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환의 별난집 별난맛] 이색밥집

  •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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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07   |  발행일 2018-09-07 제38면   |  수정 2018-09-07
심신 위로하는 ‘밥심’…집밥 같은 따뜻한 한끼
밥 한끼. 인간관계의 출발점이다. 말로 잘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를 술술 잘 풀리게 만들어 주는 게 음식이다. 정신적 고통이 있을 때 음식으로 돌파구를 찾기도 한다. 음식은 인간관계의 중요한 고리다. 누군가 지쳐 있고 힘들어 할 때 소중한 추억을 되살려준다.

몸은 정신적 공허를 공복감으로 착각한다. 포만감을 정신적 충만감으로 혼동하기도 한다. 요즘 같은 풍요의 시대. 식사, 이건 만족을 위한 도구다. 만족은 단순히 비싼 재료와 황홀한 맛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먹는 방식과 먹는 상대가 누구인가에 따라 그 만족감은 매순간 달라진다. 음식은 생존의 원천이다. 고독한 영혼이나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해주는 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한 그릇의 밥을 통해 슬픔과 고통을 극복하기도 한다.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 나오는 ‘밥심’이 슬픔의 흔적조차 말끔히 없애 주기도 한다. 이야기가 있는 밥상이 있어 모시고 가기 좋은 이색 밥집을 찾아가 본다.

▶정담
엄마가 차려주는 생일밥상 같은 메뉴
돼지갈비찜·코다리찜 저녁안주로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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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담’의  코다리찜.
60~70대 멋쟁이 실버들이 유달리 많이 찾는 집이다. 특히 젊은 시절 커리어 우먼으로 살던 어르신들이 한 끼 식사를 겸한 만남의 장소로 인기가 좋다. 변하지 않는 정이 있는 친정엄마가 차려주는 생일밥상 같은 추억의 음식들이 메뉴라인을 형성한다. 익숙한 것 같지만 대부분 잔손이 많이 가는 반찬이 인상적이다.

한상 차림(1만1천원)을 훑어본다. 요즘은 금방 볶아낸 잡채와 제육볶음을 비롯, 7가지의 쌈 옆에 2가지 쌈장이 매칭된다. 심심하게 염장한 가시오가피·쑥·다래순에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 미역국, 굴비 등 20여가지의 반찬, 마지막엔 수수부꾸미와 호박식혜까지 후식으로 가세한다.

주인은 손님들이 행복해하며 식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식당을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은 식구도 적고 일일이 집에서 해 먹는다는 게 무척 부담스럽다. 그래서 외식에 많이 의존하게 된다. 매번 뭘 먹어야 될지 고민이 된다. 갈수록 옛날 집밥이 그리울 때가 많다. 그런 사람에게 이 집을 강추해주고 싶다.

이 집은 새롭고 화려한 밥상은 아니다. 하지만 푸근한 정이 그릇마다 가득 담겨 있다. 저녁에는 술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그래서 애주가들이 많이 북적댄다. 안주로 제격인 메뉴는 착한 가격의 뼈째 붙은 돼지갈비찜이 딱이란 생각이다. 돼지갈비찜은 적당한 단맛과 기분 좋은 짠맛, 그리고 매콤함이 잘 섞여 있다. 차진 육질과 부들부들함이 식욕을 돋운다.

이밖에 가오리무침회·돼지고기수육·코다리찜도 안주로 인기가 있다. 명태를 반건조시킨 통마리 코다리를 달착지근하고 매콤한 양념에 자작하게 졸여 낸다. 살점은 촉촉하고 부드럽다. 하얀 속살까지 간이 잘 스며들어가 있다. 잘 익은 토실토실한 감자는 맵싸한 코다리찜과 균형을 잘 이룬다. 대구 중구 관덕정길 13-16. (053)253-5263

▶신팔달시장 할매식당
뚝배기 된장찌개와 매일 바뀌는 반찬
30년간 한자리…정감어린 집밥 손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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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팔달시장 할매식당’백반.
밥맛의 내공을 실감케 해주는 식당이다. 방금 퍼 담은 것 같은 고슬고슬한 밥이 군침을 돌게 한다. 미리 담아 놓은 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집은 메뉴판이 따로 없다. 오늘은 뭘 먹지, 메뉴 선택을 잘 할 수 없을 때 가기에 딱 좋은 데다. 여긴 달랑 백반 한 가지만 있다. 뚝배기에 담아내는 된장찌개는 묵힌 된장으로 끓여 더없이 구수하다. 특별할 것 같은 반찬도 없다. 그래도 식탁은 충일하다. 매일 바뀌는 10여가지 반찬은 집에서 먹는 것처럼 다정다감하다. 평범해 보이지만 기본에 충실한 맛이다. 직접 손맛을 더한 것들이다. 국은 그날그날 다르다. 소박한 상차림이지만 이 집만의 개성이 묻어 있다. 한 토막 내어주는 고등어. 굽는 냄새만 맡아도 고소하다. 소금간을 하는 간잽이가 따로 있다. 생물 고등어를 짭조름하게 간을 한다. 옛날 방식 그대로 밀가루를 슬쩍 묻혀 굽는다. 그래서 껍질부분은 유달리 고소하다. 속살에는 촉촉하게 기름기가 배여 있다. 부드러움이 입안을 감싼다.

