도임을 보여준다. 자주 들르던 음식점이 오늘도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찾아가면 헛걸음하기 십상이다. 가게 문을 닫고 장사를 접었거나 다른 식당이 들어서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추억 속 소중한 단골집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오래된 음식점, 전국에 숨어 있는 ‘밥장사의 신’ 노포(老鋪)를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만의 생존비법을 소개한 박찬일의 ‘노포의 장사법’을 최근에 읽었다. 오랜 세월을 이기고 살아남아 ‘전설’이 된 노포에는 몇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다. 먼저 그 식당들은 한결같은 맛을 유지했다. 우직하게 전래의 기법대로 만들어내는 일품의 맛이 손님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 연륜 있는 가게일수록 직원들을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 각별해 장기 근속 직원들이 수두룩했다. 거래처를 믿고 오랫동안 거래를 유지하는 것도 공통의 비결이었다. 노포의 성공 비결은 음식점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음식업의 여건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남의 건물에서 장사하면 5년마다 임차료를 올려주거나 그렇지 못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거나 문을 닫아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도 부담이다. 잘된다는 소문이 나면 주위에 비슷한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을 지향하는 시대적 변화로 저녁 회식이 갈수록 줄고 있다. 사람 대신 음식을 조리하는 로봇과도 경쟁해야 하고, 데우거나 끓이면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간편식 시장도 위협적이다. 이렇게 곳곳에 위험요인들이 도사리고 있지만 성공한 노포가 있기에 그나마 위안이 된다. 단순한 메뉴로 고집스럽게 우리 맛을 지켜온 그들처럼 노포가 점점 더 많아져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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