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사회악 정치악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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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08   |  발행일 2018-10-08 제31면   |  수정 201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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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혁 논설위원

‘데블스 에드버킷’은 1997년 12월 개봉돼 호평을 받은 미국영화다. ‘악마’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이 암시해주듯 악행 의뢰인도 변론해 이기게 만드는 한 특출한 변호사의 인생을 다뤘다. 빼어난 재능으로 유리한 증거물을 모아 승승장구하다가 막판 본연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변호사 역으로 키아누 리브스가, 그를 고용한 법률회사 대표역으로 알 파치노가 열연했다. 알다시피 변호사는 오로지 자신에게 변론을 맡긴 고객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재판에서 이기는 게 변호사의 업이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처럼 의뢰인이 살인자임을 알고도 그를 변호해 감옥에 안 가도록 만드는 건 정의가 아니다. 사회의 병폐이자 사회의 모순으로 생기는 해악, 즉 사회악에 다름 아니다.

알다시피 사회악은 시대에 따라 그 척결 대상이 달라진다. 한국의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한 4대 사회악은 ‘성 폭력·학교 폭력·가정 폭력·불량식품 유통’이었다. 다소 생뚱맞은 불량식품 유통이 근절 대상에 포함된 것을 보면 당시 불량식품으로 인한 폐해가 어떠했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먹는 음식 갖고서 장난치는 인간은 싸그리 감옥에 보내야 한다’는 강경론은 지금도 유효하다.

일찍이 인도의 성현 마하트마 간디는 사회를 망치는 악행에 대해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일곱가지 부문의 사회악을 콕 집어 경고했다. 원칙 없는 정치(政治), 노동 없는 재산(財産), 양심 없는 쾌락(快樂), 특성 없는 지식(知識), 도덕 없는 상거래(商去來), 인간성 없는 학문(學問), 희생 없는 신앙(信仰)이 그것이다. 성현의 반열에 오른 그의 통찰력을 입증하는 지적이다. 정치가 소속 정당의 이념에 충실하지 못하고 부를 일구는 방법이 투기나 이자놀이라면 그 나라는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상거래를 할 때도 당연히 지켜야 할 법도가 있어야 경제 정의가 실현된다. 학문이 단순한 지식만 축적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무미건조하겠는가. 신앙은 자기 희생이 핵심인데 그게 없다면 그건 마치 앙꼬 없는 찐방과 같은 것이다.

우리사회가 경계해야 할 행태는 또 있다. 흔히 ‘핌투(PIMTOO: Please In My Term Of Office)’와 ‘님트(NIMT: Not In My Term)’로 표현되는 행위다. 핌투는 ‘내 임기 동안 좋으면 된다’는 식의 선심 남발을 지칭하는 축약어다. 님트는 ‘뜨거운 감자는 내 임기 중 다루지 않겠다’는 민감한 현안 회피 행태를 지적하는 용어다.

작금 한국의 정치는 그 폐단이 심각하다. 노론·소론·남인·북인의 사색당파로 지지고 볶던 조선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로지 국가와 민족의 앞날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함에도 계파이익과 개인의 입신양명을 앞세우는 정치인들 때문이다. 막말 정치로 화제가 됐던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6월 대표직을 내려놓으면서 SNS에 올린 ‘마지막 막말’은 압권이다. 1년간 보수정당을 이끌면서 자신이 청산하지 못한 엉터리 국회의원 때문에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렸고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는 고백이었는데 그 유형은 이렇다. 고관대작 지내고 국회의원을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 추한 사생활로 더 이상 정계에 둘 수 없는 사람, 의원총회에 술 취해 들어와서 술주정 부리는 사람, 국비로 세계 일주가 꿈인 사람, 카멜레온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변색하는 사람, 감정 조절이 안되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 친박 행세로 국회의원 공천 받거나 수차례 하고도 중립 행세하는 뻔뻔한 사람, 탄핵 때 줏대 없이 오락가락하고도 얼굴·경력 하나로 정치생명 연명하는 사람, 이미지 좋은 초선으로 가장하지만 밤에는 친박에 붙어서 앞잡이 노릇하는 사람. 구구절절이 독자 폐부를 찌른다. 결코 막말이 아니라 앞으로 국민이 단호히 척결해야 할 정치악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왜 이런 함량미달의 정치인을 선거때 판별하지 못하고 표를 줘 국민 대표로 국회에 입성하게 만들었는지를.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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