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장세용은 더 이상 언더독이 아니다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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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04   |  발행일 2018-10-04 제31면   |  수정 2018-10-04
[영남타워] 장세용은 더 이상 언더독이 아니다
이창호 경북부장

크로아티아. 지난 러시아월드컵에서 이보다 더 핫한 팀이 있었을까. 대회 전 이 팀을 주목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유럽 예선을 뚫고 본선에 오른 터였다. 하지만 본선에선 딴판이었다. 조별 예선·토너먼트에서 ‘불패 드라마’를 써내려 갔다. 16강과 8강에선 연거푸 승부차기로 이겼다. 마침내 결승까지 오르자 축구팬들의 열광은 하늘을 찔렀다. 인구 400만명을 겨우 넘는 작은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창의적 플레이어가 많이 나올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시나브로 ‘크로아티아 팬심’에 빠졌다. 결승전에서도 프랑스를 꺾어주길 바랐다. 크로아티아가 프랑스·독일·브라질 등 축구 톱랭커들에 비해선 ‘언더독(underdog·상대적 약자)’이라는 동정심이 발현됐기 때문이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장세용 구미시장. 그도 ‘언더독’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인 그가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를 누른 것은 여전히 구미에서 회자거리다. 구미가 어떤 곳인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김관용 전 경북도지사·남유진 전 시장이 3선을 한 ‘보수의 본향’이다. ‘시장 장세용’은 실로 대이변이요, 대사건이다. 모르긴 몰라도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도 영향을 줬으리라.

그런 장 시장이 요즘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취임 3개월이 지나도 여전한 진행형이다. 이 짧은 기간, 초보시장의 진땀을 빼는 일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모두 외부로부터의 요구와 압박이다. 가장 떠들썩한 것은 ‘박정희 역사자료관 명칭 변경’ 논란이다. 지난달 구미시청 앞은 ‘장 시장 규탄’ 집회로 바람 잘 날 없었다. 이들은 구미시가 역사자료관 명칭을 바꾼다면(‘박정희’ 이름을 뺀다면) 결코 가만 있지 않겠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한 지역구 국회의원도 “박정희 지우기를 멈춰라”며 시장을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맞선 진보단체는 정반대 압박이다. 역사관 명칭에 ‘박정희’를 빼라는 것이다. 이같은 삼각 갈등은 ‘구미시 새마을과 폐지’를 놓고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구미시에서 결정된 것은 아직 아무 것도 없다. 의견이 워낙 분분하니 시민 의견을 물어 결정하겠다는 게 장 시장의 요량이다. 구미시청 안팎에 따르면 장 시장은 결코 ‘래디컬한 진보’가 아니다. 그도 내심 ‘청년 박정희’에 대해선 호감을 갖고 있다. 다만, 구미가 마냥 ‘박정희’만을 갖고 먹고살 순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박정희 마케팅’의 장점은 살리되, 도시재생·문화산업 등 다양한 정책을 구미에 녹여보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최소한 ‘박정희 패러다임의 전면 해체’는 없어 보인다.

보수·진보 단체와 정치권 주장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도가 지나쳤다. 정치권이 더하다. 장 시장을 놓고 ‘정치 편향적 시정, 구미시민 분열 초래’ 운운한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고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저급한 견제와 압박이다. 더욱이 지금 구미에서 초보시장에게 ‘이념 프레임’을 씌워 흔들기에 몰두할 때인가.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해 온 구미는 유례없는 불황에 신음 중이다. 경제지표는 곤두박질의 연속이다. 대기업이 해외·수도권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일자리까지 가뭄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념논쟁의 틀에만 사로잡혀 있으니…. 구미 미래가 걱정스럽다. 보수든 진보든 더는 구미시장을 흔들지 말라. 지금은 그의 ‘시정(市政) 연착륙’을 지켜보고 기다려야 할 때다.

사견임을 전제로, 장 시장은 ‘햄릿형’에 가깝다. 그는 지난 3개월 외부 단체와 정치권의 요구에 명확한 답을 피했다. 난감한 탓이리라. 기실 그런 모습이 논란을 키운 면도 없지 않다. 우유부단성이 길어지면 시민이 먼저 등을 돌릴 것이다. 박정희 역사자료관 명칭 변경을 하든 않든, 과단성(果斷性) 있는 결단력을 보여라. 득표율 40.8%로 구미시 수장에 오른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언더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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