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미의 가족 INSIDE] 미국생활 소회 ② - 교육과 생각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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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3 07:55  |  수정 2018-09-13 07:55  |  발행일 2018-09-13 제21면
공식부터 외워 문제푸는 게 아니라
일상서 공식 구축과정 먼저 익히고
스스로 문제해결 생각의 힘 길러줘
[송유미의 가족 INSIDE] 미국생활 소회 ② - 교육과 생각의 힘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소장 겸 대구사이버대 교수

중3이었던 딸이 미국에 온 뒤 학제에 따라 고2가 되었다. 여러 과목을 힘들어 했는데 특히 물리학을 어려워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수업시간에 받은 프린트물을 주의깊게 들여다봤다.

우리 부부는 어리둥절했다. 예를 들어 놀이기구인 롤러코스터를 가지고, 기구가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또 올라가면 에너지가 어떻게 변하는가를 묻고 있었다. 즉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가 상호 전환되는 것에 대한 질문이었다. 높은 곳에 위치한 롤러코스터는 높은 위치에너지를 갖고 있는데, 궤도를 따라 떨어뜨리면 속도가 상승해 운동에너지가 증가하는 대신 위치에너지는 낮아진다. 이 과정에 얽힌 내용을 질문으로 던지면서 답변을 써내라고 했다. 위치에너지 공식이나 운동에너지 공식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공식을 알고 있는 우리 부부는 딸과 함께 문제를 풀면서 ‘참 어렵네’라고 느꼈다. 왜 공식을 먼저 가르쳐 주지 않는지, 왜 이렇게 어렵게 가르치는지가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난 후 딸아이는 “엄마, 물리학이 재밌어졌어”라고 했다. 원래 딸아이는 틀에 갇히는 것을 싫어하고, 주입식 수업방식에 저항감을 표시했던 아이였다. 스스로 선택권이 부여되고, 자기식의 생각이 반영되는 수업방식이 자기와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딸아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에서는 공식을 외우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수업시간이든 숙제든 자꾸 생각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 사회 숙제는 선생님이 준 홈페이지에 가서 세계문명에 대해 조사를 한 뒤 그 문명이 인류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어느 문명이 가장 뛰어난지를 주장하는 글을 써오라는 것이었다. 아이는 1주일 내내 울상이었지만 끝내 제출하며 뭔가 공부했다는 실감이 난다고 했다.

초등 6학년이었던 막내아들은 중1이 되었는데, 그의 학습방법은 누나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수학에서 1차 방정식을 배우는데, 흔한 ‘Y=aX+b’를 사용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선형관계(linear relationship)를 구축하는 숙제가 많았다. 사회과학 논문의 세계에서는 각종 데이터를 가지고 각종 통계프로그램을 돌리는데 결국 선형관계를 파악하는 일이다. 비록 수준은 다르다 하더라도 막내아들이 선형관계를 가지고 씨름하는 것을 보니 신선했다. 과학에서는 관측(observations)과 추론(inference)을 일상생활에서 배우도록 하고 각종 퀴즈를 통해 익히도록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단기간의 체류 경험으로 함부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숙제와 학습을 보면서 공식을 가르치기 전에 그 공식이 나오기 과정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선행시키는 것 같았다. 공식을 외우는 것보다 공식에 도달하도록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도 힘들어했지만, 더 자유롭고 더 즐거워했으며 스스로 ‘해냈다’고 표현했다.

아이들의 학습을 지켜보면서 이해하기 힘든 점은 교과서가 없다는 점이었다. 중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모두 그랬다. 오직 프린트물이 전부였다. 프린트물로 학습하고, 숙제도 프린트물로 나왔다. 이런 방식으로는 선행학습이 불가능하고 또한 불필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10여 년 동안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교포에게 물어보니, 미국은 주어진 공식을 외우고 공식에 따라 문제를 잘 푸는 것이 아니라 공식을 알기 전에 구체적인 상황에서 공식들이 어떻게 구축되고 스스로 구축할 수 있는지를 먼저 배우는 데 할애한다고 했다. 그래야 어떤 상황과 마주했을 때 그 상황에 놓인 문제를 규정하고 그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생각의 힘을 길러준다고 했다. 그 과정은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필자에게 새로운 느낌과 고민을 던져주었다.

행복한가족만들기연구소 소장 겸 대구사이버대 교수 songyoume@d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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