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상류사회’ 수애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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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07   |  발행일 2018-09-07 제43면   |  수정 2018-09-07
“욕망 좇는 독한 여자지만 거리낌없이 민낯 드러내는 당당함에 끌려 연기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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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피우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겐 걸리지마. 당신 인생 망치면 나까지 피곤해지니까.” 대기업 미술관 관장 자리를 노리고 있는 부관장 수연은 능력과 야망으로 가득차 있는 인물이다. 이미 많은 것을 가졌지만 상류사회 입성을 향한 그녀의 욕망과 갈증은 더 크고 강렬하다. 남편 태준(박해일)이 정치권 입성에만 성공하면 현실이 된다는 것을 알기에 수연은 태준의 외도 사실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녀에게 태준은 남편인 동시에 자신의 꿈을 현실화시킬 지렛대 역할을 해 주는 좋은 파트너일 뿐이다. 수애가 독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웃음기를 걷어낸, 일그러진 욕망을 가득 품은 속물적인 캐릭터로 말이다. ‘상류사회’는 각자의 욕망으로 얼룩진 부부가 아름답고도 추악한 상류사회로 들어가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수애는 베드신까지 감수했을 만큼 청순하고 단아했던 기존 이미지를 과감히 벗어던졌다. “욕망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고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캐릭터”라며 “흔히 볼 수 없는 계층의 모습들을 신랄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작품마다 거침없는 도전을 성공적으로 이어왔기에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극 중 수연의 모습에 기대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국가대표2’ ‘감기’ ‘심야의 FM’ ‘님은 먼 곳에’ 등 그녀는 늘 불가능한 상황과 마주했을 때 최대의 에너지를 뿜어냈다. 지향점이 달라졌을 뿐 이번에도 수애는 자신의 욕망을 향해 강단있게 달려간다. “공감보다는 연민이 들었고,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고, 치열함 속에서 자신의 연약한 내면을 감추고 살아가는 캐릭터에 대한 안쓰러움마저 있었다”는 수애의 말처럼 영화 ‘상류사회’는 돈과 성공으로 압축되는 상승욕구, 그 허상에 대한 날카로운 조롱이자 일침이다.


“대기업 미술관장 자리 노리는 야망 가득한 캐릭터
출세 위한 파트너일뿐 남편 외도도 문제 삼지않아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첫 도전…베드신까지 감행
크랭크인 앞, 수연에 대해 감독님과 심도있게 대화
실력이 전부가 아닌 환경 차이에 어쩔수 없는 상황
2등 콤플렉스 연기하며 억압·억눌러진 감정 공감”

“신인때 욕망, 연기적으로 부끄럽지 않아야한다 생각
멜로 이미지 깬다기보다 다양한 장르 연기로 확장
친구와 시간 맞추기 쉽지않아 혼자가는 여행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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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관람불가 영화 출연은 처음이다.

“그래서 첫 촬영을 시작했을 때 막연히 ‘이제껏 가보지 못한 무언가가 채워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이 영화가 지닌 피할 수 없는 색깔일 수 있다. 수애가 첫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에서 민낯을 드러내고 일그러진 욕망을 좇는 모습이 답습처럼 느껴지지 않고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졌으면 했다. 그 점이 나에겐 큰 도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시나리오보다 잘 나온 것 같아 만족스럽다.”

▶베드신까지 감수했다. 그럼에도 출연을 결정할 만큼 수연 캐릭터의 매력을 꼽는다면.

“당당함이다. 일그러진 욕망을 좇는 여자가 이렇게 당당할 수 있고, 자기 민낯을 거리낌없이 드러낼 수 있다는 게 멋지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특히 그녀에게 씌워진 굴레를 스스로 끊는 모습에선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를 반문하게 될 만큼 강렬했다. 사실 나는 ‘욕망’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며 살아왔다. 그게 당연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류사회’는 이처럼 나와 상반된 지점들이 많았다. 그 점이 흥미로웠다.”

▶수연은 속물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당신과 상반된 인물을 연기하면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없었나.

“시나리오를 읽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나도 수연이 속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수연의 옷을 입고 2등 콤플렉스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다보니 진짜 억압되고 억눌러진 감정들이 생겼다. 대사도 스크립트로 봤을 때는 무언가를 대변하는 듯한 통쾌함이 느껴졌지만, 실상은 1등이 되지 못한 콤플렉스를 아닌 척하고 연약함을 감추려는 위장이었다. 그래서 촬영하는 내내 늘 답답했다.”

▶수연은 이미 많은 것을 가졌다. 그럼에도 1등이 되기 위해 욕망을 표출하는 건 어떤 이유라고 생각했나.

“없는 자와 가진 자가 욕망을 표출하는 데 있어 차이점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 차이점은 내가 가장 궁금하게 여겼던 지점이기도 하다. 이미 많은 것을 갖고 있는데 굳이 1등이 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전사(前事)를 생각해봤다. 수연은 대학시절을 열정적으로 보냈을 친구다. 승부욕이 높은 탓에 주장이 강하고 남들보다 앞서려는 점은 있지만 나름 착실하게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실천하며 살아왔을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런 수연이 몇백 억원을 우습게 생각하고, 제이슨(박성훈)처럼 예술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젊은 친구가 돈 많은 부모를 둔 덕에 그녀가 그토록 갈망했던 미술관 관장자리를 손쉽게 차지한다. 그런 환경에 살다보니 실력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속물 근성이 생겨나고 욕망은 더 왜곡됐을 것이다. 감독님이 그러셨다. ‘울어도 2, 3등이 울지 꼴찌는 절대 울지 않는다’고. 그 말이 맞다. 조금만 잘하면 1등이 될 수 있었는데 하는 안타까움은 언제나 2, 3등에게 있다. ‘상류사회’는 바로 그런 2, 3등의 이야기다.”

