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암수살인’ 주지훈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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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2   |  발행일 2018-10-12 제43면   |  수정 2018-10-12
“희대의 살인범 연기 잘 해낼까 걱정…김윤석 선배와 호흡 부담 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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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들거리면서 능글맞게 웃는 모습이 한 마리 용 같았다.” ‘암수살인’을 연출한 김태균 감독의 주지훈에 대한 비유다. 부산에서 벌어진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이 범죄 실화극에서 주지훈은 자신이 7번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먼저 자백하는 살인범 강태오를 연기했다. 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암수사건이다. 이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임을 밝힌 태오는 진실인지 거짓인지 입증하기 힘든 진술들로 이를 파헤치려는 김형민(김윤석) 형사의 수사에 혼선을 준다. 주지훈이 민낯에 삭발까지 감행한 ‘암수살인’으로 다시 관객을 찾았다. 쌍천만을 이룩한 ‘신과 함께’ 시리즈와 ‘공작’ 흥행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며 2018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던 그의 피날레를 장식할 작품이다. ‘암수살인’은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거나 화려한 액션이 수반되는 형사물 특유의 장르적 쾌감 대신 러닝타임 대부분을 두 사람의 팽팽한 심리 대결로 채워진다. 그 한 축을 담당한 강태오는 액션보다는 말, 감정보다는 침착한 이성으로 판을 쥐고 흔드는 지능적인 인간이다. “그래서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불안했다. 기본적으로 언어에 대한 핸디캡이 있었고 내가 미흡해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면 함께했던 모두에게 미안한 것은 물론이고, 나 역시 꽤 오랫동안 이런 역을 맡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 주지훈이 그런 부담감을 털고 출연을 결정한 건 앞서 캐스팅된 김윤석의 존재감 때문이다. “선배가 캐스팅돼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언의 신뢰감이 생겼다”는 주지훈. “나보다 오래 작업을 하셨고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증명한 선배가 이 작품을 선택한 건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이를 충분히 채워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강태오는 그렇게 살인범 캐릭터의 통념을 완전히 깨는 전인미답의 캐릭터로 생생하게 살아났다.

▶희대의 살인범 강태오를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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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으로 무시무시함이 표현됐으면 했다. 강태오는 맨날 술 먹고 욕망대로 사는 나태한 인물이니까 다이어트를 했을 것 같지도 않아서 몸이 주는 둔탁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5~6㎏ 살을 찌웠는데 내가 키(188㎝)가 커서인지 화면에는 호리호리하게 나왔다. 또 회상신도 있고 시간경과들이 꽤 있는 편이라 조금 더 디테일하게 그런 변화들을 주고 싶어 변곡점이 될 만한 포인트를 정했다. 태오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두가 헷갈려 하는 상황에서 형사에게 말려 당황할 때는 진짜로 당황한 표정을 짓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진지하게 말을 시작함으로써 이번엔 반대로 형사를 더 헷갈리게 만드는 식이다. 허세도 부리고 너무 갔다 싶으면 접기도 하면서 전부 숨기거나 표출하지 않게 연기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암수살인’은 김형민과 강태오, 두 사람에게 오롯이 초점이 맞춰진다. 그 과정에서 스크린을 압도하는 긴장감이 대단했는데 혹 선배에게 밀리지 말아야겠다는 경쟁심리는 없었나.

“경쟁심보다는 존경심이 더 생겨났다. 사실 내가 영화에 누가 되는 건 아닌지 부담감과 걱정이 앞섰기 때문에 무조건 윤석 선배를 믿고 갔다. 태오는 감정불능의 ‘또라이’ 같은 캐릭터다. 내가 보여주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지만 상대 배우가 어떻게 받아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선배의 많은 배려와 도움 덕에 캐릭터가 살아날 수 있었다. 윤석 선배가 맡은 형민 역할은 흔히 말하는 연기력을 폭발시키는 부분이 없다. 물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디테일을 잡아서 자신을 녹여내야 했는데 이를 완벽히 소화한 선배를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연륜과 경험에서 오는 능숙함과 자연스러움일 수 있는데 선배는 이를 온전히 내 호흡에 맞추려는 수고와 배려를 감수했다.”

▶태오는 대부분을 접견실 장면을 통해 액션보다는 말,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우며 김형민 형사와 설전을 펼친다. 그 과정은 어땠나.

“자칫 과거에 연기했던 것들이 노력하지 않은 것처럼 비쳐질 수 있어서 조심스럽긴 한데, 연기적 접근이나 스타일이 좀 디테일하게 변한 건 사실이다. 그건 장르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분명한 건 예전에 비해 컷이 많고 새로운 앵글이 많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테크닉적인 것들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반대로 우리 영화는 정적인 접견실 장면에 러닝타임 대부분을 할애한다. 그게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요즘 영화 대부분이 액티비티한 액션이나 화려하고 강렬한 볼거리를 추구하지 않나. 하지만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고 싶었고 그럴 자신도 있었다. 그 좁은 접견실 안에서의 심리변화나 감정들을 시각적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해 주기 위해 디테일한 작업과정을 거쳤는데, 우리 영화의 라이브한 톤앤매너를 살리기 위해 대사나 타이밍, 고개의 각도 하나하나까지 다 계산하고 들어갔다. 배우 입장에서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던 현장이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7번의 살인 자백
형사·살인범 초점…스크린 압도 긴장감
접견실 장면, 날선 설전 팽팽한 심리대결
“거친 부산사투리 표현 곽경택 감독 도움
첫 신때 뭔가 부족한 느낌들어 삭발감행
음습한 곳 촬영장면 많아 모기와의 싸움”

“올 작품흥행 감사, 내년엔 드라마로 인사
관객과 가까운 친근한 배우로 되고 싶어”



▶부산 사투리 연습에도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고.

