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시장‘순대국밥’ 흑돼지촌·배시내·산채정식촌‘연탄돼지불고기 3인방’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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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07   |  발행일 2018-09-07 제35면   |  수정 2018-09-07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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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황금시장 명물인 지례순대로 만든 순대국밥. ② 토박이들이 좋아하는 양념이 가미된 단족무침. ③ 지례흑돼지 가업을 잇고 있는 삼거리식당은 두툼하게 써는 게 특징이다. 대리석 식탁 연탄 화구가 인상적이다. 양념하지 않은 생삼겹과 고춧가루 양념이 발려진 양념삼겹살이 상반된 맛을 보여준다. ④ 배시내 연탄 불고기는 지례보다 뒤에 연탄석쇠불고기를 내는데 지례흑돼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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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감문면 태촌리 ‘간판없는커피집’의 바리스타 박휘재의 걸작인 놋그릇에 담겨져 나온 사약커피. ⑥ 김천 최고 핫플레이스 김밥집인 ‘오단이김밥’. ⑦ 1960년 자갈밭에 첫 포도묘목을 심으며 국내 1세대 포도전도사로 우뚝 선 올해 구순의 김성순옹이 애지중지하는 34년생 고목형 포도나무. ⑧ 김천 갱시기 명소로 알려진 직지사 근처 카페 ‘기찻길옆오막살이’의 별미인 한약재가 가미된 갱시기. ⑨ 30여가지 온갖 산채가 총출동한 ‘청산고을’ 산채정식 한상차림.

지명에는 토박이의 숨결이 숨겨져 있다. 김천(金泉)도 그렇다. 김천의 ‘천’ 자는 어딜 의미할까. 남산동 과하천 곁에 있던 금광을 의미한다. 금광 옆 과하천은 ‘금광천’이었다. 그 귀한 과하천 물로 담근 지역 토속주가 바로 김천명주로 불리는 ‘과하주(過夏酒)’. 조선조 그 언저리에 역이 생긴다. 그 역 이름이 바로 김천역이다. 거기서 김천이 파생된다. 그 역을 포함한 고을 이름은 ‘김산(金山)’. 이 김산의 별명이 바로 ‘금릉(金陵)’. 그럼 금릉은 어디서 유래된 걸까. 삼한시대 소읍으로 불리다가 신라에 복속된 감문국의 한 임금으로 추정되는 금효왕의 왕릉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8년 서문시장 다음으로 전국 둘째 규모를 자랑했던 김천장. 랭킹이 상당해 전국 5대 시장이 된다. 당시 용두동 우시장을 거점으로 전국을 주름잡은 우피(소껍질) 거상이었던 김기진은 ‘우피거상’으로 김천 벼락부자로 등극한다. 한국 우마차의 신기원을 만든 삼화철공소도 김천장을 거점으로 김천을 전국에 붐업시켰다. 방짜유기도 양금동을 축으로 발전한다. 1960년대를 끝으로 유기 특수는 추락했지만 김천고려방짜유기 등이 1990년대 새로운 유기 수요를 기반으로 김천유기의 전통을 사수하고 있다.

벼농사에 없어선 안될 혁신적 탈곡기도 광복 직후 김천에서 생산된다. 바로 ‘호롱구’로 불렸던, 발로 원통을 돌려 탈곡하는 족답식 탈곡기다. 명맥을 이은 기업이 바로 1945년 모암동에서 ‘진영철공’으로 출발한 진영종합기계. 하지만 6·25전쟁 때 김천은 절망한다. 쉽게 인민군 수중에 들어간 김천은 인민군 보급품 집합소였다. 연합군이 가만둘 리 없었다. 낙동강 왜관철교 일대 융단폭격 때 직지사 등 관내 시설물의 80%가 피폭된다.

19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됐을 때 김천에 한국 첫 고속도로 휴게소인 추풍령휴게소가 생겨난다. 특히 1982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기 전까지 여긴 심야 주당들의 해방구였다. 그래서 휴게소에 국내 고속도로 첫 여관이 들어선다. 한때 박정희 대통령 영빈관이었던 이 휴게소 VIP룸은 이젠 편의점 물품 창고로 변해버렸다. 세월이란 그런 것이다.

