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부동산 대란과 보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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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7   |  발행일 2018-09-17 제30면   |  수정 2018-09-17
투기 차단하는 종부세 강화
이번에도 소극적 자세 보여
불로소득은 꼭 세금환수를
1주택자의 보유세·양도세
보호하는 관행도 재고해야
[아침을 열며] 부동산 대란과 보유세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최근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 부동산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아파트 가격의 폭등세는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어서 여기저기서 억, 억 소리가 들린다. 문재인정부 초기 사람들은 새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수립된 정부이니만큼 부동산 경기 부양을 일삼던 이명박·박근혜정부하고는 다르지 않겠느냐고 생각해 집 사는 것을 미뤘다. 이런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은 불과 1년 사이에 집값이 억대로 오르는 것을 목격하고는 아연실색, 잠을 못자고 있다.

부동산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정부는 급기야 9·13 대책을 내놓았는데, 그 내용은 돈줄 죄기와 종부세의 약소한 증세다. 드디어 토지 보유세 강화가 등장하긴 했지만 약한 느낌이다. 방향을 잘 잡은 우직한 대책이 아니고 섬세한 기술적 대책의 반복이다. 유도로 치면 통쾌한 엎어치기 한판이 아니고 미세한 발 기술이라고나 할까.

문재인정부가 지금까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것이 도대체 몇 번이던가. 일관된 정책 기조는 금융 조절, 양도소득세 강화, 투기지역 지정 등이었다. 그런데 시종일관 누락된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토지 보유세 강화다.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환수해 조세정의를 실현하고, 투기를 근본적으로 방지하는 최선의 대책은 보유세 강화라는 것이 헨리 조지 이래 학계의 정설이 아닌가. 그런데 왜 이렇게 보유세를 외면하는가. 보유세 지지 여론이 60%를 넘는데도 정부 대책은 늘 소극적이다.

한국에서 보유세를 획기적으로 강화한 첫걸음은 참여정부의 종부세 도입이었다. 종부세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던 날,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나는 “역사적 쾌거”라고 답했다. 그 뒤 종부세가 가족합산 조항이 잘못이라는 석연치 않은 단 한 가지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자 이명박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종부세를 반토막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종부세의 최고 구간 세율을 3%에서 3.2%로 높여 얼핏 보면 종부세를 강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구간에 들어갈 부동산 최고 부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부동산 부자들에게 이번 대책의 의미는 경미한 세금 증가다. 종부세에서 최대 1조원 증세가 있다 하더라도 전국 땅값 7천조원에 비하면 너무 약소하다. 문재인정부의 종부세는 느린 걸음으로 마지 못해 무대 위로 올랐지만 참여정부 종부세에 크게 못미친다. 그런데도 벌써 많이 들어본 ‘세금폭탄’ 이야기가 나오는데, 헌재는 참여정부의 강력한 종부세에 대해서도 세금폭탄이 아니라고 이미 결정한 바 있음을 상기하자.

문제는 이번 대책으로 부동산 투기 열풍이 사라질 것인가다. 진작 이런 정책을 발표했더라면 꽤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년 새 상황은 너무 나빠졌고 시장은 꾸준히 내성을 길렀다. 이번에야말로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확실한 보유세 대책이 나왔어야 하는데 또 핀셋 증세다. 새 정책이 발표되었으니 늘 그렇듯이 잠시는 움츠리겠지만 투기가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3주택 이상 소유자와 고가 주택 소유자에겐 세금 부담이 꽤 증가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절대 다수의 1주택 소유자들이다. 이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릴 필요도 없이 억대 자금을 마련해 당장이라도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 채비가 되어 있다. 1주택 소유자들을 보유세와 양도세에서 우대, 보호하는 기존의 정책 관행을 재고해야 한다. 1주택 소유자도 보유세·양도세를 낸다는 원칙을 세워야 광대한 잠재적 투기세력이 소멸할 것이다. 불로소득은 반드시 세금으로 환수한다는 원칙이다.

지난 반세기 한국은 극단적 토건국가였고 투기꾼의 천국이었다. 부동산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강폭은 벌어질 대로 벌어져 이제는 아무리 열심히 헤엄쳐도 강을 건너기 어렵다. 젊은이들이 밤낮으로 일해도 집 한 칸 장만할 가능성이 희박한 반면 부동산 부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1년 새 수억원을 챙길 때 혁신성장이나 소득주도성장은 공허하게 들린다. 청와대는 촛불 시민의 염원을 헤아리기 바란다.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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