“솔직히 그게 제일 힘들었다. 하지만 곽경택 감독님이 계셔서 너무 다행이었다. 곽 감독님은 이 영화의 제작자 일뿐만 아니라 각본에도 참여했다. 영화판에선 부산 사투리를 잘 가르치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는 분이라 든든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몇 개월간 하루 반나절을 사투리 연습에만 매진했다. 그 과정에서 신의 한 수는 테이프를 사용하는 아날로그 녹음기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녹음기는 생각보다 직관적이지 않다. 그러다보니 집중력이 떨어졌는데 곽 감독님이 추천한 아날로그 녹음기를 사용해보니 좋았다. 신기하게도 딱 내가 원하는 대로 사투리가 귀에 들어왔다. 감독님을 만나러 사무실에 갈 땐 늘 녹음기에 이어폰을 꽂고 네다섯 시간 걸리는 거리를 걸어갔다. 길에서 나와 마주친 분들은 되게 이상하게 생각하셨을 거다. 멀대 같이 키가 큰 친구가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사투리를 웅얼거리면서 걷는다고 생각해봐라.”

▶그렇게 만들어진 부산 사투리가 그동안 보던 스타일과 좀 달라 흥미로웠다.

“경상도 사투리에 대한 허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높다. 너무 익숙하다보니 전 국민이 경상도 사투리에 대해선 굉장히 예리하고 예민하다. 게다가 현장에선 나 빼고 윤석 선배부터 스태프들까지 모두가 경상도 출신이다. 섬에 홀로 떠있는 느낌이었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내가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했다. 똑같은 부산 사투리도 동서남북 말이 다 다르다. 이후 곽 감독님이 중학교를 중퇴하고 인간관계를 평균보다 훨씬 적게 맺은, 좀 거친 일을 했던 사람들이 쓸 법한 사투리로 설정해 디테일을 잡아주셨다.”

▶삭발까지 감행했다.

“첫 촬영이 너무 힘들었다. 원래 어떤 작품이든 첫 촬영이 어렵긴 한데 이번엔 더했다. 영화에서처럼 첫 촬영이 택시 타고 밥집에 들어가는 장면인데 뭔가 빠진 것 같고 부자연스러웠다. 촬영을 접고 두 시간 정도 고민한 끝에 삭발을 결정했다. 차기작이 결정된 상태라 나에겐 큰 결심이었다. 그나마 ‘킹덤’은 사극이라 어차피 통가발을 써야 하니 그동안 나만 불편을 감수하면 됐다. 감독님도 고맙다고 하셨다.”

▶특별히 힘들었던 건 뭔가.

“내 피를 모기들이 좋아한다. 엄청나게 뜯겼다. 우리 영화가 실제 있는 건물이나 장소를 세팅해서 찍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범죄 현장과 비슷한 곳을 많이 찾아다녔다. 그러다보니 하수도 근처라든가 좀 지저분할 수 있는 곳들에서 주로 촬영이 이뤄졌다. 모기들 입장에선 잔칫날인 셈이다.”(웃음)

▶개봉 시기가 겹쳐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올해 가장 바쁜 행보를 이어갔다.

“초반에는 너무 겹쳐서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의지나 선택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배우는 찾아주지 않으면 바쁘고 싶어도 바쁠 수가 없다. 다행히 그간 고민하지 않아도 될 좋은 작품들을 만났다. 내년에는 드라마 두 편을 빼면 아직 차기작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걱정이다. 영화가 모두 흥행이 되니 ‘너무 재는 거 아냐?’라는 말을 들을까봐서다. 지금 바로 촬영에 들어가도 1년에서 1년 반의 공백이 생긴다.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그냥 마음 편히 즐기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차기작 두 편이 모두 드라마다. 아무래도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인 ‘킹덤’에 대한 기대감이 클 듯하다.

“‘킹덤’은 월드와이드로 오픈이 되니 사실 기대감이 있다. 넷플릭스는 190여 개국에 걸쳐 1억3천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한국 문화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시아 문화는 중국과 일본색이 강하다. 우리 한복도 예쁘고 아름다운데 아직 세계적으로 익숙하지 않다. ‘킹덤’이 정통사극이니까 잘되면 좋은 홍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잘돼서 할리우드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마련됐으면 한다.”

▶배우로서의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

“요즘 그런 생각을 계속 한다. 장르마다 출연하는 목적이 다를 수 있다. 이야기 자체가 불편해서 많은 공감을 받을 수는 없지만 꼭 꺼내서 알려야 하는 작품이 있고,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기획된 작품이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영화들에 출연해 왔는데 그러다보니 관객들과 가까워지고 좋았다. 바람이라면 더 친숙하고 친근한 배우이고 싶다. 그게 나의 요즘 화두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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