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대구에서 본 경북도지사

  • 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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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11   |  발행일 2018-10-11 제39면   |  수정 2018-10-11
[영남타워] 대구에서 본 경북도지사
변종현 사회부장

왜 ‘한 나라’였을까. 지난 2일 일일 대구시장으로 교환근무에 나선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대구시청 방명록에 남긴 ‘대구·경북 한 나라처럼’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엄연히 나라가 존재함에도 또 다른 하나의 나라를 설정했기 때문이다. ‘한 광역단체처럼’ 혹은 ‘한 몸처럼’으로 해도 충분했을 것을 굳이 국가 개념으로 확장한 이유는 뭘까. 기자간담회 때 싱가포르 등의 예를 들면서 강소국가론, 도시경쟁력론 등 그 배경의 일단(一端)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라는 수사(修辭)는 확실히 도발적이다. 지도자의 방명록은 정치철학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메시지가 있기 마련이다.

억측일 수 있지만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한다면 이 지사의 ‘한 나라’는 현 정치지형과 무관치 않다. 지난 지방선거 결과 유이(唯二)한 보수 광역단체로 이름 올린 대구·경북을, 진보당이 집권하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으로부터 분리·독립하겠다는 정파적·이념적 의지가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경북도 예산이 어떤 이유에서 간에 결과적으로 절반 가까이 삭감될 처지에 놓인 자치단체장 입장에선 현재의 정치권력 구도 하에 정부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게 만족스러울 수 없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도 작용한 듯하다. 결국 대구·경북을 하나의 국가 단위처럼 운영해 ‘우리끼리’ 자부자강(自富自强)의 길을 찾자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선동으로까지 읽힐 수 있는 이 같은 탈(脫)중앙적 혹은 탈국가적 사고는 이명박근혜정부 시절 경북도를 이끈 김관용시대에서도 간혹 표출되곤 했다. 김 전 지사는 보수정권 시절임에도 지방의 독자외교를 강조했다. 결과물이 뚜렷했던 것도 아니고 그 의도마저 불순하게 보는 시선이 적잖았지만 대한민국과 서울공화국이 등치(等値)되는 시대에 지방의 한계를 지방 스스로 뛰어넘으려는 시도로 평가됐다. 지방이 독립적으로 글로벌 전략을 짠다는 의미에서 ‘세방화(세계화+지방화)’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이는 고구려·백제라는 강자를 뛰어넘기 위해 ‘밖’으로 눈을 돌린 변방 신라의 DNA가 경북에 심리지리적(心理地理的)으로 이어지고 있음이다.

‘한 나라처럼’은 한 주류업체의 브랜드를 떠올리게도 한다. 원래 한 몸이었던 상태로 돌아가자는 뜻에서 ‘처음처럼’보다 강렬하고도 대중적인 문구는 없을 듯싶다. 실제 이 지사는 대구·경북이 하나였을 당시 서울과 어깨를 나란히 한 옛 영광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이 지사의 생각처럼 ‘한 나라’가 되기 위해선 ‘한 몸’이 선행돼야 한다. ‘한 나라’가 시스템 차원이라면 ‘한 몸’은 정서적 차원이다. 전자가 서로의 장점을 결합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내어주는 배려다. 행정체계를 달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입으로만 ‘한 뿌리’를 외쳐서는 ‘한 몸’이 되기 쉽지 않다. 상생은 상대가 절실히 원하는 것을 내어주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대구취수원 구미 이전을 놓고 말이 많다. 세간에는 이 지사가 이전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까지 비쳐졌다. 도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극도로 말을 아낄 수밖에 없는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나 발언의 맥락을 보면 이 지사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이 지사는 결국 지난 7일 권영진 대구시장을 만나 ‘구미산단 무방류 시스템 도입’과 ‘대구취수원 이전’ 연구용역을 정부에 공동 건의하고 그 결과에 따르기로 했다. 지도자는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정책을 명확히 제시하고, 반대에 부딪혔을 땐 공론과 설득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민감한 문제라고 애매한 표현으로 시간만 흐르기를 기다려선 결코 안된다. 정치꾼과 지도자 간 클래스 차이는 여기서 결정된다.

이 지사와 권 시장은 교환근무를 통해 ‘대구·경북 공동체’ 실현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성공 여부는 대구공항의 경북 이전과 대구취수원의 구미 이전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지사는 공항 이전이 대구·경북 옛 영광 재현에 필수적이라 보고 있다. 그래서 절박하다. 하지만 대구시민 상당수는 여전히 공항 이전에 부정적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대구공항이 경북에 가게 되면 경북은 대구가 간절히 바라는 물을 줘야 한다. 그래야만 ‘한 몸’이 될 수 있고, 이 지사가 바라는 ‘한 나라처럼’ 운영할 수 있다. 정부 용역은 하세월이다. 지금 당장, 대구취수원 구미 이전 결단을 내리는 게 참된 상생의 시작이다. 변종현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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