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구태여 문재인 정부를 까고 싶지는 않지만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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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2   |  발행일 2018-09-12 제31면   |  수정 2018-09-13
20180912

문재인정부를 구태여 까고 싶은 의도는 없지만 최근 만나본 이들은 확연히 다른 말을 하고 있다. 1년여 만에 비판적 기류가 강해졌다. 여론조사도 ‘통계의 아류’라 불신하지만,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50% 아래로 떨어졌다는 조사도 처음 나왔다.

1년여 전 그러니까 지난해 최저임금 논란이 문 정부 들어 처음 제기됐을 때쯤이다. 건설업을 하는 지인에게 물었다. 최저임금 인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의 대답은 “앞으로 아파트 값이 엄청 오를 것이다. 여유 있으면 아파트나 사둬라”고 했다. 최저임금과 아파트 값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을 것 같다고 반론하자 그는 설명했다.

“아파트 값에는 최저임금에 연루된 듯한 건설현장 노동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파트에 들어가는 타일, 벽돌, 파이프, 창문, 수도꼭지, 전기배선 등 이 모든 자재와 부속이 공장에서 나오는데 최저임금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자재 값이 올라야 하고, 임금도 줄줄이 인상되는데 무슨 재주로 지금 가격으로 아파트를 짓느냐”고 했다.

그가 비록 경제학자가 아니고 엘리트 경제관료도 아니라 논리가 정연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점은 1년이 지난 지금 정부가 온갖 투기 억제책을 퍼붓는 데도 불구하고 아파트 값은 10년 만의 폭등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며칠 전 몇몇 지역 기업인들과 자리를 했다. 대개 그렇지만 정치와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나름 목소리가 커졌다.

A기업인이 후배 기업인 B에게 물었다. “그래. 베트남 공장은 잘 돌아가느냐.” “안그래도 내일 하노이 출장갑니다. 알다시피 주인이란 사람이 한 번씩 현장에 모습을 보여야 돌아가지 않습니까.” “그래. 그때 잘 결정했지. 나도 확 짐싸고 가고 싶은데 우린 노조가 결성됐잖아. 쉽지 않아.”

내가 물었다. “남의 나라 베트남에서 기업하는 것이 그렇게 좋습니까.”

“무슨 소리예요. 여기서는 망해요. 거기는 임금이 10분의 1이고. 고생도 되고 잔소리는 안 먹혀도 이익이 나니.” 그러고 보니 동네 이웃인 한 중견 기업인이 최근 만날 때마다 근황을 물으면 “나도 베트남 갈 궁리만 하고 있어”라고 레코드처럼 반복하던 말이 떠오른다.

조금 침묵이 흐르다 누가 말을 이었다. “우린들 나가고 싶겠나. 기업인들을 뭐, 워낙 무시하니까. 무슨 죄인 취급하잖아. 솔직히 투자하고 싶은 의욕이 없다고.” “미래가 너무 불확실하니까. 불확실하면 우린 투자를 안 해. 안 하면 당장은 좋지, 수익이 더 나니까. 배당도 좋고. 미래가 문제지만.” “그러니까 쌓아 놓은 현금으로 서울 아파트나 사러 다니지….”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 1호는 알다시피 소득주도성장이다. 이어서 공정경제, 혁신성장이다. 소득주도는 경제학적으로 ‘임금주도성장’이다. 아무래도 임금을 만들어야 하는 기업주에게는 적대적으로 비쳐질 수 있다. 지난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대구 성서산업단지에서 중소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가 정부 성토장이 됐다는 것도 그런 연장이다. 현 정부가 아르바이트생, 편의점주 등 사회적 약자에 주목하는데 대한민국 일자리의 9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중소기업도 좀 돌아봐 달라고 했다.

이곳저곳에서 내년이 한국경제의 고비라고 한다. 문재인정부인들 뭣하러 경제를 망치고 싶을까. 어떡하든 소득을 올려주고→일자리를 창출하고→투자를 이끌어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경제민심’은 확연히 흔들린다. 문 정부가 애착을 갖는 저소득·사회적 약자층에서 지지율 수치가 역설적으로 내려간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경제활동의 결과물이어야 할 소득부터 먼저 올리고, 일자리와 투자를 뒤이어 이끌어내겠다는 것은 뭔가 주객이 전도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급기야 일부 대통령 핵심 참모들(정해구 대통령 직속 정책위원장, 윤종원 경제수석비서관) 사이에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오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태여 까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들 틀렸다고 한다면 이치에 맞게 수정하는 것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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