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에 꾸민 ‘밀리터리 캠핑촌’…로&슬로 바비큐·주민과 차린 제철밥상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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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07   |  발행일 2018-09-07 제34면   |  수정 2018-09-07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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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김천의 아픔을 치유하고 왜곡된 국내 육식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오픈한 ‘캠프 1950’. 밀리터리 글램핑·오토캠핑촌이란 닉네임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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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태어나 국내에 제대로 된 레저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20년 전 거창에 허브교육농장인 ‘민들레울’을 만든 김양식. 그는 지난해 용도폐기된 각종 군수품을 오브제로 활용한 군부대 같은 느낌의 캠핑촌을 폐교된 김천 문의초등 교정에 조성했다. 그의 유니폼은 항상 군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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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촌은 일명 ‘바비큐촌’으로 불린다. 지역의 농부, 과수원 주인, 동네 이장 등과 윈-윈전략을 짜고 갓 구워낸 바비큐를 중심으로 한 제철 밥상을 캠핑촌 방문객에게 염가로 제공한다. 또한 호박농사와 연계된 ‘김천식 핼러윈데이축제’도 기획 중이다.

자상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말투. 그 끝에는 항상 물비늘 같은 미소가 인다. 그 곁에는 군침 도는 인연이 풍성하다. ‘카버’(고기 썰기 전문가)이기도 한 김양식의 손엔 늘 장작·바비큐용 집게, 그리고 칼이 쥐어져 있다. 그의 동선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온통 바비큐에 집중된다. 바비큐는 주인이 한눈파는 틈을 타 쉽게 변질돼 버린다. 그래서 ‘바비큐문화 완성을 위해서 우주가 통째로 동원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빠르게 구워져 나오는 기존 패스트형 고기가 아니다. 그런 고기는 이제 흘러넘친다. 이젠 ‘느긋한 고기시대’로 건너가야 된다. ‘Low & Slow’ 원칙을 지킨 웰빙 바비큐. 그는 그걸 정성스럽게 썰어 방문객에게 수시로 한 점씩 정으로 내민다. 그럼 캠프는 이내 웃음바다. 예측불허의 그의 동선. 잘 살펴보니 그가 수도산 반달곰 같다. 그도 스스로를 ‘역주행 사내’라고 규정한다. 여느 소시민에게 그의 삶은 불가해하고 좀 불편하다. 남의 욕망을 섬겨야 했던 그들에게 자기 욕망을 살고 있는 이 사내가 제대로 이해될 리 있겠는가.

단군신화에서 쑥 한 자루와 마늘 스무 톨을 갖고 100일을 견뎌 웅녀로 화한 곰. 그 유전자를 닮은 것 같은 반달곰은 지리산을 버렸다. 그리고 왜 수도산으로 왔을까. 그는 왜 도시를 버리고 수도산 자락으로 왔는가. 반달곰과 그는 보통 인연이 아니다. 마늘과 쑥, 이것도 단군정신이 스며들어간 허브 아닌가. 한국 산천의 모든 약초, 그 모두 허브가 아닌가. 그도 허브의 길을 걸어왔다. 그게 곰의 길인가?

문의초등 교정 ‘캠프 1950’ 조성 김양식
6·25 아픔치유·육식문화 개선 사명감
본관앞 텐트기지 구축 일명‘UN 본부’
각종 군수품 오브제 활용 군부대 느낌
운동장 한편 수십여명 취침 군용 텐트
매일밤마다 바비큐 먹으며‘싱어롱파티’
최상의 훈연향 위해 나무·불 관계 연구
텍사스바비큐 전수…학교 개교도 계획
흙돼지 바비큐 보급 캠핑촌 직거래 장터
양파·자두·포도·와인 등 로컬푸드 공유


◆허브 앤 바비큐 라이프

그의 첫 결실은 2000년 경남 거창군 북상면 농월정과 수승대가 지척에 있는 한 계곡가에 파종한 허브교육농장인 ‘민들레울’. 그의 첫 레저사업이다. 하지만 딸에게 물려주고 또 한발 더 나갔다. ‘바비큐(Barbecue 혹은 BBQ) 드림’을 이 캠프를 통해 구현해보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코너에 몰린 은퇴자의 제2도약대를 만들고 주고 싶었단다.

