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大隱(대은) 유성환의 꿈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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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21   |  발행일 2018-09-21 제23면   |  수정 2018-09-21
[조정래 칼럼] 大隱(대은) 유성환의 꿈

“조 형, 우리 그만 화해합시다.” 기자는 얼떨결에 민자당 유성환 중구지구당위원장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당황한 와중에도 내민 손의 의미를 퍼뜩 알아채긴 했지만 수많은 기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예고도 없이 사적인 관계 개선 문제를 끄집어낼 줄은 몰랐다. “정치인이 말이야. 언론과 기자 하고 싸워봐야 하나도 득될 게 없더라고.” 그가 밝힌 이러한 경험칙에 이은 너털웃음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유 전 의원이 내민 화해의 손길은 지금까지 두고두고 나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기자라면 저간의 사정을 짐작하겠지만 유 전 의원과 나는 취재원과 기자로서 얼굴을 붉힐 만한 연속된 기사 보도로 상당 기간 어색하고 소원한 관계였다. 사건의 전말은 복잡하니 차치하고 대개는 기자에게 화도 내고 정정 요구까지 하는 게 다반사인데…. 물경 30년이나 연배인 어르신이 새까만 후배에게 먼저 관계 개선을 청하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기자로서 비판을 하더라도 법인격을 포함해서 인격 살인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두고두고 고맙게 생각하고 그 어른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여겨 왔다.

나는 20여년 전 이 일화를 동료 선후배들에게 심심찮게 소개하곤 했다. 지난 7월25일 저녁 대구 파티마병원 유성환 전 신민당 의원의 장례식장. YS계 원로인 김덕룡 전 의원 등 민주계 인사들이 장례식장을 가득 메워 고인의 생전을 기렸다. 최경순 대표는 더 늦기 전에 한번 모시자고 했던 ‘언제 한 번’이 영원한 허언이 돼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평소 가까이서 모셨거나 흠모했던 후배들이 빠짐없이 장례식장을 가득 채웠으니 유 전 의원의 한 생애가 결코 외롭지 않았음이다.

그의 심벌이나 다름없는 ‘국시논쟁’의 전말을 헤아리려 자서전 ‘최후진실’을 구해서 읽었다. 익히 알려진 대로 1986년 10월14일 제12대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그는 ‘우리나라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면책특권이 무시된 채 국회의원이 회기 중 원내발언으로 구속된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국시논란만 해도 반공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수단일 뿐 우리 민족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는 통일일 수밖에 없다. 삼척동자도 알 만한 사안을 두고 지금까지도 보혁 간 소모전을 벌이고 있으니 국시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유 전 의원의 딸 유현주씨는 87년 ‘월간 마드모아젤’에 증언 수기를 통해 아버지가 구속돼 겪은 고통을 ‘시대의 아픔’이라고 규정하고 “누구보다 떳떳하고 강직하게 그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국민의 대변인이 되신 아버지께 ‘사상’이라는 너울을 씌운 죄를 누가 어떻게 치를 것”이냐며 이같은 시대의 아픔이 막이 내리길 기원했다.

평생을 지켜봐 온 딸의 증언처럼 그의 생은 바로 ‘전 국회의원 유성환이 걸어온 길’, ‘양지도 많은데 와 음지만 찾노’란 자서전의 부제(副題)에 고스란히 집약돼 있다. “체포동의안을 가결시킨 동료의원들에게 관용을 베풀며 다시는 우리 헌정사에 이런 비극이 없기를 바란다는 불후(不朽)의 명연설을 하여 국회 본회의장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실로 범몽(凡夢) 형(兄)은 겸인지용(兼人之勇),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의지와 관용을 겸비한 대인(大人)이었습니다.” 평생지기인 이윤기 교수는 조사(弔詞)에서 평범과 비범(非凡)을 겸비한 그를 그리워했다.

‘대구가 오늘 대인(大人)을 잃었습니다. 그 크셨던 풍모를 기억하고 본받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조의록(弔意錄)에 나는 이렇게 썼다. 대인이기에 칼럼 제목에도 ‘의원’이란 직함을 빼고, 그의 희망은 미완성이기에 ‘꿈’이라고 했다. 대인보다는 차라리 대은(大隱)이라고 해야 하겠다. 대은은 이탁오의 속분서(續焚書)에 의하면 ‘산림에 몸을 두지 않고 권세와 부귀 한가운데에 처해 있으면서도 권세와 부귀에 초탈한 사람’을 이른다. 유성환 전 의원 평생의 행장에 맞춤한 호라 할 만하잖은가. 그를 좇는 후학들은 그를 ‘대은’이라 호명하는 게 안성맞춤이겠다. 저 세상에서도 용서와 관용의 손을 내밀고 있을 그를 기린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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