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태의 제3의 눈] K-pop 인기에 자만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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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9   |  발행일 2018-10-19 제22면   |  수정 2018-10-19
年 1천만명이나 찾아오는
‘태국의 돈줄’ 중국관광객
反中정서에 ‘어글리’ 오명
중국인들보다 조금 나을뿐
韓관광객도 눈총받기 일쑤
[정문태의 제3의 눈] K-pop 인기에 자만 말아야
국제분쟁 전문기자

장마가 끝물로 접어든 요즘,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기운이 돈다. 낮엔 아직도 35℃를 웃돌지만 겨울을 기다려온 사람들은 저마다 날씨 이야기로 인사를 나눈다. 이 동네는 10월 말부터 이듬해 3월 초까지 겨울철 관광객으로 한 해를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일찌감치 들뜨는 분위기다. 아열대의 겨울이란 게 15~32℃ 사이를 오르내리지만 벌써 두툼한 덧옷을 걸친 사람들도 적잖이 눈에 띈다. 내가 사는 태국 북부 치앙마이 풍경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치앙마이는 태국 안팎에서 한 해 1천만(2018년 예상치) 관광객이 찾아드는 곳이다. 인구 13만에 서울로 치면 딱 강남구만한 도시라 어딜 가나 이 관광객들을 피할 길이 없다. 동네 사람들이 즐겨 찾는 외진 골목 커피숍에서부터 산자락 식당마저 관광객들한테 다 내준 꼴이다. 그러니 관광산업으로 먹고산다지만 주민 불만도 만만찮다. 그걸 몇 해 전부터는 억울하게도 중국 관광객들이 모조리 뒤집어썼다. 심지어 관광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마저 중국인들 거친 태도를 나무라며 마뜩잖게 여기는 실정이다. “중국 관광객으로 먹고살지만 함께 다니다 보면 늘 편치않다.” 관광 가이드 빠이랏 말 속에 복잡한 치앙마이 심사가 담긴 셈이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중국 관광객 아니면 치앙마이 경제는 벌써 죽었다.” 상공회의소 솜삭 욧마랏 말마따나 한 해 200만이 몰려드는 중국 관광객은 그야말로 치앙마이의 돈줄이다. 치앙마이 호텔 방 4만여 개 가운데 78%를 중국인이 차지할 정도고, 관광안내판이나 식당 차림표도 중국어가 영어를 밀어냈다. 주민들은 “중국인이 치앙마이를 점령해 버렸다”며 걱정스러운 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몇 해 전에는 치앙마이대학 구내식당까지 밀어닥친 중국 단체관광객 탓에 제때 밥을 먹을 수 없다며 학생들이 시위까지 할 만큼 반중국 정서가 커졌다.

따지고 보면 이런 반중국 현상은 치앙마이뿐 아니라 태국 곳곳에서 벌여졌다. 올해 태국 정부의 예상 관광객 3천800만명 가운데 1천만명이 중국인이다. 지난 6월 푸껫에서 보트 사고로 중국인 47명이 사망하면서 조금 주춤한 상태지만, 몇 해 전부터 중국인은 태국 관광산업의 최대 동력이다. 2017년 태국 국민총생산에서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1.2%(간접 기여 포함)에 이르는 950억달러였고, 그 일자리만도 583만개를 만들어냈다. 그러니 중국 관광객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태국 정부는 반중국 정서를 누그러뜨리려고 갖은 애를 써왔지만 오히려 시민사회 반응은 거꾸로였다.

치앙마이를 비롯한 태국의 반중국 관광객 정서는 시기별 현상이 아닌가 싶다. 태국 관광업계에 유명한 말이 있다. “1960년대 ‘어글리 아메리칸’의 대를 이은 게 1970~80년대 일본이었고, 1990~2000년대 한국이었다.” 그게 2010년대 들어 중국으로 넘어간 셈이다. 돌이켜보면 태국의 특급호텔들이 한국 단체관광객을 안 받고, 게스트하우스에 ‘한국인 출입금지’란 푯말을 나붙였던 게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외국관광도 자리를 잡는데 두어 세대를 거쳐야 할 만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이런 일에는 ‘일반화’라는 편견과 선입견이 크게 한몫해온 게 사실이다. 한 해 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1천만명 가운데는 온갖 사람들이 뒤섞여 있을 텐데, 이걸 뭉뚱그려 ‘중국인’이라고 타박하는 게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치앙마이에서 날마다 부딪치는 중국 관광객들 가운데 별난 사람은 없었다. 어쨌든 이런 반중국 정서 탓에 요즘 태국을 찾는 한국이나 일본 관광객들은 살맛났다. 겉보기에 구별하기 힘들다 보니 못난 짓과 못된 짓은 모조리 중국인이라는 주민들 편견 덕에.

30년 가까이 태국에서 살아온 내 경험으로 볼 때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한국 관광객은 여전히 눈총거리다. 현지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엔 그저 중국인 관광객보다 조금 나은 사람들일 뿐이다. K-pop 유행에 너무 자만하지 않았으면 한다. 환상과 현실은 늘 엇박자를 내니까. 올겨울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이 참고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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