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수채화가 고찬용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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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07   |  발행일 2018-09-07 제41면   |  수정 2018-09-07
“50년간 수채화 작업 고집, 민감한 재료 특성·기법 연구…제자·작가들에 널리 알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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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넘게 수채화를 고집해온 고찬용 화가가 그의 작업실에서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수채화가 고찬용(69)의 화실에 들어서니 여러 풍경이 먼저 반긴다. 바위 틈 사이에 조용히 앉아있거나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외롭게 앉아 있는 새, 석양이 지는 가을의 호수 풍경, 개울가에 홀로 앉아 있는 아이 등이 처음 들어와서 낯설게 느껴지는 그 공간을 금세 친근감 넘치게 만든다. 고찬용의 풍경화 사이사이에는 그의 제자들이 그린 또 다른 풍경화들이 활기를 더해주고 있다.

이들 그림만 봐서는 수채화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수채화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으면 중후한 멋을 주는 유화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흔히 수채화 하면 떠오르는 가벼움을 넘어서 마치 물감의 마티에르가 살아 숨쉬는 듯한 유화의 깊이감을 주는 작업은 그동안 끊임없이 수채화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원로화가로서의 면모를 느끼게 한다.

고찬용은 지역을 넘어서 전국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수채화가다. 대학시절 다양한 장르를 접해본 뒤 수채화에 빠져 40년 넘게 수채화를 고집, 한국을 대표하는 수채화가의 자리에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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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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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혼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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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용 화가의 작업실에 있는 다양한 그림도구들. 수채화를 그리면서 재료 및 표현기법 연구에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써왔는지 잘 보여준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수채화가 저평가되고 있는 듯합니다. 수채화가로서 여러 생각이 들 듯합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수채화를 그린 것까지 포함하면 수채화를 다룬 지 50년이 넘었지요. 서양화에서 유화나 아크릴화가 대세이다보니 수채화는 한물간 것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대구는 한때 수채화의 고장이라 할 정도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다른 도시에 비해 수채화 발전이 빨리 이뤄진 만큼 그 쇠퇴기도 빨리 오고 있지만 대구가 가진 저력이 있는 만큼 앞으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래도 수채화가로서 아쉬움은 있을 듯합니다.

“저는 젊은 시절부터 계속 수채화 하나만을 고집하고 있지만 요즘 젊은 작가들은 유화와 수채화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채화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서울, 부산, 인천 등에서는 수채화가 조명받고 있는데 지역에서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지역에서 수채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창작활동을 통해 수채화의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후학 양성 등에서 나름 노력해왔습니다. 특히 한국수채화협회 부이사장, 대구수채화협회 고문 등 여러 수채화협회의 임원으로 활동해 제자, 후배 등을 전국 수채화 전시에 많이 내보냄으로써 창작 역량을 강화하고 작가들을 알리는 데도 노력을 했습니다. 또 2000년대 중반에는 대구수채화아카데미를 만들어 전국 화가들을 초대해 전시는 물론 세미나를 열어 수채화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지역 한때 수채화 고장 명성…쇠퇴기도 빨라져
대구수채화아카데미 전국화가 초대전·세미나
후학양성·후배 창작 역량 강화 등 활성화 활동

유화와 달리 붓질·색감 실수땐 되돌릴 수 없어
날씨·계절에도 영향…물감·물 혼합비율 깨쳐야
고도의 집중력으로 표현…작업후 성취감은 커

수십년간 색채 연구…부드러운 파스텔톤 찾아
수용성 재료 이해따라 그림 완성도에도 영향
끝없는 시행착오…아직도 연구·실험 진행 중
나무·꽃 자연의 매력…따스한 시선 녹아들어
한국적인것 찾는 과정, 창작열 일으키는 원동력



▶이런 활동을 한데는 전업작가이자 교육자로서 활동한 것이 바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화가로 발을 내디디면서부터 수채화를 그려왔기 때문에 수채화에 대한 여러 기법을 연구, 개발했습니다. 이런 것을 좀더 많은 작가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제자들을 길러내기에 이르렀지요. 또 꽤 오랫동안 동국대, 대구한의대에 출강해 수채화 강의도 했습니다. 수채화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창작활동도 중요하지만 이를 널리 확대시키는 교육도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수채화를 고집하는 것은 그만큼 수채화가 매력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수채화가 저의 성격은 물론 한국 전통의 정서와도 잘 맞기 때문에 깊이 빠져든 듯합니다. 수채화는 잘못된 것을 수용하지 못합니다. 유화는 실수가 있으면 물감을 덧칠함으로써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수채화는 물감의 색이나 붓질에서 실수를 범할 경우 이를 되돌릴 방법이 없습니다. 실수를 하면 백지상태로 되돌아가 다시 그리는 수밖에 없지요. 또 계절, 날씨에 따라 물감과 물의 혼합 비율이 다른데 이것은 스스로 체득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싫으면 수채화를 그리기 힘들지만 저는 이런 것에서 오히려 성취감을 느낍니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제가 의도한 바를 완벽하게 표현했을 때 오는 즐거움이 큽니다.”

