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화자수연구소 이말남 대표와 제자들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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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4   |  발행일 2018-09-14 제35면   |  수정 2018-09-14
“느리지만 섬세한 전통 손자수…행복·성취감 맛보게 해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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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말남 이화자수연구소 대표(맨 왼쪽)와 그의 제자들(왼쪽부터 임향숙, 강민정, 손은진, 박희정, 황선화, 김향미, 성해영)이 다양한 전통자수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핸드 메이드(Handmade)’ 상품이 주목받고 있다. 공장기기에 의한 대량생산에 밀려 경제성이 뒤떨어지는, 그래서 구시대적 유물 같은 수제품이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가치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서 비롯된 것인데, 느리지만 그것을 완성하기까지의 노고에 대해 높은 가치를 둔다는 것이다. 핸드 메이드 바람을 타고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 손바느질이다.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준 재봉틀에 밀려, 또 대량생산설비를 갖춘 공장에 가려져 점점 자취를 감추는가 했던 손바느질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가고 있다. 이화자수연구소가 최근 각광받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손바느질과 관련된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는데 특히 한국전통자수에 큰 관심을 가지고 이와 관련된 연구를 깊이있게 하고 있다. 취재를 하러간 날, 이화자수연구소에는 이말남 대표와 그에게 바느질 수업을 받는 이들이 모여서 조용히 수를 놓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자수작품들로 인해 마치 꽃밭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예쁜 공방에서 손을 바삐 놀리는 그들의 얼굴은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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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말남 이화자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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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말남 대표가 만든 다양한 전통자수작품들. 노리개·오방주머니·사주단자 보자기(위에서부터).

◆한국전통자수 중심 두고 교육= 이화자수연구소는 한국전통자수를 깊이있게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자수에 밀려 전통자수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화자수연구소는 전통자수의 맥을 꾸준히 이어가면서 이를 현대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서양자수 비해 까다로워 침체 안타까움
전통자수 맥 이으며 다양한 현대화 시도
비단천·견사 사용, 한폭 동양화같은 문양
대중화 위해 자수연구회 결성 10여명 활동

사물 관찰하는 과정 세상보는 시선 변화
힘들고 어지러운 마음 다잡아 주는 계기
대구기능대회·전국대회 수상하며 자신감
생활문화제·봉산문화거리 프리마켓 홍보
바느질하며 회원간 소통, 정서적 안정 도움



이말남 대표(59)는 전통자수가 침체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보였다. “전통자수는 서양자수에 비해 까다로운 점이 많아 배우기가 어렵고 작품을 완성하는 데도 비교적 많은 시간이 들어갑니다. 바느질을 어느 정도 익혀야 시작할 수 있지요.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려면 10년 정도는 해야 됩니다. 이에 비해 생활자수로 많이 알려진 서양자수는 하루만 배워도 소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전통자수를 배우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재료를 판매하는 곳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도 드물어 전통자수가 더욱 약화되고 있습니다.”

제자인 김향미씨(52·꿈꾸는다락방 대표)가 거든다. “예전에는 국가공인자격증이 있었고 기능경기대회 등에 전통자수부문도 있었지요. 하지만 10여년 전부터 이런 것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손자수는 물론 기계자수까지 사라지고 있지요. 그렇다보니 중국에서 들어온 자수상품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있습니다.”

이쯤되니 전통자수와 서양자수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흔히 동양자수라고도 하는 전통자수는 서양자수에 대응해서 부르는 말이다. 천, 실, 문양, 용구, 기법, 용도 등이 서양자수와는 다르다. 천은 공단, 명주 등 주로 비단을 사용하고 실은 견사를 쓴다. 문양은 동양화적인 사실표현이 중심이 돼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바늘과 실이 아주 가늘고 작아서 바느질하기가 까다롭다. 그래서 생활용품에도 종종 쓰이나 장식용으로 많이 활용한다.

이에 비해 서양자수는 면, 마 등에 면사 또는 인견사를 주로 사용한다. 문양도 추상, 반추상 등 단순한 것들이 많고 배우기가 쉽다. 작품보다는 생활용품으로 많이 활용된다. 그래서 생활자수라고도 부른다.