‘캠핑푸드’의 개척자로 보이는 그와 함께 밤을 지새우고 싶었다. 김천 시내에서 대덕면으로 뻗은 국도3호선. 적잖이 내리는 빗줄기, 그리고 수시로 액자를 바꿔 끼우는 산머리에 걸린 역동적인 운무. 난 그걸 라이브콘서트처럼 만끽했다.

캠프 앞에 도착했다. 무표정한 광경. 아니? 폐교가 꼭 무슨 파견부대 같다.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꼭 훈련소에 입소하는 기분이다. 정면에 이 공간이 어떤 곳인가를 암시하는 투박한 표지판이 보인다. 캠프 1950! 미군 지프 보닛을 떼어내 허공에 매달아놓았다. 본부동 텐트 천장에는 등산용 자일, 카누 등 젊을 때 사용하던 각종 레저용품을 수북하게 걸어놓았다.

운동장 왼쪽에는 수십명이 한꺼번에 잠잘 수 있는 군용텐트 3개가 있다. 바닥에 전기패드, 그리고 군용 침낭과 담요가 놓여 있는 황량한 숙소다. 멀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숙소용 헬기와 노란 잠수함도 종탑처럼 보인다. 거기 올라서면 덕유산과 수도산이 360도 방향으로 조망된다.

텐트? 좀 불편하지만 맘을 편히 내려놓게 만든다. 체크인은 간단한 ‘입대신고식’으로 대체. 원하면 군복도 빌려준다.

본관 앞에 T자형 텐트 기지가 구축돼 있다. 스태프들은 여길 ‘UN본부’라 부른다. 텐트에서 개인플레이를 못하게 유도한다. 별도로 사갖고 올 필요가 없다. 라면 등 웬만한 식재료는 다 구비돼 있다. 매일 밤 바비큐 먹으며 싱어롱하는 파티가 벌어진다. UN본부 옆에는 앰뷸런스가 사냥개처럼 앉아 경비를 선다.

그릴링(하부에서 화력 지원하는 방식)과 브로일링(상부에서 아래로 화력 지원하는 방식), 두 기능을 겸하고 있는 웨버 케틀(Weber kettle)에서 고기를 굽고 있던 그가 반기며 나그네를 와락 끌어안는다. 그의 친화력은 이미 이 바닥에선 알아준다. 생면부지의 공무원, 마을 이장, 포도과수원 주인 등과도 인연을 맺었다. 그날도 지인 7명이 취재를 겸한 파티를 위해 포도, 오이 등 직접 수확한 농작물을 싸들고 왔다. 자기가 먹을 걸 들고 오는 ‘포트럭파티’가 되었다. 그는 바비큐와 술을 제공했다. 슬라이스 한 레몬에 보드카를 끼얹어 파티주까지 제조했다. 돼지 목심과 전지를 1㎏씩 절단해 6시간 차근차근 구웠다. 소고기는 12시간, 닭고기도 6시간 이상 익혀야 된다. 기존 불판 삼겹살에 젖은 식도락가에겐 이 바비큐가 다소 밍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워낙 다양한 군수품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 캠프 전체 윤곽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가 군수품 리스트를 보여준다.

