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의 패션디자이너 스토리]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

  •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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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21   |  발행일 2018-09-21 제40면   |  수정 2018-09-21
일상적인 것에 새로운 해석…‘어글리’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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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밥 나온 청바지·무릎까지 오는 소매
‘베트멍’론칭…세계 패션계 지각변동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멋 연출 열풍

유서깊은 하우스·스트리트 패션 만남
발렌시아가 디렉터 활동, 컬렉션 화제
왕발 만들어 버리는‘트리플 S’ 불티
재킷·코트 7가지 레이어드 룩 과감성
보여주기보다 내가 입고 싶은 옷 철학


베트맨이 아니다, 베트멍이다. 그라피티 느낌의 로고, 비대칭의 실루엣과 과장된 어깨선, 무릎에 닿을 듯한 긴 소매, 밑단의 높이가 다르게 잘려져 실밥이 나온 청바지. 그의 패션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의 수식어만으로는 부족하다. 베트멍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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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가의 2017 FW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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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나 바잘리아.

뎀나 바잘리아는 1981년생으로 옛소련의 조지아에서 태어났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조지아를 떠나 러시아의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집시처럼 자란 그는 독일에 정착하여 2000년 세계 3대 패션스쿨로 손꼽히는 벨기에의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 입학해 2006년 졸업한다. 초기에는 남성복 디자이너로 일을 하였으나 해체주의를 상징하는 브랜드인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에서 여성복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은 후 루이비통의 여성복 헤드 디자이너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2014년 뎀나를 중심으로 한 7명의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만든 브랜드 ‘베트멍(vetements)’을 창립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서 뎀나는 전 세계 패션계에 큰 지각변동을 예고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한마디로 파격이었다. 일상 속 패션을 그대로 컬렉션에 끌어온 것 같았다. 하지만 인체의 비율을 새롭게 정의하는 듯한 우뚝 솟은 어깨와 긴 소매, 마감이 되지 않은 것 같은 실밥, 솔기가 그대로 드러난 데님, 겉감과 안감이 마구 섞여 다양한 원단으로 레이어드된 재킷은 친숙한 아이템이지만 전혀 다른 해석을 통해 새롭게 다가왔다. 뎀나의 옷은 해체주의를 상징하는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러시아의 문화적 요소가 더해져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베트멍은 옷의 기본에 충실하기 위한 브랜드다. 그 이름마저 프랑스어로 옷을 뜻한다. 2014년 시작된 이 신생 브랜드는 꾸미지 않은 듯한 자연스러운 멋으로 스트리트 패션의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젊은 세대들이 가장 선망하는 브랜드로 떠올랐다.

당시 패션계는 고가의 하이엔드 브랜드와 저가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양립화로 정체기에 빠져 있었으나 베트멍의 등장으로 인해 하이엔드 스트리트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베트멍이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패션쇼 컬렉션은 일상에서 입기엔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고 소수의 사람을 위한 옷이 대다수이나 뎀나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친숙하지만 새로운 해석을 더한 실용적인 옷을 만들었고 성별까지 모호한 젠더리스 룩을 선보여 젊은 세대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또한 기존 패션시장이 가지고 있는 고정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성과 패션 비즈니스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는 방식으로 시장에 접근하여 브랜드 가치 유지와 재고의 문제라는 균형점도 잃지 않았다. 모든 옷은 한정된 수량으로 생산되어 인기제품일 경우 금방 품절될지라도 당초 제작된 수량 이외에 추가생산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옷을 구매한 사람에 대한 배려라는 철학으로 브랜드의 인기와 가치를 유지하는 영민함도 보여주었다.

뎀나는 베트멍을 시작한지 불과 3년 만에 또 한 번 자신의 이름을 크게 알리게 되는데, 바로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인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지목된다. 기품, 우아함을 상징하는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와 스트리트 패션과의 만남이 쉽게 연상되지 않지만 뎀나는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주면서 그런 우려를 한방에 떨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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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나의 발렌시아가 컬렉션은 늘 화제를 몰고 다녔으며 기존 아카이브에 현대적인 감각을 입혀 보다 젊고 활력 있는 발렌시아가를 완성하였다. 특히 발렌시아가의 역작으로 손꼽히며 전 세계적으로 어글리 슈즈 열풍을 불러 일으킨 신발이 대표적이다. 양말을 신은 것 같은 날렵한 디자인의 스피드 러너는 패션 피플을 열광케 하였고 이와 반대로 신으면 거대한 왕발로 만들어버리는 밑창이 커다랗고 흡사 등산화를 연상하게끔 하는 트리플 S는 모든 패션 브랜드에서 유사한 모델의 스니커즈를 출시하게 만들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못생겼다 하여 어글리 슈즈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이름과는 다르게 불티나게 팔렸고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부터 하이엔드 브랜드까지 모두가 어글리 슈즈를 출시하면서 뎀나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케 했다.

지난 시즌 발렌시아가는 구조적인 레이어드 룩을 보여주며 어려운 가정에 식량을 후원하는 자선단체인 월드 푸드 프로그램에 판매액의 10%를 기부하겠다는 착한 행보로도 주목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단연 화제였던 제품은 7가지 아이템으로 구성된 코트였다. 셔츠부터 베스트, 윈드 브레이커, 데님 재킷 위에 트렌치 코트까지 여러 아이템을 레이어링하여 역시 스타일의 강자라는 면모를 과감없이 과시했다. 3D 보디 스캐너와 디지털 피팅을 통한 하이테크 기술까지 접목하여 울, 트위드, 벨벳을 접목한 미래적인 소재도 제안했다.

뎀나의 디자인 철학은 기본에 충실하되 흔히 보던 것도 새롭게 만들어 실용적이지만 그 가치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옷이 아니라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겠다는 디자이너의 가치관이 진심으로 통한 것이리라. 컬렉션에 나오는 옷이 단순히 전문 모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이 입는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자신이 운영하는 SNS를 통하여 남녀노소 구분없이 신청받은 모델을 기용하기도 하는 등 뎀나의 패션은 기존 패션 시스템과는 다르지만 요즘 패션계는 새로운 발상이 더해질수록 더 열광하는 듯하다. 뎀나가 만든 어글리 슈즈의 성공이 그러하듯 패션에 대한 해석이 보다 다양해지고 각각의 다양성들이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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