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아이는 언제 낳으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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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2 08:03  |  수정 2018-09-12 08:03  |  발행일 2018-09-12 제24면
[문화산책] 아이는 언제 낳으실 건가요?

내게는 커다란 원목 식탁이 하나 있다. 이 식탁을 보면 누군가는 친구들과 함께 음식을 가득 차려 놓고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할 수 있을테고,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기르며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식탁에서 주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일한다. 친구들을 불러 모아 음식을 하는 건 일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집에서 음식 하는 걸 힘겨워하는 편이고, 우리 집은 좀 작다. 작은 방 하나에 큰 식탁 하나가 덩그러니 있어 몇 명만 앉으면 금방 방이 꽉 차버린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 ‘다섯째 아이’와 구병모의 소설 ‘네 이웃의 식탁’에서는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커다란 식탁이 등장한다. 두 소설에서 식탁은 채워야 하는 공간이 된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식탁에 자리를 채워나간다. ‘다섯째 아이’에서는 외할머니의 노동력과 친할아버지의 경제력이 아이들을 기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네 이웃의 식탁’에서는 정부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만든 저렴한 실험 공동주택에 아이 셋을 갖는 조건으로 입주한 부부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1988년에 출판된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와 2018년에 출판된 구병모의 ‘네 이웃의 식탁’은 시대와 공간이 다를 뿐,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당사자들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이 두 소설 곳곳에서 선명히 펼쳐진다.

결혼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는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였다. 웃음을 지으며 아이는 낳을 생각이 없다는 대답을 하고 나면, 낳으면 알아서 잘 크게 되니 젊을 때 빨리 낳아 기르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나는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알아서 잘 큰다는 것엔 친정과 시댁의 도움과 적절한 경제력, 육아를 전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모든 것을 갖추기엔 내게 너무 벅찬 조건들이라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

큰 식탁에 혼자 앉아 작업할 때면 공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식탁을 채울 수 있는 아이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친정이나 시댁의 도움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르며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사회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출산을 고려해 보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고 지금의 나 역시 원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을 때 많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가족 구성원을 말할 때 엄마·아빠·아이의 구성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를 깨고, 한부모 가정이나 비혼 가정에서도 아이를 낳아 기르기 편하도록 노동환경이 변화되고 복지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되기를 바란다.

김인숙 (카페책방 ‘커피는 책이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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