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황교안 앞에 놓인 세 갈래 길

  • 뉴미디어부
  • |
  • 입력 2018-10-13   |  발행일 2018-10-13 제23면   |  수정 2018-10-13
[토요단상] 황교안 앞에 놓인 세 갈래 길
최병묵 정치평론가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정치권 진입을 위한 잰걸음에 나서고 있다. 그는 9월7일 수필집 ‘황교안의 답―황교안, 청년을 만나다’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물러난 지 16개월 만이다. ‘청년’을 목표로 했지만, 현장엔 ‘중노년’이 더 눈에 띄었다. 정치권에서도 자유한국당의 친박계가 북적댔다. 그가 답례로 점심식사(9월20일)를 했을 때도 유기준·윤상현 등 한국당 의원 6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결심이 서면 상처 입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전당대회에 도전하겠지만 지금은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최근에는 한 기자가 한국당의 전원책 변호사 영입에 대한 논평을 요구하자 “중도와 보수의 역량 있는 분들이 힘을 합쳐야 되지 않겠냐”고 했다. 흠 잡을 곳이라곤 전혀 없는 얘기다.

이런 언행은 과거 총리 출신들과 판박이다. 많이 듣던, 많이 보던 장면이다. 이회창·고건·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까지 다 거기서 거기였다.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감사원장·총리로 발탁돼 집권당 대표까지 지낸 부동(不動)의 대권주자 이회창, 2004년 노무현 탄핵사태 이후 차질 없이 국정을 관리했다는 고건, 교과서에까지 등장했던 모범적 외교관에 유엔사무총장까지 지낸 반기문. 그들은 해당 부문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렸다. 그것이 그들을 대권주자 반열로 밀어 올렸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황교안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이회창의 길은 애초에 물 건너갔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지 않았다면 혹시 이회창처럼 ‘낙점(落點)’에 의한 후보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반기문의 경쟁 상대가 될지 모를 일이었다. ‘박근혜정부의 마지막 총리’가 지금은 오히려 멍에가 됐다. 전화위복이 아니라 ‘전복위화(轉福爲禍)’가 된 셈이다. 반기문의 길은 어떨까. ‘경력’으로만 말하면 황교안은 미치지 못한다. 법무장관·총리를 했다지만 반기문과 견주기에 역부족이다. 국내 사정에 정통한 것은 비교우위다. 여기서도 ‘탄핵 대통령’과의 관계는 씻어지지 않는다. 반기문은 그 관계의 사슬을 끊어내려 하다가 좌절했다. 황교안은 관계 단절의 의지가 약하다. 고건의 길은 어떨까. ‘대통령 탄핵기간 국정관리’는 고건, 황교안 모두에게 기회였다. 고 전 총리는 탄핵여부가 불투명하던 시기였고, 황교안은 탄핵이 거의 명확했던 때였다는 것이 다르다. ‘신중 모드’로 치자면 둘은 난형난제다. 본인을 임명했던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인 것도 똑같다. 고건은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을 해체 후 흡수하려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충돌로 대권 꿈을 접었다. 황교안도 자유한국당 계열을 흡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황교안은 고건의 길에 가깝다. 문제는 고건이 결국 포기했다는 점이다.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황교안은 다른 결과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정치인의 길에 왕도(王道)는 없다. 정치부 기자를 30년 가까이 한 필자도 그런 길을 알지 못한다. 체험적 주문은 가능하다. 지금 유권자들의 심정은 ‘어차피 정치할 거면서 왜 저렇게 뜸을 들여’일 것이다. 정치에 뜻이 없었다면 딱 잘랐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과거의 총리 출신이 그랬듯 간보기식은 삼가야 한다. 결단성, 즉 권력 의지가 없어 보인다. 또한 그가 맨 먼저 했어야 할 일은 ‘정치인 황교안’ 이미지 구축이었다. 친박계와의 식사는 오판이다. 친박과 비박을 아울렀어야 한다. 현재는 그럴 수 있는 환경이다.

남들이 갔던 길을 다시 가선 안 된다는 건 철칙 중의 으뜸이다. 어느 정치인도 하지 않았던 ‘청춘콘서트’란 기획을 통해 정치권에 신데렐라처럼 등장한 안철수 전 대표가 좋은 예다. 황교안은 전국 순회 무료 변론이나 아프리카 봉사활동 같은 ‘창의적’ 방법을 썼어야 한다. 다르다는 걸 보여주거나 그럴 능력이 없다면 이미지라도 차용해야 한다.

정치는 참 쉬워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창조’의 영역이다. 유권자는 그저 그런 사람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총리 출신의 실패한 정치 도전기’를 쓰고 싶지 않다면 그는 지금부터라도 총리 출신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