무심한 듯 손님을 대하는 것 같지만 30여년간 자리를 지켜온 주인의 손맛. 그걸 단돈 4천원만 내면 맛볼 수 있다. 구수하고 푸근한 고향 엄마의 손맛이 담겨 있다.

이집 음식은 혀끝에서 맛을 내는 음식이 아니다. 먹고 난 후의 마음 한 구석에서 우러나는 맛들이다. 주 중 점심 때는 인근 직장인을 위한 한 끼 식사 장소로도 소문이 났다. 쉬는 날이 없다. 매일 오전 6시30분 문을 열어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다. 아침과 점심만 낸다. 대구 도시철도 3호선 팔달시장역 팔달신시장 메인 통로 중간쯤에서 의성상회를 끼고 좌회전하면 좌측 정구지 골목 중간에 앉아 있다. (053)352-7191

▶육무 샤브
개인 인덕션…혼밥해도 부담없는 공간
소고기·돼지고기·상추샤브 깔끔한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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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무샤브


누구하고 식사 약속을 잡기가 쉽지 않다. 누구와 함께 식사를 하려면 나만의 개성있는 메뉴선택에도 장애가 생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나홀로 외식(혼밥)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막상 나서면 혼자 즐길 만한 식당 또한 흔치 않다. 테이블에 다른 사람과 합석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 1인을 위한 메뉴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육무 샤브’는 개인 인덕션 레인지가 있는 샤브요리점이다. 자그마한 공간이지만 입식과 좌식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다. 혼밥을 해도 부담 없는 프라이빗한 공간, 그리고 혼밥 메뉴가 있다. 샤브요리의 특성상 고기나 채소의 익힘 정도를 취향에 따라 달리한다. 이 집은 각자 전골냄비로 요리해서 먹는다. 그만큼 깔끔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소고기·돼지고기·상추샤브가 있다. 샤브샤브를 먹을 때는 고기를 너무 오래 익히지 말아야 한다. 핏기가 없을 정도로 살랑 흔들어준 뒤 이내 먹으면 된다. 고기를 오래 익히면 육류 고유의 성분과 영양분이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육질이 질겨진다. 고기를 먼저 건져 먹고 난 다음에 채소를 먹는다. 그러면 육즙 성분이 국물에 흘러들어가 채소의 맛을 한층 끌어올린다.

인기 메뉴인 소고기상추샤브샤브(1만2천500원). 살짝 익힌 고기를 칠리소스에 적셔 쌈 싸 먹는다.

마무리는 묵은지 들어간 갱시기 같은 국수로 한다. 남구 대명로 83 드림팰리스 2층. (053)621-6090

▶칠성시장 영천보리밥
20여가지 밑반찬…4천원 장터뷔페식
갓 버무린 채소와 나물류 양푼에 비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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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시장 영천보리밥

북구 칠성동 칠성시장 북쪽 채소전 안에 명물 보리밥집이 있다. 영천보리밥이다. 단돈 4천원짜리 장터뷔페식 보리밥집이다. 스테인리스 테이블 위에 짜지도 싱겁지도 않는 갓 버무린 채소, 나물류 등 20여가지 밑반찬이 질서정연하게 차려져 있다. 식성에 따라 반찬을 보리밥에 올려 비벼 먹으면 된다. 하절기엔 구수한 숭늉 같은 오이냉국이 목넘김을 도와준다. 찬바람이 불면 비지찌개가 등장한다. 강된장과 계란찜은 따로 내준다.

길쭉한 나무의자. 처음 보는 사이지만 손님들은 서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훈훈하게 식사를 해야만 하는 곳이다. 그래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게 이 집만의 정서다. 어느 반찬 하나, 세련된 구석이라고는 없다. 그저 풋풋하고 순박하게 차린 엄마표 반찬이다.

식재료에 42년 경력의 주인의 따뜻한 심성과 정성어린 손길이 그대로 묻어 있다. 그날그날 시장에서 구입한 식재료로 만든 게 대부분이다. 비빔용 채소와 나물, 그리고 반찬은 매일 바뀐다. 그래서 매일 와도 지겹지가 않다. 보리밥과 쌀밥은 선택해 먹을 수 있다. 보통은 반반 섞어 내준다. 비벼먹기 좋게 양푼에 담아낸다. 취향에 따라 나만의 일품요리 비빔밥을 직접 만들어 먹는 재미가 푸짐하다. 무생채, 상추겉절이, 콩나물무침 등에 고추장과 강된장 한 숟가락, 거기에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쓱싹 비빈다. 겉절이의 풋내를 느끼는 순간 한 그릇이 뚝딱 비워진다. 나물반찬은 대부분 금방 무쳐낸 것들이다. 나물마다 고유의 향과 맛이 잘 살아 있다. 맨밥과 같이 먹어도 나물별 아삭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명색이 뷔페인지라 밥과 반찬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 첫째·셋째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7시에 문을 연다. 그날 준비한 밥이 떨어지는 오후 5시쯤 문을 닫는다. 010-9512-9980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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