60여개의 군용텐트, 100여벌의 군복, 군용 박스, 위장망, 이동용 대전차 바리케이드, 앰뷸런스, 전시용 발전기 트레일러, 전투식량인 각국 시레이션, 70여개의 바비큐 전문 그릴러와 브로일러…. 6·25전쟁 당시 사용하던 추억의 텐트도 하나 갖고 있다. 특히 방염·방설 기능까지 있는 군용텐트는 꽤 내구력이 있다. 일반 텐트와 달리 텐트 하나 제대로 치는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거창 민들레울에는 300여종의 허브가 자란다. 그리고 그는 그 허브를 빵 만들 때와 바비큐용 양념인 럽(시즈닝) 만들 때 사용한다. 매일 나무와 불의 관계를 궁리한다. 사과나무, 포도나무, 떡갈나무, 벚나무, 옥수수대 등 최상의 훈연향(스모커)을 끼얹기 위해 훈연칩(불쏘시개 나무조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태워본다. 육즙이 증발되지 않게 사과주스를 수시로 분무기로 뿌려 겉면을 거뭇하게 코팅해준다.

당연히 장작 쌓는 법도 달라야 한다. 기존 장작 쌓는 방식은 속까지 다 타지 않아 비효율적이다. 그는 우물 정(井) 자 구도로 장작을 차곡차곡 위로 좁아지게 놓는다. 굵은 건 아래, 맨위에 가장 가는 걸 올린다. 불도 거꾸로 위에서부터 붙인다. 그럼 아래로 타내려가고 완전연소된다. 자기만의 ‘장작불공학’을 뒤늦게 터득했다. 그는 탄 고기와 건강과의 관계도 공부하고 있다. ‘육식은 무조건 나쁘고 채식은 무조건 좋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조건의 육식과 채식이냐’를 따질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아로마뮤지엄을 겸한 단과대학 같은 바비큐학교를 빨리 열 거란다.

◆로컬푸드 직매장 캠프

김천에 닻을 내린 만큼 로컬푸드부터 챙겨야 된다. 지례면은 흑돼지, 조마면은 감자, 구성면은 양파로 유명하다. 또한 전국 최대 규모의 자두와 포도는 물론 그걸 이용한 와인도 공유하려 한다. 그럼 이 캠프가 김천 로컬푸드 직거래 장터가 될 것이다. 그는 6차산업(농촌융복합사업)마케팅 전문가 라이선스를 갖고 있다. 지척에 있는 지례흑돼지부터 바비큐로 만들어 보급할 작정이다. 그러려면 우선 김천시와 윈윈전략을 짜야 된다.

이 캠프는 일명 ‘생각하는 섬’. ‘역발상 레저공간’이란 의미다. 폐교를 매입한 그가 이 공간 문패에 ‘1950’을 삽입한 이유가 있다. 6·25전쟁 때 김천은 철저하게 파괴됐다. 그래서 민들레꽃 같은 캠프로 김천을 위로하겠다는 결심이다.

일찌감치 등산에 미쳤고 서둘러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고 MTB도 탔다. 몸에서 맘으로 건너갔다. 허브 비즈니스 모델 수립을 위해 호주와 뉴질랜드 등으로 ‘향기투어’를 떠났다. 거기서 외국의 독보적 바비큐문화를 접하게 된다. 향기와 바비큐, 이 두 개를 터득하면 레저문화의 신지평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브에 안목이 있다는 평가를 받자 여기저기에서 러브콜이 들어왔다. 가창 허브힐즈, 달서구 이랜드, 용인 에버랜드, 곤지암랜드 등의 허브랜드 조성 책임자가 된다.

그는 지금 전쟁을 ‘추억상품’으로 역이용 중이다. 배려 차원에서 세계 각국 6·25 참전용사와 후손에겐 이 캠프를 무료로 오픈한다. 또한 기증받은 40여만원의 책을 축으로 근대사 박물관도 만들거다.

밤새 동굴 같은 텐트 안은 땅에서 바로 올라온 흙냄새로 출렁거렸다. 다음날 아침 해피한 바비큐 맛의 기억을 뒤로하고 숨겨진 김천 별미를 찾아 길을 떠났다. (010-3509-1225)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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