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국민이 힘들다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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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27   |  발행일 2018-09-27 제31면   |  수정 2018-09-27
[영남타워] 국민이 힘들다
허석윤 기획취재부장

추석연휴가 끝났다. 늘 그렇듯 달콤한 휴식은 부족하기 마련이다. 고단한 일상이 다시 시작됐다. 으레 ‘명절 후유증’이란 호들갑이 등장한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후유증을 겪을 만큼 명절이 그리 대단한가. 사실, 명절이 예전만 못하다고 여긴지는 꽤 됐다. 단지 나이 탓 때문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이런저런 이유로 명절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라 경제가 바닥을 기는 것과 맞물려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명절의 미덕은 여전히 유효하다. 가족과 공동체의 정(情)을 공유하고 삶의 여유를 느끼기에는 명절만한 것이 없다.

명절이 좋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정치인도 대부분 쉰다는 점이다. 지겨운 정치뉴스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명절은 힐링에 기여한다. 정치에 대한 혐오까지는 아니지만, 4류 정치판의 식상한 행태는 언제 봐도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정치의 언어에는 영혼은 없고 술수와 탐욕만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악마의 속삭임’이라고도 한다. 과장된 측면이 있겠지만, 어쨌건 정치인의 말은 안믿는 게 여러모로 이롭다.

알다시피 정치인이 가장 즐겨 쓰는 단어가 ‘국민’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불편하다. 때로는 은근히 부아마저 치민다. ‘도대체 저들이 말하는 국민이란 누군가? 저토록 국민을 위한다는데 정작 국민의 삶은 왜 이 모양인가.’ 물론, 몰라서 이런 볼멘소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에게 국민이란 ‘유권자’의 그저 다른 이름일 뿐임을 누구나 안다. 정치인이 국민에게 굽실거리는 때는 오직 선거철밖에 없지 않은가.

사실, ‘국민’의 개념은 지극히 단순한 듯하면서도 모호한 구석이 있다.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이 워낙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국민이란 개념이 막연하고 가변적이지만, 이 글에선 주로 서민을 지칭한다. 무늬만 중산층을 포함해 실제 서민층이 전체 인구의 70%는 족히 될 터이니 국민과 서민을 동의어로 삼아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과거 우리 경제의 눈부신 성장을 두고 ‘기적’이라고들 한다. 물론 기적 같은 일임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본질은 쉽게 망각된다. 기적은 그저 이뤄지지 않았다. 기적의 자양분은 국민의 땀과 눈물이었다. 그런데 정말 문제다. 경제성장의 기적은 멈춘 지 오랜데, 국민의 피땀은 멎을 기미가 없으니. 이 말이 엄살이 아님은 통계수치 몇 개만으로도 입증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자살, 저출산, 노인빈곤, 소득불평등, 사교육비 지출, 실업증가 등에서 세계 1~2위에 올라 있다. 국민의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현 정부 들어 실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시대의 도래가 반갑고 감격스럽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당장의 민생문제를 가릴 순 없다. 정부는 서민을 위한다며 각종 정책과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서민은 먹고살기 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정부는 이를 민생경제가 나아지기 위한 ‘성장통’이라고 한다. 믿기 어렵다. 그냥 ‘관절염’일 수도 있다. 설사 진짜 성장통이라고 하더라도 왜 서민만 죽을 만큼 아파야 하는가.

문재인정부는 다방면에 걸쳐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유독 민생과 직결된 개혁은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리고 비대한 관료조직에 대해서도 개혁이 아닌 야합을 택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공무원 수만큼 납세자의 등골은 더 휘게 마련이다. 특히 연금문제는 심각하다. 매년 조(兆) 단위의 세금이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에 쓰인다. 그런데도 공무원연금 수령액의 6분의 1에 불과한 국민연금을 ‘더 늦게 덜 주는’ 방향으로 개혁하겠다고 한다. 공무원에게는 모르쇠고, 국민에겐 추상같은 개혁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정부는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답을 내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노동자와 농민, 자영업자 등의 생활과 노후가 뿌리째 흔들리면 또다른 촛불집회가 열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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