◆자수, 어렵지만 매력적= 6년전 이말남 대표는 자수를 좀더 깊이있게 연구하고 대중화시키기 위해 이화자수연구회를 결성했다. 현재 1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대부분 퀼트, 뜨개질, 한복, 양재 등 바느질과 관련한 일을 해온 분들이다. 이들은 문화센터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거나 개인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천연염색, 한복, 양재 등을 두루 거쳐 자수를 하고 있는 강민정씨(46·예림공방 대표)는 “기계자수를 좀 하다가 손자수에 관심이 가서 배우게 되었다. 기계자수는 빨리 완성할 수 있는 반면 일률적이다. 손자수는 느리지만 정교하고 섬세하다. 똑같은 문양을 가지고 수를 놓아도 바느질하는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 나만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게 매력이고 아무리 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강씨의 말을 이어 다른 제자들이 여러 장점을 열거한다. 사물을 보는 힘을 키울 수 있다는 말이 특히 와닿았다. 실과 바늘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자수라고 말하는 이들은 햇빛과 바람의 방향, 세기 등에 따라 사물의 모양, 색상 등이 달라지는데 이런 미묘한 것들은 잘 관찰해야만 좋은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관찰과정과 바느질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물에 대한 관심, 애정이 생기고 세상 모든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게 된다고 했다.

◆바느질은 나를 위한 선물= 이날 모인 이들은 다양한 이유로 자수를 시작하게 됐다. 임향숙씨(63)는 5년전 암수술을 받은 뒤 자신을 중심에 둔 삶을 살기 위한 첫 시도로 자수를 시작했다고 했다.

“수술을 한 뒤 저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시어른 모시고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매달린 기억밖에 없더군요. 나를 위해 한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가족에게서 한발짝 물러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자며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바느질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전통자수를 하고 싶었는데 배울 만한 곳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을 때 지인이 이말남 선생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임씨는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하루에 6~8시간씩 바느질을 했는데 전혀 피곤하지가 않았다. 재미와 성취감이 있다보니 오히려 건강이 좋아지는 듯했다. 남편이 취미로 미술을 배우고 있는데 아내의 자수도안을 직접 그려주는 등 가족도 적극 그의 취미생활을 도와주었다. 임씨는 조만간 남편의 미술작품과 자신의 자수작품으로 부부전도 함께 열 계획이다.

오랫동안 남편의 사업을 도와주느라 개인시간을 가지지 못했다는 황선화씨(52)는 “남편 사업을 도와주는 것이 쉽지가 않다. 남편만큼 나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럴 때 자수를 하고 있으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박희정씨(63)도 “바느질을 하면 무념무상에 빠진다. 마음이 어지러우면 바느질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바느질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평화로워진다”고 했다.

◆삶의 고통을 극복하게 해= 제자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말남 대표가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늘 제 기억 속에는 바느질하고 뜨개질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바느질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수를 놓은 소품들을 만들어 친구들의 결혼, 집들이 등의 선물로 주었지요. 의외로 좋아하며 전문적으로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와중에 어린 아들이 갑자기 많이 아팠고 이때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느질에 더 매달리게 되었다. 이 대표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바느질을 하지 않았다면 자포자기의 삶을 살았을 것”이라며 “바느질 덕분에 바깥 출입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집안에서 아이만 돌보면서도 지치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주위에서 수를 잘 놓는다는 칭찬은 받았지만 자신의 실력에 크게 믿음을 가지지 않았던 그는 1998년 대구지방기능경기대회에 출전, 자수부문에서 수상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또 이 대회를 시작으로 전국의 여러 대회에 참가해 잇따라 수상함으로써 기능인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취미로 시작한 자수로 기능인의 자리에 오르자, 전문성을 다지기 위해 선배기능장들을 찾아가서 배우고 규방공예 관련 업종에 종사하기도 했다. 또 불혹을 넘긴 나이에 대학(섬유디자인학과)에 입학하여 기초를 다지는 학습에도 매진했다. 이후 그 당시 대구에서 자수학원으로 유명했던 고려자수홈패션학원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전통자수, 야생화자수·프랑스자수 등의 생활자수, 홈패션 등을 가르쳤다. 자수전문박물관인 박물관 수를 비롯해 문화센터, 여성회관 등에서도 교육했다.

◆자수 활성화시키고 싶어= 이 대표는 전통자수를 비롯한 손바느질을 좀더 많은 사람이 경험함으로써 자신이 느꼈던 행복, 성취감을 맛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화자수연구회를 만들었다. 회원들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40~50대가 중심이지만 80대 어르신도 있다. 그동안 한국공예문화예술협회 공모전 등에 참여해 입상하는 성과도 거뒀다. 대구생활문화제, 봉산문화거리 프리마켓 등에도 참여해 손바느질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회원들 상당수는 점점 사라져가는 전통자수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연구회에 들어왔다. 배우기 쉽지 않지만 어렵기 때문에 더욱 성취감이 크다는 것이 회원들이 말하는 전통자수의 매력이다. 바느질을 하면서 회원들 간의 소통을 통해 삶의 재미와 정신적 안정감을 얻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이들은 바느질을 통해 얻은 긍정의 마인드도 보여줬다. “현재는 전통자수가 사양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핸드메이드, 전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전통자수에 대한 가치도 새롭게 조명받을 것입니다. 이런 일에 이화자수연구회가 일조를 한다면 그것 또한 큰 보람일 것입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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