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 탓하는 사람, 남 탓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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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6 08:27  |  수정 2018-10-16 08:27  |  발행일 2018-10-16 제29면
[기고] 남 탓하는 사람, 남 탓하는 사회
사공정규 (동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세상을 살다보면 세상 일이 내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 힘겨워 진료실 문을 두드린다. 진료실에서 많은 환자들은 배우자 때문에, 부모 때문에, 자녀 때문에, 상사 때문에, 동료나 친구 때문에, 부하직원 때문에, 자신의 주변 환경 때문에 힘들어 한다.

사람은 대개 일이 잘못될 때 남이나 주위환경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다. 사실 잘되면 내 탓이요, 잘못되면 남 탓으로 돌리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마음의 작용이다.

남 탓을 하는 것은 정신의학적으로는 ‘투사(projection)’라고 한다. 영사기를 통해서 나오는 스크린의 영상을 보고 그것이 영사기가 아닌 스크린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현상과 비슷하다는 데서 나온 용어다. 자신의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이나 사고 등을 타인의 탓으로 돌려 자신의 불안감, 책임감,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방어기제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이다. 그 사람의 잘못이므로 그 사람이 변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물론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탓해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내 인생에서 잘못된 모든 것을 남 탓으로 규정한다면, 남이 바뀌기 전에는 내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인생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타인 의존적 삶이지 자기 주체적 삶이 아니다.

남 탓의 극치인 곳이 정치권이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사과하거나 반성은 하지 않고 서로 남 탓하기 바쁘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자신한테 관대하고 남한테는 엄격하다. 이중성의 극치다. 자기반성에 투철한 정치는 희망이고, 자기반성 없이 남 탓만 하는 정치는 절망이다. 이러한 풍토가 고쳐지지 않으면 희망의 정치는 없다. 우리가 정치를 어떻게 생각하든 정치가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것이 현실이다. 희망의 정치가 없다면 희망의 대한민국은 없다. 어떤 정치를 선택할 것인가는 국민들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논어나 맹자에도 “소인은 무엇이 잘못되면 남을 원망하고 심지어 하늘까지 원망하는데, 군자는 우선 자기에게 잘못이 없나 반성해보고 잘못이 없을 때 비로소 외부를 검토한다”고 되어 있다.

요즘은 자기반성보다는 남 탓만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불가에서 깨달음의 핵심은 ‘불취외상(不取外相) 자심반조(自心返照)’ 즉 ‘바깥 모양을 취하지 말고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 비춰라’는 데 있다. 마음에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바깥모양(外相), 다시 말해 남을 탓하지 말고 자심반조, 스스로의 마음을 돌이켜보라는 뜻이다.

사실 정신치료도 자기 문제를 남이나 외부로 투사하고 있는 것을 깨우쳐 자심반조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석가의 깨달음처럼 바로 이 투사를 없애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우리가 남 탓하지 않는 자기주체적 삶을 통해, 우리 정치가 남 탓하지 않는 희망의 정치를 통해 오늘보다 더 건강한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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