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주역이자, 정경유착의 원흉 ‘그들’

  • 유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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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3   |  발행일 2018-10-13 제16면   |  수정 2018-10-13
삼성·현대 등 창업주 14인 창업스토리
“대부분 일본과 직간접적 관계를 맺고
경제성장 과정 특혜 받으며 재벌로 성장”
한강의 기적 주역이자, 정경유착의 원흉 ‘그들’
1967년 호남정유 여수공장 기공식에 참가한 구인회와 박정희. 오른쪽 사진은 삼성물산 시절 이병철. <앨피 제공>
한강의 기적 주역이자, 정경유착의 원흉 ‘그들’
한국역사 속의 기업가//방기철 지음/ 앨피/ 404쪽/ 1만6천800원

우리는 우리나라 기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동화약방의 ‘부채표’가 1910년 등록된 우리나라 최초의 상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구한말 선전관 벼슬을 지낸 민병호가 동화약방을 설립하면서 선보인 상품이 유명한 ‘활명수’이며, 지금도 우리는 복용하고 있다.

명망가의 후예였으나 가세가 기울어 어린 나이에 장사에 뛰어든 경기도 광주 출신 박승직은 서른세 살 되던 1896년 ‘박승직상점’을 열었다. 박가분과 OB맥주처럼 당대를 뒤흔든 히트상품이 이 상점에서 판매됐으며, ‘두산상회’와 ‘동양맥주’를 거쳐 오늘날 두산으로 발전했다. 최초의 기업형 상점인 셈이다. 저자는 박승직에 대해 ‘보부상 출신으로 황국협회의 일원이었으며, 조선인 상권 축소 위기에 맞서 상인들이 만든 근대적 상설시장인 광장시장에 주주로 참여했다’며 박승직이 활동한 시대의 역사적 흐름을 함께 짚어낸다.

이 책은 우리 역사 속에 우리 근현대사와 함께 자라온 기업과 그 기업을 만든 기업가에 대한 책이다. ‘한강의 기적을 만든 주역’이기도 하고, ‘정경유착의 원흉’이라 불리기도 하는 기업가들. 저자는 이들의 성장과 쇠퇴가 곧 한국 경제의 역사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책에는 앞서 설명한 박승직부터 진정한 상속과 진정한 환원을 한 기업인 류일한, 삼양사의 김연수, 유통의 박인천, 백화점의 아버지 박흥식, 효성그룹의 조홍제, 럭키의 구인회 등 14인의 창업주와 그 창업주의 이야기 등을 소개한다. 다른 생각을 통해 한발 앞서간 기업가부터 그 기업가들의 위기 그리고 현재까지 각 기업가의 성장 스토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시작점은 언제였을까. 기업의 초기 모델의 등장은 1876년 개항 시기였다.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후 부산에 이어 원산·제물포 등이 줄줄이 개항됐다. 이때 등장한 초창기 기업들은 자본 규모면에서 영세한 데다 정부의 정책적 보호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때문에 일제 기업과의 경쟁, 대외무역로 확보 등 자본 확대와 성장에 한계가 분명했다. 기술자뿐 아니라 근대적 경영을 주도할 인물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결국 일제 강점기를 맞아 일본인이 한국의 기업 활동을 주도하게 됐다. 이후 1920년 일제가 조선회사령을 철폐하고, 토지조사사업이 끝나 지주들의 자본 조달이 가능해지면서 비로소 한국인 회사가 설립되기 시작했다. 두산그룹의 창업가 박승직과 유한양행의 류일한 등도 이 시기에 기업 활동을 시작했다.

광복 이후 1인당 국민소득이 불과 35달러였던 시절, 문맹률 역시 80%에 달하던 이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성·현대·럭키 등이 출현하고 성장한다. 또 6·25전쟁 이후 재일교포 기업가들이 귀환한다. 서갑호의 태창방직, 신격호의 롯데, 이원만의 코오롱 등은 모두 일본에서 성공한 사업가들이 설립한 기업들이다. 경제 개발과 산업화가 본격화된 1960~70년대에는 신선호의 율산, 김우중의 대우, 김준기의 동부 등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다. 이들 기업은 모두 살아남았을까. 박승직의 두산과 김연수의 삼양사는 아직까지 현존하지만, 우리나라 백화점을 대표했던 박흥식의 화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구인회·이병철·정주영·최종건 등이 설립한 회사는 현재까지도 LG·삼성·현대·SK라는 이름으로 한국 사회에 크게 군림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교보의 신용호, 한진의 조중훈, 금호의 박인천, 한화의 김종희, 포항제철의 박태준 등도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사업으로 현재까지 그 기업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이들이 우리 역사 속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지만 이들의 족적만큼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점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들의 성장과 창업 그리고 죽음을 추적하면서 3가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힌다. 첫째는 유한의 류일한을 제외한 기업가 13명은 일본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었다는 점, 둘째는 모든 기업이 정부 주도형 경제성장 과정에서 정경유착의 특혜를 받았다는 점, 셋째는 외형 확장과 신사업 진출로 ‘재벌’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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