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염려증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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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03   |  발행일 2018-09-03 제31면   |  수정 2018-09-03
[월요칼럼] 염려증
원도혁 논설위원

필자가 아는 한 50대 직장여성은 평소 두통에 시달린다. 진통제를 가지고 다닐 정도다. ‘뇌 구조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관찰해보니 원인이 따로 있어 보인다. 이 여성은 온갖 세상사에 너무 관여한다. 그냥 놔둬도 될 사소한 문제까지 집요하게 자신의 통제 속에 두려고 한다. 게다가 걱정이 너무 많다. 두통 빈발 원인은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로 귀결된다.

걱정이나 염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한다. 자신의 건강에 신경을 안 쓰고 섭생에 조심을 안 하면 그건 자기 포기다. 하지만 너무 건강을 걱정하는 이른바 ‘건강 염려증’에 걸린 이들도 적지 않다. 주변을 돌아보니 암환자가 적지 않다. 그래서 암에 걸리지 않으려고 온갖 좋다는 음식만 찾아 먹는다. 그런다고 암에 걸리지 않는 게 아니다. 너무 신경쓰는 스트레스로 되레 건강을 망칠 수 있다.

자녀에 대한 걱정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역할은 잠자는 자녀의 창의성이 깨어나도록 교육시켜 주고, 희망을 밀어주는 선에서 끝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부모들은 자기 뜻대로 아이들을 조종하려고 한다. 그 부모의 생각이 잘못된 편견이라면 아이들의 미래는 망가지게 된다. ‘자녀 염려증’에 걸린 엄마들이 문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는 다양한 갈등과 직면한다. 조직 내 활로를 방해하는 이기적인 아첨꾼·간신배는 물론 업무 능력은 모자라면서 자리 욕심을 내고, 맡은 일마다 말썽만 일으키는 ‘꼴통’들도 있다. 건강한 조직을 유지하려는 책임자는 이런 지뢰들 때문에 ‘염려증’에 걸리게 된다.

따져보면 요즘 사회도 엉망진창인 것 같다. 젊은이들은 예의범절도 없고, 이기주의·개인주의가 너무 심해 보인다. ‘불의는 못 본 체 해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비아냥 섞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물질 만능주의에다 염치·효행·경로 등 소중한 가치관들이 죄다 쓰레기통에 던져진 느낌이다. 사기꾼·장사꾼·돈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득시글거린다. 이 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탄식들이 나오고 있다. 나라 돌아가는 모양새는 또 어떤가. 국가 정책을 놓고 반대파와 찬성파가 엇갈려 대립하고 있다. 적폐청산의 미명 하에 벌어지는 일들 또한 도를 넘어서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우국지사가 아니어도 저잣거리의 필부들은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물론 쌓인 폐단들은 깨끗이 청소하는 게 맞긴 하다. 실제로 현 정권이 나름대로 잘 하고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저런 걱정이 많은 이들은 ‘국가 염려증’에 걸린 소시민인가.

‘골치아픈 문제가 생기면 대학교수는 조교에게 시키고, 공무원들은 용역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반 서민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걱정을 한다고, 나서서 뭘 도모한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내 의지대로 되는 건 고작 내 신상에 관한 문제 뿐이다. 자녀들의 진로가 어디 내 맘대로 되던가. 공무원·의사 등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미리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서 부모가 원하는 최상위 영역으로 자녀들을 진입시키는 경우는 소수에 해당된다. 내가 걱정한다고 이 사회가 개선될까. 수백년 전 영국에서도 현 상황과 비슷한 개탄이 있었다고 한다. 젊은 것들은 무례하고, 이기주의가 판을 쳐 걱정이라는 등의 옛 기록들이 나왔다. 물은 자연상태에서 일정거리를 흐르면 스스로 깨끗해지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물처럼 자정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선각자와 지식인, 혁신가들이 나서서 오염원을 제거하고 정화시켜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때로는 염려와 걱정은 뒤로 물리고 ‘케 세라 세라’할 필요가 있다. 어떤 개그맨이 107세 장수노인에게 장수비결과 갈등 대처법을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나왔다. “나이를 많이 먹었더니 오래 살았다”, 딴지 걸고 음해하며 스트레스 주는 사람이 없었느냐는 물음에는 “그런 놈들 그냥 내버려뒀더니 다 죽고 없어졌어”라고 했다. 각종 염려들은 제쳐두고 가끔은 ‘잘 하겠지 뭐, 니 맘대로 해 보세요’라며 던져놔야 한다. 그래야 머리가 덜 아프다.원도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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