들깨 가득한 거칠고 굵직한 맛 순대국
족발과 두 가지 취급 지례면 ‘지례순대’
두꺼운 대창 속 돼지피·양파 채워져
단족살·참기름·청양 무친 ‘단족무침’

연탄석쇠돼지불고기
특제고추장에 초벌해 내는 삼거리식당
지례보다 얇은 고기로 내는 ‘배시내’
간장·고추장양념 두버전 산채정식촌

고구마·감자 굵직하게 썬 부항갱시기
덕천포도원‘고목형 포도나무’순례지
커피잔 대신 놋그릇에 내는 사약커피
어묵·단무지·오이만 넣는 꼬마 김밥


◆지례 흙돼지 순대국밥

흥미롭게도 김천에선 제주도처럼 소고깃국이 그다지 인기가 없다. 다들 돼지국밥을 특화시킨 ‘피순대국’에 쓰러진다. 그 전통을 맛보려면 김천장 전통을 이어받고 1953년 공설시장을 거쳐 지금에 이른 황금시장에 가야 된다. 1922년 감천에 제방이 축조되기 전까지 김천장은 백사장에 형성됐다. 차양을 치고 그 그늘에서 거래가 이뤄졌다. 이후 황금동 주변에 노점상이 무질서하게 들어서자 김천시가 공설시장을 철길 남쪽 황금동에 만든다. 이후 피란민촌에 의해 조성됐던 ‘평화시장’, 의류 중심 ‘중앙시장’과 함께 황금시장은 김천의 맏형 장터 구실을 한다. 한창 때 황금시장에는 순대국밥집이 15개 있었다. 지금은 지례순대, 수진, 보라미, 장군, 황금, 민들레, 천지 등 10개 업소가 있다.

대를 잇고 있는 ‘지례순대’의 이영하 사장. 18년 구력의 그는 고향 지례면에서 흑돼지가 어떤 방식으로 요리되는가를 보면서 자랐다. 이 사장은 족발과 순대국밥을 동시에 취급한다. 여기 순대국의 맛은 다소 거칠고 굵직하다. 전남 광주의 별미인 오리탕처럼 들깨가 많이 들어가는 것도 한 특징이다. 또한 순대 속을 채울 때 당면 등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제주 전통순대 수애처럼 돼지피·양파 정도만 넣는다. 대창 두께도 다른 데 비해 유달리 두껍다. 이 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안주가 있다. 뜯어낸 돼지 단족살에 참기름, 마늘, 청양고추, 후추 등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낸 ‘단족무침’이다.

예전 어른들은 순대국에서 구린내가 나는 걸 좋아했다. 이젠 다들 냄새를 싫어한다. 그래도 추억의 맛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요즘은 냄새가 덜나게 하려고 대창을 뒤집어 순대를 만들지만 이 집은 원형을 가급적 유지하려고 한다. 이 시장에 와야 먹을 수 있는 김천식 양념이 있다. 고추를 다데기처럼 잘게 다져놓은 것인데 이걸 토박이들은 ‘고추장물’이라 한다. 가는 멸치를 넣고 볶으면 추억의 도시락 반찬 ‘멸치고추조림’이 된다.

중앙시장에 가면 특화된 맛을 내는 냉면집이 있다. 대를 이어오는 냉면 맛집인 ‘오뚜기식당’이다. 소뼈로 우려낸 반투명 육수가 깔끔한 맛을 풍긴다. 양념한 명태를 올린 명태회냉면도 강추.

◆연탄돼지불고기

김천의 연탄석쇠불고기는 대구 북성로불고기를 닮았다. 세 곳에 타운을 형성했다. 가장 활성화된 곳은 지례면 교리 흑돼지촌. 원조식당은 ‘삼거리식당’이다. 배종술·장영순 부부의 가업이 14년 전 아들 명주씨한테로 이어진다. 흑돼지 껍질처럼 장방형으로 생긴 1.5m 검정 대리석 식탁이 인상적이다. 특이하게 거기에 연탄불을 넣을 수 있는 화구를 뚫어놓았다. 생삼겹살과 양념 두 종류가 있다. 삼겹살, 등심, 앞다리, 뒷다리, 목살 등을 특제 고추장로 버무려 화덕에서 초벌한 뒤 손님 석쇠에 올려준다.

광복 이후 흰색의 요크셔와 랜드레이스, 갈색의 듀록 등이 사육된다. 1960년대 9천여 농가에서 1만3천여 마리를 길렀다. 대다수 농가가 돼지를 길렀고 자가 도축했다. 1993년부터 지례흑돼지가 복원된다.

지례흑돼지촌 다음으로 활성화된 곳은 감문면 태촌리 ‘배시내’로 불리는 한적한 시골길. 10여 업소가 모여 있다. 여긴 지례보다 고기가 얇다. 그리고 직지사 산채정식촌에도 집집마다 연탄불고기를 낸다. 간장과 고추장양념, 두 버전이 있다. 단연 지례흑돼지가 가장 깊은 울림을 준다.