▶배우가 성장을 하는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신인 때의 욕망이라면 바로 지금의 자리였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의 욕망은 뭔가.

“신인 때의 나의 욕망은 ‘더 큰 무언가가 될 거야’보다는 지금 이 순간이 부끄럽지 않아야 된다는 점이었다. 첫 주연작인 ‘러브레터’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하자면 비록 대타였지만 신인인 내가 주연으로 캐스팅됐으니 굉장히 운이 좋았다. 덕분에 부담감이 상당했다. 감독님은 언제든 주연 자리가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을 늘상 하셨고, 그때마다 압박감을 느낀 나는 여기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연기적으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당시 가장 큰 욕망이었다. 내가 얼마나 인기를 얻고, 언제까지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 지금은 다 좋게 평가를 해주시니 감사할 다름이다. 지금의 욕망을 물어보셨는데, 매 순간 매 시기 달라지는 것 같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욕망은 ‘상류사회’가 잘되는 거다. 그리고 동시에 ‘잘했다’ ‘수애스럽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 욕망은 충분히 채워질 것 같다.”

▶변혁 감독은 감각적이고 예리하게 인간의 욕망과 심리를 꿰뚫는 감독 중 하나다. 그와의 작업은 어땠나.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 내가 먼저 감독님에게 미팅을 제안했다. 5년 전부터 기획을 했을 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은 물론 수연 캐릭터에 대한 애정, 더 나아가 수애에 대한 애정이 높다는 것을 느꼈다. 거기서 확신이 생겼다. 내가 소통을 중시하는 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무리 매력적인 작품이라도 감독과 배우, 배우 간의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만들어지는 과정이 힘들고 결과물 역시 좋지 않다. 솔직히 이 작품은 나에게 도전이고 가보지 못한 지점이기에 확신이 없다면 출연이 쉽지 않았는데 감독님도 소통의 중요성을 너무 잘 알고 계셨다. 크랭크인을 앞두고 감독님과 많은 미팅을 가지면서 세부적인 내용을 심도있게 나눌 수 있었는데 그 시간이 캐릭터 완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애초 설정과 달리 당신의 의견이 반영된 부분이 있다면 뭔가.

“우선 헤어스타일이다. 감독님은 나의 긴머리를 좋아했는데 그러면 여성성이 너무 많이 부각될 것 같았다. 수연은 늘 상류사회를 동경하고 그것에 다다르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이 있는 전문직 여성이다. 긴 머리보다는 단발로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감독님이 선뜻 내 의견에 동의를 하지 않았지만 일단 커트를 한 후 아니다 싶으면 머리를 다시 붙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해일 선배와의 부부관계 설정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원작에는 지금보다 더 날이 서 있었다. 옥신각신, 티격태격이 아니라 불꽃튀는 부부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수연은 자기 속내를 남편에게 다 드러내고, 한 방에서 각자 싱글베드를 사용한다. 부부지만 하나의 목표를 향해 협력해 나가는 파트너의 설정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멜로와 가장 어울릴 것 같은 배우인데 필모를 보면 장르가 다양하다.

“신인 때 눈물이 잘 어울릴 것 같은 배우라는 얘기를 하도 자주 들어서 ‘아니에요. 나도 웃길 수 있습니다’라고 도전을 한 게 드라마 ‘9회말 2아웃’(2007)이다. 또 ‘내 안에도 강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테나 : 전쟁의 여신’(2011)에 출연했다. 매번 그런 도전을 해왔다. 멜로도 마찬가지다. 워낙 내가 좋아하는 장르이긴 하지만 그 안에만 갇히고 싶지 않아서 매번 다양한 선택을 했다. 그건 내 연기적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작품도 기존 이미지를 깨고 싶어서 도전한 건가.

“깨고 싶지는 않고 확장하고 싶었다. 내가 가고 싶은 지점은 배우로서의 연기적 확장, 다양성 측면에서의 장르적 확장이다. 더 많이 확장해 나가고 싶다.”

▶혼자 여행하는 걸 즐겨한다고 들었다.

“일부러 혼자 여행을 다니는 건 아닌데 친구들이 직장인이다보니 따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서른 살 때부터 혼자 여행을 하게 됐는데 이제 익숙해졌다. 걷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맛집보다는 분위기와 정취가 좋은 곳을 찾는 편이다. 지난 6월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다녀왔다. 다른 나라들보다 한국 관광객이 적어서 혼자 여행하기가 좋았다. 그래도 항상 모자를 써야 하고 마음껏 즐길 수 없다는 점이 불편하긴 했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은 늘 즐겁고 행복하다.”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다. 차기작도 미정이다. 그보다는 욕망을 좇는 캐릭터를 막 끝냈으니 당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평정을 찾고 싶다. 책을 읽거나 요리를 하거나, 또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는 나만의 소소한 행복을 추구할 생각이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김현수 dada24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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