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국민연금은 억울하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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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0-03   |  발행일 2018-10-03 제27면   |  수정 2018-10-03
[박재일 칼럼] 국민연금은 억울하다

언젠가 붓고 있는 보험사 연금저축 통지서를 받았다. 얼마 되지 않은 금액이지만 뭔가 이상하다. 가입한 지 수년이 지났는데 쌓인 금액이 이자는 고사하고 이제야 본전이다. 초기 1~2년 납입금은 가입·운영비로 떼인 탓이다. 물론 10~20년 장기납입하면 은행이자 이상 나온단다.

며칠 전 국민연금 대구지역본부에서 연금제도 개선을 주제로 난상토론이 펼쳐졌다. 상공계, 학계, 시민단체, 언론계 인사들이 참석했는데, 토론이 진행될수록 이게 만만치 않은 주제라는 점이 금방 드러났다. 복지 국가란 무엇인가, 분배는 어떻게 해야 정의로운가, 미래세대와 현세대 분담률의 최적선은 어디인가.

청년 대표로 나온 이는 지금 월급여의 9%인 부담률을 11% 이상 올린다면, 지금까지 적게 낸 기성세대에 비해 현재의 청년세대는 많이 내고 적게 받는 불공정함이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국민연금은 현세대가 기성세대의 연금을 대는 측면도 있다. 복지부 담당 과장도 “공감한다. 너무 힘든 부분”이라고 토로했다.

국민연금은 30년 전, 1988년 탄생했다.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작한 뒤 농어민과 도시 자영업자를 포함하면서 지금은 거의 전 국민(2천190만명)이 대상이 됐다. 현재 적립금은 639조원으로 당당히 세계 3대 연기금에 속한다. 기금운용본부장이 뉴욕 월가에 나타나면 칙사대우를 받는다. 그동안 507조원을 거둬들였고, 306조원을 불렸다. 여기서 174조원을 지출했다. 현재 추계로면 2041년 1천778조원까지 불어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2041년 정점을 찍으면 기금은 점차 줄게 돼 있다. 이론상 2057년 고갈된다고 추정된다. 젊은 세대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물론 그 이전에 정책적 조치가 있을 것이다.

국민연금은 직장인만 놓고 따져 보면 기업주가 몽땅 부담한다. 4.5%를 기업이 부담하고, 나머지는 월급에서 차감하는데 그 월급도 결국은 기업이 준다. 게다가 국내 기업들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퇴직금 제도를 여전히 갖고 있다. 퇴직금을 국민연금으로 대충 환산하면 10%의 소득대체율이 있다. 이런 점은 별반 부각되지 않는다. 기업 측이 억울한 부분이다.

연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베네수엘라나 그리스처럼 나라가 망하거나 망하기 일보직전으로 갈 수 있다. 누군가 돈을 내야 굴러간다. 대한민국 국민연금은 현재 5년마다 재정 추이를 계산해 공개하고, 미래 수급 계획을 짜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지금 전국을 돌며 열리고 있는 토론회도 그런 여론 수렴 차원이다. 유럽에서는 40년 뒤의 재정고갈을 걱정하는 대한민국을 보고 대단하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이제 국내외 주식은 물론 세계각지의 부동산에도 투자한다. 삼성전자나 현대차의 1대 주주로 올라서는 것도 시간문제다. 물론 돈 굴리기는 예측불허다. 쉽게 말해 경제가 파탄나거나 전쟁이라도 나면 다 휴지 조각이 될 수 있고 반대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만약 미래세대의 부담이 그렇게 크다면 당장의 기성세대가 연금을 좀 합리적으로 받아가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아버지 입장이라면 아들이 내는 돈으로 연금을 받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연금 피크제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의 국민연금처럼 급성장한 연금도 세계적으로 드물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보험회사 개인연금처럼 이기적 제도가 아니다. 연금의 절반인 50%는 똑같이 평균값을 주니까 소득재분배란 사회보장 기능이 있다. 소득이 적어 적게 낸 사람, 특히 오래 살수록 유리하다. 종종 비난받는 국민연금이 억울한 이유다.

그래도 진정한 국민연금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 즉 정부의 기여가 있어야 한다. 국민연금 초창기에는 인건비와 운영비를 국가가 부담하다 점차 줄여 올해는 겨우 100억원이 지원된다. 이렇다면 모집원 월급 주고, 회사 이익 내고 그런 다음 가입자를 생각하는 사기업 보험회사와 다를 바 없다. 사실상 100% 국가 세금으로 충당하는 공무원연금과는 형평이 지극히 어긋난다. 대한민국 정부나 국민연금공단이 보험회사가 돼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돈의 지원 규모를 떠나 복지에는 그 철학적 정신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정부가 새겨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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