직지사 산채정식촌은 1976년 당시 직지사 녹원 주지 스님의 주도하에 현재 주차장 자리로 대거 이전된다. 산문 앞까지 진출한 상점은 대다수 기념품 가게다. 이밖에 잡화점, 술집, 직지, 백조 등 여관 등도 뒤섞여 있었다. 호경기 땐 산채집이 50여 개. 이젠 산채정식만의 강점이 사라지는 바람에 업소도 30여 개로 줄어들었다. 1세대 업소는 대전식당, 부일식당, 청산고을 정도. 청산고을은 원래 기념품을 팔던 평화상회에서 출발했다가 1990년대 산채에 손을 댔다. 제대로 독성을 빼야 하는 싸리버섯요리도 맛 볼 수 있다. 손이 많이 가는 고추부각, 돼지불고기를 닮은 더덕구이 등이 이 집의 관록을 보여준다.

◆숨은 별식

부항면은 ‘김천갱시기의 본가’로 알려져 있다. 2013년 준공된 부항댐 때문에 실향민이 많이 발생했다. 황금성당 골목으로 이주해 유촌떡방앗간을 연 이달우·이위남 부부. 부항면 유촌 장터에서 방앗간을 하다가 시내로 이주했다.

부항갱시기는 대구식과 달리 뻑뻑한 느낌이 난다. 고구마·감자를 굵직하게 썰어 넣은 게 특징. 달콤한 고구마갱시기는 여성들이 즐긴다. 여기 갱시기에는 참기름이 안 들어간다. 퓨전 갱시기 집도 생겨났다. 대항면 황악로 김천 직지사 입구에 있는 ‘기찻길옆오막살이’. 20년 이상 구력의 갱시기 전문점으로 멸치 육수를 낼때 한약재도 섞는 게 특징이다.

영천과 영동 이전에 김천이 포도고장으로 더 유명했다. 현재 김천시 전체가 포도특구다. 봉산면이 특히 강세를 보인다. 김천포도를 얘기하자면 봉산면 덕천포도원 대표 김성순옹(90)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구도자 같다. 1960년 감천변 자갈밭에서 포도농사를 시작했다. 1970년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1999년부터 와인을 생산한다. 그 포도원에 수령 34년의 고목형 포도나무가 있다. 덩굴이 워낙 멀리 뻗어 지름이 15m. 현재 이 포도원은 유기농 관계자, 생태주의자, 평화운동가, 동학연구자 등이 수시로 다녀간다. 일종의 ‘순례지’.

색깔 포도의 신지평을 연 못골농원 이인배도 30년차 ‘포도 박사’로 불린다. 그가 캠프 1950에서 맛보게 해준 애플망고포도는 솜사탕 같았다. 증산면 수도산 와이너리 이석순 대표는 산머루와인을 특화시켰다.

자두 역시 김천이다. 전국 생산량의 20%를 차지한다. 김천대에서 자두와인을 개발해 보급했다.

그 포도·자두와인과 호흡을 같이하는 별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두 남자의 커피가 있다. 감문면 태촌리 불고기촌 초입에 자리한 박휘재 바리스타가 지키고 있는 ‘간판없는커피집’, 그리고 김천시와 영동권의 경계에 있는 김대호 시인이 운영하는 ‘시남커피숍’. 영주 출신 박휘재는 별별 직업 다 섭렵한 뒤 죽는 심정으로 간판없는 커피집을 열었다. ‘커피 지식 제로’ 상태로 시작했다. 시행착오가 그의 스승. 국내 첫 뻥튀기로스팅을 시도했다. 명물 커피는 ‘사약커피’. 커피잔 대신 한때 국밥집 운영할 때 사용하던 놋그릇이다. 3번 오면 캐리커처를 그려준다.

시남은 ‘시쓰는남자’의 준말. 김 시인은 2010년 봉산리 신암리에 문을 열었다. ‘시남=신암’. 우연의 일치였다. 2012년 등단했고 아내는 화가인데 생계를 위해 미용실을 꾸려간다. 그는 종일 아내를 기다리면서 시적 울림이 감도는 커피를 태워주면서 빈둥빈둥. 하지만 매의 눈매로 살아간다. 주로 케냐·우간다 등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만델링 등을 즐겨 사용한다.

김천푸드로드 대미는 ‘꼬맹이김밥’. 세상에서 가장 작고 단순한 식재료의 김밥집인 부곡동 ‘오단이 꼬마김밥’. 김밥 재료는 어묵·단무지·오이 요렇게 딱 세 가지. 어른 손가락 두 개 굵기다. 컨테이너 포차로 시작해 15년 전 현재 자리로 옮겨왔다. 근처 서부초등 아이들의 간식이었는데 지금은 전국구다. 체급은 다윗, 하지만 맛은 골리앗급.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도움말=김천문화원 송기동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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