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김태균 감독 ‘암수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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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05   |  발행일 2018-10-05 제43면   |  수정 2018-10-05
강력범죄 실화 모티브…개봉 전 ‘상영금지’ 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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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살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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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film is based on a true story(이 영화는 실화에 기반하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이런 자막이 뜨는 영화들이 있다. 영화가 세상에 나온 이후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실화는 영화 제작에 가장 많은 소재를 제공해왔다. 많은 감독들이 실화 영화를 만들어 왔거나 만들거나 만들 예정에 있는 이유는, 과거에 사회적으로 충격을 안겼던 사건들을 모티브로 삼는 것이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 좋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된 사건이나 인물을 영화화한다는 것만으로 개봉 전부터 자연스럽게 홍보를 할 수도 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듯이 늘 새로운 이야기가 목마른 영화계에 다양한 소재와 영감을 주는 것도 이 실화 영화들이다.

실화 가운데 실제로 일어난 범죄 사건들을 영화화해 관객들의 열광을 이끌어낸 사례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03년 4월, 평단의 호평에도 관객들이 외면해 데뷔작 흥행에 실패한 봉준호 감독이 선택한 차기작 ‘살인의 추억’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 일대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영구 미제 사건으로 영국에 ‘잭 더 리퍼’, 캐나다에 ‘눈물의 고속도로 연쇄살인 사건’, 미국에 ‘조디악 킬러’가 있다면, 한국에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심각했던 사건이었다.


“사실은 일곱명을 죽였다”
살인범이 감옥에서 던진 단서
진실 쫓는 형사의 집념 그린 실화
피해자·살해 수법 유사하게 묘사
유족 동의 거치지 않아 논란일기도
제작사 사과후 우여곡절끝에 공개

“눈길 주지 않은 사건 세상에 알려”
또다른 피해자 유족은 응원글 남겨



2008년 2월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는 극 중 배우 하정우가 연기한 지영민이란 인물이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무려 20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 유영철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었다. 개봉 전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다는 정보만 나와 유영철을 미화한다는 헛소문이 퍼져 나 감독이 상당히 불쾌해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 유영철을 모티브로 했다는 지영민을 보고 몇몇 전문가들은 유영철보다는 또 다른 연쇄살인범인 강호순에 더 가깝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2015년 6월 개봉한 곽경택 감독의 ‘극비수사’는 ‘1978년 실제이야기’라고 포스터에 적은 것처럼 1978년 부산에서 실제 있었던 ‘정효주 유괴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였다. 국내 최초로 범죄 수사에 최면술사가 동원된 사건으로 수사과정에서 얼굴과 이름이 알려지면서 이듬해 피해자가 다시 유괴되는 모방범죄가 있기도 했다.

이달 초 개봉한 김태균 감독의 ‘암수살인’ 역시 이처럼 실제 발생한 범죄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다. 영화는 여자친구 살해 혐의로 수감된 ‘강태오’(주지훈)가 밝힌 “사실 일곱 명을 죽였다”는 자백 하나에 의지해 형사 ‘김형민’(김윤석)이 피해자도, 증거도 없는 미제 사건들을 파헤치려 분투하는 과정을 그렸다. 2012년 11월에 방송된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 감옥에서 온 퍼즐’ 편을 우연히 보게 된 김 감독은 방송 다음날 취재를 위해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가 실제 주인공인 김정수 형사를 만나 5년 넘게 끈질긴 취재와 꼼꼼한 인터뷰를 통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신과 함께’와 ‘공작’에 이어 ‘암수살인’에서 살인범을 연기한 배우 주지훈은 강렬한 악센트를 잘 살린 부산 사투리와 삭발, 광기 번뜩이는 야수의 눈매로 시시각각 폭발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내면 연기를 통해 통제 불가능한 살인마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살려냈다. 살인범이 감옥 안에서 던져주는 단서를 믿고 피해자를 찾으며 끈질기게 진실을 쫓는 형사로 분한 배우 김윤석은 지금 이 시대가 원하는 ‘집념’과 ‘소명’ 그 자체를 연기한다.

영화는 개봉 전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논란에 올랐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의 피해자 여동생이 지난 달 20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2007년 부산에서 사법시험을 준비 중이던 피해자가 살해된 이른바 ‘부산 고시생 살인사건’이 실제 사건인데 영화에서 발생연도를 2007년에서 2012년으로 변경했지만 피해자의 나이나 살해수법 등을 유사하게 묘사하면서 유가족의 동의나 사건묘사에 대한 조율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열흘 후 유가족을 직접 찾아가 “제작 과정에서 충분하게 배려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고 유가족의 소송대리인은 영화 개봉 이틀을 앞둔 지난 1일 보도자료를 통해 “피해자 유족은 영화 제작사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았다”며 “이에 따라 제기한 가처분 소송을 취하했다”고 전했다.

데뷔작 ‘봄, 눈’의 뼈아픈 실패를 딛고 우여곡절 끝에 차기작을 공개하게 된 김태균 감독은 곽경택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다. 곽 감독은 ‘암수살인’의 시나리오 작업뿐 아니라 제작에도 참여했다. 곽 감독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친구’를 비롯해 ‘챔피언’이나 ‘극비수사’를 통해 이미 실화를 영화화한 전례가 수차례 있는 제작진이 이런 논란을 사전에 예상해 미리 막지 못한 일은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유가족의 마음을 돌리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영화 제작 취지(암수 살인 범죄의 경각심을 제고한다)까지 다시 곱씹게 한다.

또 다른 피해자 유족은 개봉 전 시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누구도 눈길 주지 않은 사건에 주목해 결국 밝혀내셨던 형사님과 같은 분들이 세상에 알려지기 바라서”라며 “이 영화는 세상에 나와야 한다”는 응원의 글을 SNS에 남겼다. 이어 “지금도 실종자의 유가족으로 살아가는 많은 분들에게 사회가 한 번만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면” 하는 바람도 덧붙였다. 영화를 본 관객들 역시 같은 마음일 것이다. 자신의 실적을 위해서도 아니며, 이미 잡힌 범인을 사형시키려거나 무기징역을 받아내는 것이 완전한 목적도 아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피해자의 죽음을 밝히는 것, 그리고 다시는 발생해선 안 되는 잔혹한 범죄이기 때문에 범인은 완전한 죗값을 받아야 한다는 것.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암수범죄’들이 얼마나 많은가. 영화가 그 시스템을 만드는 시작이 된다면 유가족들의 서운한 마음도 봄눈처럼 녹지 않을는지.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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