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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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0   |  발행일 2018-09-10 제31면   |  수정 2018-09-10
[월요칼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배재석 논설위원

오늘(9월10일)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전 세계에서 한해 80만명의 자살자가 발생하는 현실을 알리고 예방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2003년 제정했다. 우리나라도 이에 발맞춰 매년 9월10일부터 1주일을 자살예방주간으로 지정해 다양한 자살예방 캠페인을 펼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은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좀처럼 씻지 못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노회찬 정의당 의원과 배우 조민기 등 유명인이 스스로 세상과 등졌다.

우리나라의 자살 문제는 벌써 오래전에 레드라인을 넘었다. 수년 전 복지부 차관이 내전국가의 사망자 수보다 국내 자살자 수가 더 많다고 토로했을 정도로 가히 국가적 재난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실제로 1986년 한국의 자살자 수는 3천57명에 그쳤으나 2003년 1만명을 넘어서면서 부끄러운 세계 1위가 됐다. 2016년만 보더라도 전체 자살자는 1만3천92명에 달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도 25.6명으로 2003년부터 지난 5월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다. 지난 5월 리투아니아(26.7명)가 새로 가입하면서 겨우 2위로 내려앉았다.

더욱 암울한 것은 청소년과 노인의 자살률이 높다는 점이다. 2016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53.3명으로 OECD 평균의 3배다. 주된 원인으로 극심한 노인 빈곤과 외로움 등이 꼽히지만 일자리 창출, 사회안전망 확충 등 근본 대책은 겉돌고 있다. 10대 청소년의 자살률도 2015년 4.2명에서 2016년 4.9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특히 자살한 아동청소년의 상당수가 우울증·조현병 등 정신건강학적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전문가 상담과 치료의 사각지대 방치로 골든타임을 놓치기 일쑤다.

자살은 흔히 우울증·신변비관 등에 따른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속살을 들여다보면 청년실업, 양극화, 고령화, 학교생활 고민 등 사회적 부조리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했다. 당연히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 예산을 투입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 다음으로 자살률이 높았던 일본은 2006년 자살대책기본법을 토대로 내각부에 자살종합대책회의와 자살예방종합대책센터를 설치하는 등 정부가 발 벗고 나섰다. 예산도 2013년 2천873억원에서 2016년 7천927억원, 지난해 7천633억원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최근 6년 사이 자살률이 30%나 감소했다. 핀란드도 정부 주도로 5만여명의 전문가를 투입해 심리부검사업을 진행하고 자살예방프로그램을 개발해 전국에 적용했다. 우울증 진료 의무화와 총기 등 자살에 이용될 수 있는 도구도 규제했다. 효과는 놀라웠다. 1990년 30.2명이었던 자살률이 2014년 14.1명으로 뚝 떨어졌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지난해 자살예방에 투입된 복지부 예산이 99억원 불과하다. 올해는 조금 늘어 162억원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복지부 자살예방 전담인력은 2명에 그쳤다. 이런 쥐꼬리 예산과 인력으로 효과를 기대한다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그나마 올 들어 복지부에 자살예방정책과를 신설하고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을 내놓은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문재인정부의 계획대로 2022년까지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을 17명까지 낮추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예산도 더 늘려야 한다. 대통령 직속으로 자살방지 상설기구를 만들고 상황판도 설치해 진두지휘해야 국가적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 지자체도 자살예방 계획을 세워 인력을 증원하고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물론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이 사회적 관심이다. 벼랑 끝에 서서 제발 손을 잡아달라는 사람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우리 모두가 귀를 기울이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올해 자살예방의 날 슬로건도 ‘내가 마음을 열면 우리가 삽니다’ 아니던가.

끝으로 지금 이 순간 삶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 소중한 생명의 끈을 놓으려는 이들에게 한마디 전하고 싶다.

슬픔이 그대의 삶으로 밀려와 마음을 흔들고/ 소중한 것들을 쓸어가 버릴 때면/ 그대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랜터 윌슨 스미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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