▶한국인의 정서와도 잘 맞다고 하셨는데요.

“수채화는 먹으로 그림을 그리는 한국전통그림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표현기법이 까다로운 것은 물론 유화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민감한 재료의 특성을 잘 익히고 많이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한국화나 수채화 모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합니다. 그렇다보니 중도포기자도 많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새로운 재미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물론 그리고 난 뒤의 이미지도 한국적 정서, 체질과 잘 맞아 떨어지지요.”

▶고찬용 하면 중후한 느낌의 수채화를 그리는 작가로 이름이 높습니다.

“수십년간 그림을 그리면서 끊임없이 색 연구를 해왔습니다. 유화와 같은 중후한 느낌을 주는 색을 개발하려 한 것이지요. 많은 사람이 수채화에는 흰색과 검은색을 쓰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아직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당량을 혼합하면 기존의 수채화와는 다른 느낌의 색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나오는데 이런 새로운 색, 자기만의 색을 찾는 것이 수채화가의 또 다른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저는 가벼움을 극복하고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색을 찾게 되었습니다.”

▶재료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가 고찬용만의 그림을 완성한 듯합니다.

“수채화는 아주 민감한 그림입니다. 물감과 물의 절묘한 혼합을 통해 완성되는데 수용성 재료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작업을 하느냐가 그림의 완성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물감의 재료에 따라 물감 알맹이 하나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색을 혼합해서 쓸때 제일 무거운 게 물에 먼저 가라앉고 가벼운 게 나중에 가라앉지요. 눈으로 쉽게 관찰되지 않지만 물감을 사용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물을 추가한다든지, 소금을 쓴다든지, 건조하는 속도를 다르게 하면 미묘한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제 그림에서 이같은 부분이 잘 드러나는 것은 하늘과 산의 경계지점, 능선의 표현 등에서 입니다. 끝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나만의 기법을 만들고 있지만 아직도 연구와 실험은 진행 중입니다.”

▶고독을 즐기며 산다고 하셨는데 그림에서도 그런 기운이 느껴집니다.

“제 그림을 가만히 보면 새, 사람 등이 홀로 있거나 아예 없는 그림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혼자 작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현재 제자들이 일주일에 이틀 그림을 배우러 오는데 이 날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혼자 작업을 합니다. 꼭 필요한 용건 외에는 여러 사람과 만나는 것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선·후배, 친구 등을 만나면서 많이 즐기고 다녔습니다. 그런 와중에 어느 순간 창작은 고독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사람들과 어울림을 통한 즐거움도 컸지만 내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홀로 지내는 시간을 늘려나갔고 지금은 홀로 있을 때 가장 편안합니다. 그런 내 마음이 그림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겠지요.”

▶그림에서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려는 시선도 전해집니다.

“저는 관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으로 나가서 그림을 그리라 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야외에 나가서 그리라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깊이 관찰하고 거기서 오는 느낌, 변화 등을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라 생각됩니다. 이름 없고 못생긴 나무, 꽃이라도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그만의 특성이 있고 매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주의 원리만큼 신비로운 일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연에 대한 따스한 시선, 존경심 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화가가 좋은 그림을 그리려면 3가지가 필요합니다. 잘 보고 잘 듣는 일, 바로 안목이 첫째입니다. 그리고 작가의 의식이 필요한데 이 의식은 작가의 안목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이 필요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손재주인데 이 모든 것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수채화가 서양에서 건너왔지만 고찬용의 작품은 한국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저의 그림에 대해 ‘한국의 풍경’이 아니라 ‘한국적인 풍경’이라고 말하더군요. 한국적이라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작가의 느낌을 뜻합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감흥을 일으킨 풍경을 그리되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저만의 감성으로 재해석해 작업합니다. 그렇다보니 한국적 미감이 더욱 강조된 풍경이 나오고 이것이 그리움, 애잔함, 쓸쓸함, 애틋함 등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적인 것에 몰두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60대에 들어서 제 작업세계를 뒤돌아보며 제가 하는 작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있게 묻게 되었습니다. 한국사람으로서 서양에서 들어온 재료로 그린다는 점에 대해서 생각한 것이지요. 한국적인 것이 ‘딱 이거다’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새로운 창작열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그것을 화두로 삼아 작업해 나갈 계획입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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