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글감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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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5 07:51  |  수정 2018-10-15 07:51  |  발행일 2018-10-15 제18면
[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글감은 어디에 있나

도대체 무엇을 글로 쓸 것인가? 많은 사람이 원고지 앞에 앉아서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일 것입니다. 글감은 따로 있을까요?

주제를 보다 선명하게, 설득력 있게, 또한 감동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우리가 취하는 시의 재료를 ‘소재’라고 하지요. 그리고 작품의 주제가 되는 재료라고 해서 제재(題材)라 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시의 주제가 진부할지라도 소재가 좋으면 얼마든지 감동을 줄 수 있고, 또한 그 나름의 독창성을 지닐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뇌를 자극하는 사물들 중에서 시의 소재가 될 만한 것들을 잘 포착해내는 능력이 바로 시를 쓰는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지하철 7호선 바닥에 딱정벌레 한 마리가 열심히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딱정벌레를 바라보기가 뭣해 이렇게 저렇게 고개를 돌리거나 실은 조는 척도 했습니다. 다행히 지하철은 붐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역에서 갈아타는 승객들이 조그만 딱정벌레를 밟을까 염려했습니다. 다행히 건대 입구 종착역까지 딱정벌레는 무사했습니다. 종착역에서 뿔뿔이 흩어지던 승객들 틈에 끼어 뒤돌아볼 틈도 없이 나는 자리를 떴습니다. 집에 돌아와 눈을 감고 누웠어도 고 쪼그만 딱정벌레 한 마리가 눈에 밟혀 마음이 쓰이고 쓰였습니다. 고놈을 왜 남몰래 주워들고 내리지 못했는지 두고두고 원망했습니다. 딱정벌레가 자꾸만 뒤돌아보는 것 같아 미치겠습니다. 내가 시인입니까 죄인입니까.’(강세환의 시 ‘딱정벌레’ 전문)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생각이 좀 달라지죠? 어떤 소재가 글감이 되는지 정리해보면 첫째는 보편성입니다. 지나치게 특이한 경우나 특수한 사건을 소재로 이용하면 공감을 주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자신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관찰하여 형상화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둘째는 객관성입니다. 시가 확실하고 정확한, 그리고 타당성 있는 소재를 제시하면 독자는 안심합니다. 속성이나 특성을 내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내면을 파고들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참신성입니다. 보편성에 치우치다보면 시가 너무 싱겁고 평이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리한 관찰력과 직관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유머나 풍자, 아이러니, 알레고리 등 극적 요소가 있으면 더욱 참신해지겠지요.

한 사람의 시각에 비친 사물은 그 개별적인 사유와 관점의 각도, 그것을 통과하는 프리즘을 통하여 재구성되는 퍼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의 관점은 대상마다 다르게 작용하지만, 화자의 감성과 이성의 회로를 거치는 동안 또 다른 세계의 내밀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마치 미술의 스크래치 기법처럼 수많은 감정과 지각들이 얽혀서 잠재해 있던 내면의 바탕에 평범한 눈(상식)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특별한 그림이 창조되는 것이죠.

시의 오묘한 그 비밀은 어디서 얻는가. 릴케가 쓴 ‘말테의 수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시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만은 아니다. 시가 만일 감정이라면 젊은 시절에 이미 평생 쓸 시를 다 써버릴 것이다. 시는 정말로 체험의 소산인 것이다.” <전 대구시영재교육원 문학예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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